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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트 교육학 - 47. ⑤강: ‘여기의 가치관’과 배움 본문

연재/배움과 삶

트위스트 교육학 - 47. ⑤강: ‘여기의 가치관’과 배움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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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여기의 가치관과 배움

 

 

저번 후기에선 김영민 선생이 말한 긴장을 친구 삼아 속으로 참고 묵힐 수 있는 성숙을 가꾸라는 뜻을 생각해보고,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일화를 들려주며 차이가 주는 긴장을 어떻게 참고 묵힐 수 있는지 살펴봤다.

물론 차이가 주는 긴장에 머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거나, 갈등이 해소되거나 하진 않는다. 그저 그 긴장의 순간 속에 머물며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느껴보는 것뿐이니 말이다. 그 학생은 몇 년간 하지 않던 공부를 갑자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연극수업과 같이 수능과는 상관없는 수업엔 들어가지 않고 수학문제를 풀겠다고 말을 하게 되었다. ‘고등 2학년까진 단재학교의 커리큘럼을 따라 공부한다는 나의 입장과는 달랐기에, 그에 따라 긴장은 더욱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 절충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그 학생은 오로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수능을 위한 공부다라고만 생각하여, ‘그 공부만 하기에도 시간이 벅차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2012년 교사연수 때 만난 이왕주 교수는 소통이란 '자리의 옮겨감'이라 했는데, 그만큼 어려운 것도 없더라.

 

 

 

여기의 가치관에 매몰된 공부

 

학생의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학생의 말이 일리는 있네. 지금 당장 필요한 공부를 하겠다는데, 학교 커리큘럼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꼭 그것만 해야 한다는 거야?’라고 불만스러울 것이다. 더욱이 이 학생은 몇 년 간 공부에는 손도 대지 않다가 이제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려(?)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니, 그걸 대견하게 여겨 하겠다는 아이를 철학이나 이론적인 얘기로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문제가 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정말 그 학생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학생은 쓸모 있는 공부만을 하여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겠다는 말로 연극수업에 빠지는 것을 정당화했다. , 수능을 위한 공부는 쓸모 있는 공부이며, 그 외의 것들은 쓸데없는 공부란 얘기다. 그래서 쓸모 있는 공부만을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 사회에 너무도 팽배한 시간=이란 관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시간과 돈을 일치시키는 건, 우리사회에 너무도 당연시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생각의 기저엔 여기의 가치관만을 당연시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공부를 생각할 때조차 쓸데없다 / 쓸모 있다를 판단의 기준으로 내세우며, 이 공부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예측이 가능해야지만 하겠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대학은 취업에 유리하냐는 하나의 기준으로 인문학 계열의 학과는 줄이고, 공학 계열의 학과는 늘리려 하고 중고등학교도 대입, 취업을 위한 공부만이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시간표의 편성과 주요과목의 설정. 모든 게 수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때 쓸모있다는 판단도 수능과의 연관성 여부다.

 

 

 

여기의 가치관에 매몰시키려는 교육 관계자들

 

여기의 가치관만을 중시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서는 이미 우치다쌤이 여러 강연에서 열변을 토하셨다. 그렇게 되면 배움은 완전히 무너지며, 교육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고 말이다. 아래의 글을 잠시 읽어보자.

 

 

교육을 둘러싼 다른 모든 것들은 여기에 속합니다. 정부, 교육위원회, 학부모, 지역사회, 대중매체, 시장, 이 모든 것들은 여기를 지배하고 있는 동일한 가치관이라는 대기압의 지배를 받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모든 아이들에게 큰 권력, 명예, 풍부한 재화와 문화자본을 획득하여 상위계층에 올라서기 위해 가혹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부모들에게 전면적으로 교육을 맡기면 아마 이기는 아이를 만들려고 할 겁니다. 대중매체에 부탁해도 문부성에 부탁해도 재계에 맡겨도-실은 맡기려고 해도 그쪽에서 거부할 테지만-역시 여기의 가치관에 매몰된 아이를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우치다 타츠루, 민들레출판사, 2011, pp 44

 

 

일본의 학자답게 일본의 현실을 얘기해주고 있다. 일본의 모습 속에서 한국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우치다쌤의 책을 읽다 보면 일본과 한국은 묘하게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죽은시인의 사회]의 장면, 아버지는 연극을 하는 아들이 못마땅했고, 그렇게 부추긴 키팅 선생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여기의 가치관은 자본주의 사회가 유포하는 가치관을 말한다. ‘돈이 최고다’, ‘시간은 돈이다’, ‘니가 일등하고 싶으면, 앞에 있는 66명을 죽이면 된다따위의 너무도 지당해 보이는 말들이 바로 여기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여기의 가치관에 학생은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여 쓸데없는 공부는 최대한 하지 않고 쓸모 있는 공부만 하려하고, 교사와 부모는 지금 공부해야 미래의 남편과 아내 얼굴이 바뀐다는 말로 그걸 부추기며, 교육의 틀을 만드는 교육부 관계자들은 여기의 가치관을 교육에 반영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러니 더더욱 여기의 가치관은 완벽하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어 절대 변하지 않을 진리처럼 여겨지고, 그래서 어떤 상상도 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이니 그 학생도 모두 다 그렇다고 하는데, 나만 아니라 한들 그건 정신승리 아니겠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잠시 곁다리로 새는 얘기를 해보자. 정말 그 학생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여 그런 얘기를 한 것이냐 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단재학교는 4시면 학교 일정이 끝나며, 숙제도 별로 내주지 않아 방과 후에 공부하려고만 하면 시간은 넉넉한 편이니 말이다. 그 학생은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표현을 해야 하는 연극수업의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싫어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명왕성]의 장면, 유진의 이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의 가치관'에선 매우 정당한 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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