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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강해, 『금강경』에 대하여 - 5. 두 경전과의 최초 만남 본문

고전/불경

금강경 강해, 『금강경』에 대하여 - 5. 두 경전과의 최초 만남

건방진방랑자 2022. 6. 1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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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두 경전과의 최초 만남

 

 

나의 생애에서 이 지혜의 서를 처음 접한 것은, 1960년대 내가 당시로서는 폐찰이 되다시피 쇠락하였던 고찰, 천안의 광덕면에 자리잡고 있는 광덕사(廣德寺)에서 승려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계통을 밟아 정식 출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 깎고 승복 입고 염불을 외우며 승려와 구분 없이 지냈으니 출가인(出家人)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구멍 숭숭 뚫린 판잣대기로 이어붙인 시원한 똥간에 앉아 있는데, 밑 닦으라고 꾸겨놓은 휴지쪽 한 장에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 현토를 달아 뜻이 통하도록 해석되어 있는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랫도리에 힘을 주는 일도 잊고 꾸부린 가랭이가 완전히 마비되도록 하염없이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랫도리에 힘을 주는 일보다 내 시선이 닿고 있는 휴지쪽에서 튀어나오는 의미가 내 몸뚱아리에 헤아릴 수 없는 모종의 전율을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문자 그대로 불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불교학개론강의를 듣고 불교를 몸소 체득하고 싶어 출가승이 되었건만, 나는 반야심경이란 그냥 아무런 의미도 되지않는 그냥 염불용의 기호체계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것이 어떤 일정한 의미를 갖는 경전 텍스트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중노릇을 하기 위해 외우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나같이 문외한인 자들에게는 리얼할 수밖에 없었던 무지의 소치였다.

 

한 줄, 한 줄,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엉성한 현토 문장들을 따라가면서, 그것이 나에게 던지는 어슴프레한 영감은 나의 짧은 생애에서 미처 경험할 수 없었던 어떤 태고의 푸릇푸릇한 이끼와도 같은 신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사실 불교에 대해 최초의 영적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어느 대선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된 것도 아니요, 내가 수없이 들었던 세계적인 불교학 석학의 열띤 강의 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싱그러운 호도님 향기바람이 구수한 분뇨에 배어 태고의 토담의 정취를 한층 더 짙게 만들어주는 바로 그 측간의 마루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지쪽 한 장과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의 전율이 나의 인생에 불학(佛學)’이라고 하는 인류지혜의 보고를 맞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우리네 인생이란 참으로 우연의 연속인 것이다. 그때 나는 반야심경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분명 내가 평생토록 고구(考究)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진리의 체계가 담뿍 함장(含藏)되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고, 언젠가 내 손으로 그것을 상세히 파헤쳐 보리라고 결심하면서 마비된 다리를 어루만져 가면서 그 뒷깐을 절룩절룩 걸어나왔던 생각이 난다. 언젠가가 삼십여 년의 세월을 소요하게 될 줄이야!

 

그 뒤로 나는 불자 독송의 경전들을 똥숫간에 가지고 가서 뒤적이고 앉아 있는 취미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다음으로 접한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수뜨라라고 불리우는 금강경이었던 것이다. 금강경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선 금강석다이아몬드생각이 나고, 무언가 보석 중의 보석,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무엇, 그리고 가장 귀한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어 금강경하면 뭔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지혜로 가득찬 위대한 경전이라는 선입견이 들었던 것이다. 지혜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자!

 

나는 곧 실망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반야심경을 접했을 때는, 그 분량이 매우 적고, 또 그 압축된 뜻이 가물가물했지만, 아주 정확한 논리체계들이 수없이 착종되어 있고, 그것을 풀어내기만 하면 우주의 비밀이 다 풀릴 것과도 같은 그러한 농축된 비의(秘義)의 느낌이 강렬히 들었다.

 

그러나 금강경은 비교적 짧은 글이기는 했지만 반야심경처럼 압축되어 있지도 않았고, 우선 나에게 아무런 논리적인사색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말의 반복이 심했고, 따라서 아주 진부하고 상투적인 말의 나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마디로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금강경대중을 위한 용속한 경전일 뿐, 학문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유치한 책이라고 덮어버리고 말았다. 반야심경금강경과의 최초의 해후는 이러한 나의 대비적 인상 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그렇게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금강경을 내 인생에서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얻지 못했다. 금강경과의 진검일전(眞劍一戰)20세기가 종료를 고해가는 1999년 여름, 도올서원 제12림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푸릇푸릇한 동승의 모습이 이제 원숙한 선승의 모습으로 변했건만 진정코 내가 그 반야의 일단(一端)이라도 체득했단 말인가?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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