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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트위스트 교육학 - 44. ⑤강: 조랑말이 되어 뚜벅뚜벅 가다 본문

연재/배움과 삶

트위스트 교육학 - 44. ⑤강: 조랑말이 되어 뚜벅뚜벅 가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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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조랑말이 되어 뚜벅뚜벅 가다

 

 

그래도 운 좋게 5강의 강의 중 4강까지는 어찌 어찌 정리할 수 있었다. 이건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초반엔 열정만으로 가능했으나, 중반부턴 동섭쌤의 응원과 준규쌤의 지지, 쓰다가 도무지 막혀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을 땐 황경민 시인의 아포리즘이 역동적인 힘을 주어 쓸 수 있었다. 초반만 해도 나의 힘으로 충분히 써나갈 수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은 금세 바닥이 났고, 갈피를 못 잡아 허둥지둥될 때 이끌어주고 당겨주고 안아주는 사람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황경민 시인의 아포리즘. 생각이 막힐 때, 글이 막힐 때 샘솟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지금까지의 후기는 우리 모두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천리마는 환상이라는 거였다. 난 여태껏 경쟁을 당연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모든 건 나의 힘만으로 해나가야 하며, 그 열매는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벌 위주의 승자독식을 그렇게 비판했으면서도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승자독식의 욕망은 돌아볼 생각도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후기를 쓰다 보니 천리마는 이상에나 존재하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기 혼자 잘난 맛에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의 탄생조차 난자와 정자의 유기적인 흐름에 의해 이루어지며, 아이의 자람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에 의해 가능하다. 그 후 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도 지나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지식과 연구 성과 위에서 배우고 익히게 된다. 무엇 하나 자기 혼자서 이루어낸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치다쌤은 이런 생각을 논문을 쓴다는 것에 빗대어 자네들이 질이 좋은 논문을 쓰면 그것에 의해서 이익을 얻는 것은 아직 만나지 않은 독자들이다. 자네들은 그 사람들을 향해서 좋은 패스를 하는 것이 기대된다. 논문쓰기에서 자네들은 end user(역자주: 논문쓰기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독점적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가 아니라 패스하는 사람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논문이라는 정형화된 작품조차도 선배들이 패스해준 지식과 도움에 의해 써진 것이니,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자신이 최종수혜자로 남으려 할 것이 아니라, 아직 만나지 않은 후배들을 위해 패스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패스하는 사람의 자세로 강의를 들을 준비를 한다.

 

 

 

조랑말이 되어 트위스트 교육학을 누비라

 

4강 후기까지 마치고 나니, 그제야 42편의 후기를 내가 쓴 것도 아니며, 이런 활동의 최종수혜자도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알겠더라. 그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한 자 한 자 적어간 것이며, 아직 만나지 않은 독자들을 향해 패스하는 거였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난 천리마 같은 사람이 아닌, 조랑말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조랑말 같은 사람이라 말했다면, 화가 났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누구 할 것 없이 천리마가 되고 싶어 하고, 조랑말은 혐오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지금껏 휩쓸려 왔지만 20편의 후기를 쓰는 내내 그런 관념에 균열이 생겼고, 나 자신을 조랑말로 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재밌는 이야기를 해준다.

 

 

순자는 그의 책 수신修身편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하였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뽐낸다. 그러나 조랑말이라도 열심히 가기만 하면 열흘이면 같은 목적지에 너끈히 도달할 수 있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則亦及之矣.”

문제는 가는 목적지가 명확히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아무리 천리마라도 가는 목적지를 명확히 정하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날뛰기만 하다 보면 골근이 다 상하여 도중에 뒈지게 되어 있다. 사실 순자가 이 말을 했을 때는 천리마의 존재를 사실상 부정한 것이다. 인간세에 천리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화일 뿐이다.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별 기능이 없다. 인간세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은 조랑말들이 부지런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착실하게 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천리마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조랑말들의 범용성의 위대함, 그 근원적 방향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허공의 신화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땅에 아무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성적이 좋지 못한 범용한 소년이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중용, 인간의 맛, 김용옥, 돌베개출판사, 2011, pp 267

 

 

하루면 천리를 가는 천리마와, 열흘이면 천리를 가는 조랑말 중 어떤 말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의 답은 너무도 뻔하다.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에선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식의 인식을 도올 선생도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 한다. 하루에 천리를 가는 말이라 할지라도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 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조랑말들은 올바른 목적지를 정하고 시나브로 자신의 길을 조용히 걸어간다고 한다. 그러니 조랑말들의 범용성의 위대함이 세상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천리마가 아닌 조랑말이 되자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4월 8일 어린이 대공원 트래킹 중 만났던 조랑말. 난 천리마가 아닌 조랑말이다.

 

 

이런 말을 듣고 보니, 더욱 더 조랑말인 내 자신을 자부할 수 있게 되었으며, 범용한 사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뿐인가,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조랑말이 꾸준히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해주던 뭇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도올 선생의 말과 동섭쌤의 강의는 기본적인 부분에서 공명하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리마를 칭송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세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했듯, 동섭쌤도 매 강의마다 일상에서 을 빼게 하여 조랑말의 범용한 위대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트위스트 교육학의 가장 큰 가르침이자,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트위스트 교육학 5강의 제목은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메시지이다. 5강은 트위스트 교육학의 대미를 장식하는 강의이니만치, 조랑말의 노둔하면서 끈기 있는 자세로 후기를 써보려 한다. 이 번 강의의 핵심은 가르침이란 증여다라는 주제로, 모스와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증여론에 대한 이야기로 증여의 뜻을 알고, 교육과 증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풀어내도록 하겠다. 이제 5강의 후기 시작~

 

 

확실한 건 1강 때에 비하면 해가 훨씬 길어졌다는 거다. 대낮처럼 환하던 이 날의 강연 후기는 이제 시작.

 

 

인용

목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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