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장
왜 찾고 있지 않느냐?
제92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찾으라! 그러면 너희는 발견할 것이다. 2허나 지난 시절에는, 너희가 나에게 구하는 것들에 관하여 나는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바로 그것들을 말하려하나 너희가 그것들을 찾고 있지 않구나!”
1Jesus said, “Seek and you will find. 2In the past, however, I did not tell you the things about which you asked me then. Now I am willing to tell them, but you are not seeking them.”
외관상 매우 평범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해석은 심층적 통찰을 요구한다. 제1절과 제2절 사이에 모종의 단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1절은 큐복음서(Q35)에 속하는 것으로 도마의 구절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는 발견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는 발견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태와 누가의 구절도 일치하고, 그 중 한 구절인 ‘찾으라! 그러면 너희는 발견할 것이다’가 도마와 일치한다. 그런데 마태-누가에서는 이 메시지는 하나님께로 향한 기도양식 중의 하나로서 언급된 것이다. 누가에서는 ‘주기도문’ 바로 뒤에 나오고 있다. 그러나 도마의 예수는 기도라는 양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추구하는 주체들의 내면의 노력에 관한 것이다(cf. Th.2). 92장과 94장은 주제의 흐름이 연결되고 있다. 따라서 ‘찾으라! 그러면 너희는 발견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물론 부정적 함의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은 본 장의 전체 논의의 대전제로서 제시된 것이다.
이것을 마태-누가에서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기도로서 이해하면, 찾기만 하면 찾게 된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조되므로 매우 타력신앙적 복음이 된다. 그리고 찾는 대상도 결국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찾으라! 그러면 너희는 하나님을 발견케 된다는 것이다. 구함도 구하는 주체의 노력이 강조되기보다는, 하나님의 선물주심이 강조되고 있다. 구함의 주체적 노력 끝에 얻는 어려운 대가가 아니다. 이것은 마치 양명좌파【현성파(現成派): ‘구하면 즉각 이루어진다’, 양지(良知)는 공부의 축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곧바로 달성된다. 직오(直悟)·직신(直信)을 강조한다】의 논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여기 도마의 논리의 배면에는 공관복음서 기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주체적 노력의 논리가 배어있다. ‘찾으라! 그러면 너희는 발견할 것이다’라는 명제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발견’이 아니라 ‘찾음’이다. ‘발견’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찾음’이라는 주체적 노력이다. 다시 말해서 주체적으로 찾는 노력이 없으면 발견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1절과 2절의 내면을 관통하는 논리는 바로 이 찾음 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찾음’이란 일시적인, 일회적인 찾음이 아니라, 끊임없는, 생의 모든 순간에서 지속되어야 할 추구며, 탐색이며, 모험이다.
‘지난 시절’은 아마도 역사적 예수의 실존적 고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예수의 사역시기의 초기상황, 즉 예수 천국운동의 형성시기 (formative years)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때 너희가 나에게 구하는 것들에 관하여 나는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다.’ 따르는 자들의 추구는 있었으나, 초기 제자들의 질문은 자기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질문하고 있는지를 몰랐다. 그들은 근본적인 문제에 관하여 ‘감’이 없었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무지한 질문에 일일이 답할 수가 없었다. 진정한 질문과 진정한 대답이란 영적 소통이 가능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초보적 상태를 지나 예수의 도반들이 많이 성숙했다. 그들은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딴 그룹에서 얻어 듣지 못하는 많은 것을 얻어 들었다. 그래서 자만감이 생겼다. 그래서 그 초기의 추구를 지속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지금 바로 그것들을 말하려 하나 너희가 그것들을 찾고 있지 않구나!”
그들은 진실한 추구를 지속시키고 있질 않은 것이다. 기꺼이 설법하고자 하는 쾌락(快諾)의 심사가 있을 때 오히려 도반들은 찾고 있지를 않다. 소통의 의지가 이렇게 서로 엇갈리는 상황은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많이 직면하게 되는 실존적 상황인 것이다. 기나긴 삶의 추구에는 반드시 초심(初心)의 신선함이 지속되어야 한다. 이 로기온의 전체적 의미는 찾으면 발견할 수 있을 터인데 찾고있지 않는 도반들의 게으름, 자만을 지적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추구(찾음)는 삶의 모든 순간에서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경장(經藏)과 논장(論藏)의 문제도 암시되고 있다. 도반들이 논장에만 빠져 경장은 추구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경계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 로기온에 내포되어 있는 부정적 함의의 측면이 다음 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 이 사진은 한국인에게 공개되는 사진으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다. 예수가 실제로 묻힌 정황을 매우 세밀하게 알 수 있는 무덤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서 있는 입구에 거대한 연자방앗돌 모양의 둥근 막음돌이 있다. 홈이 있어 밀면 굴러가게 되어 있다. 그 내부에 여러 개의 석굴이 있는데 대부분 이 정도의 무덤은 가족묘로 사용된다. 죽으면 바로 당일 묻는데 안식일에는 묻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의 시체는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아리마대의 요셉이 빼내었던 것이다(막 15:42). 시체를 석굴에 놓고 썩는 냄새를 방지하기 위하여 침향과 몰약을 바르고 세마포로 염을 한다. [사진=임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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