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
제1강 관자재보살에서 도일체고액까지
관자재보살께서 심원한 반야의 완성을 실천하실 때에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오온이 다 공이라는 것을 비추어 깨달으시고, 일체의 고액을 뛰어넘으셨다.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세음보살이 지혜의 완성을 이야기하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첫머리는 ‘관자재보살’로써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반야심경(般若心經)』 전체의 주어가 관세음보살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설한 설법의 내용이 아니라는 뜻이죠.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후대에 등장한 보살의 말씀으로 지고의 경전이 성립했다? 이것이 바로 대승경전의 특징입니다. 더군다나 관세음보살이 법을 설한 대상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사리불이죠! 사리자가 누구입니까? 사리자는 바라문 계급의 출신으로서 왕사성 부근의 우파텃사(Upatissa)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목건련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얘기는 유명하지요. 하여튼 그는 지혜가 뛰어나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었죠. 부처님의 실자(實子)인 라훌라의 후견인 노릇도 했습니다. 지혜제일의 제자로서 불10대제자 중 한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성문(聲聞) 중의 성문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지혜제일의 사리자가 『심경』에서는 마치 어린 행자처럼 관세음보살로부터 지혜에 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보살이 성문을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대승의 정신이지요. 해인사 성철 방장이 올라가는 연화대 위에 평범한 재가신도 여성이 올라앉아 해인사강원 비구대중들에게 설법한다! 실제로 1ㆍ2세기 인도 차이띠야에서는 이런 광경이 보통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금강경』만 해도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서 비구들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있을 때 장로 수보리(사위성의 기원정사를 기진奇進한 대부호 수달須達의 조카. 무쟁론주자無諍論住者제일. 공양제일)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땅에 엎드려 질문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직접 말합니다.
“뭇 보살과 마하살들이 반드시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지어다 ……”
그러니까 주제는 ‘보살’의 문제일지라도 형식은 고경(古經)의 관례를 따른 것이죠. 그러니까 『심경』」이 『금강경』보다는 훨씬 후대에 성립한, 더 래디칼(radical)한 대승정신을 나타낸 경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품에 보면, 실은 『반야심경』 조차도 부처님과 사리불(Śāriputra) 사이에서 일어난 교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비구의 대승단과 보살의 대승단과 같이 세존께서 체재하고 계실 때, 사리자가 반야바라밀다에 관해 세존께 여쭙고자 했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 그때 ‘심원한 깨달음’의 삼매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리불에게 얘기할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죠. 붓다의 삼매경을 깰 수도 없는 노릇, 그때 관세음보살이 대타로 등장하여 사리자에게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다)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그 여성적 이미지와 함께 우리 주변에 그 모습이 널려져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습니다. 석굴암의 벽면에 릴리프로 새겨진 관세음보살의 모습은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지요 (나의 책,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제3권 pp.606~7을 볼 것). 관세음보살은 대승불교와 더불어 태어난 캐릭터이며 AD 1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관세음보살상이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쿠샨왕조시대(1세기 중엽에서 3세기 중엽까지) 간다라지방에서였습니다. 불타 본존과 양협시로 관세음보살과 미륵보살이 같이 조각된 것도 있고, 관세음보살만 독자적으로 조각한 입상(立像)도 많습니다. 이 관세음보살은 철저히 대승운동의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정신하에서 탄생된 것입니다. 자비와 구제의 심볼로서 태어난 것이죠.
관자재, 관세음의 뜻과 기자 이상호
원래의 이름은 ‘Avalokiteśvara’인데 이것은 ‘보는 것, 관찰하는 것(avalokita)이 자유자재롭다(iśvara)’는 뜻이니까, 사실 ‘관자재보살’ 이라는 현장(玄奘)의 번역이 원의에 충실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라집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는 번역을 선호했습니다. 『묘법연화경』을번역할 때도 라집은 ‘관세음’과 더불어 ‘관음(觀音)’이라는 역어를 썼습니다. 관세음보살과 관자재보살은 완전히 같은 말입니다. 관자재보살은 원어에 충실한 번역이지만 우리 민중은 라집의 ‘관세음보살’이라는 표현을 사랑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소리를 본다’가 되어 좀 이상하지만 인도인에게 ‘본다’는 것은 ‘심안’의 감지, 통찰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주석가들에 의하면 ‘관세음’의 ‘관’은 ‘본다’보다도 ‘보여준다’의 의미가 강하다고 합니다.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들, 그 현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보살! 그래서 11면의 얼굴을 지닌(온갖 소리를 동시에 들어야 하니까) 보살이 바로 관세음보살이지요. 나는 ‘관세음보살’ 생각하면, 고발뉴스 이상호 군이 생각나요. 이상호 군이야말로 우리시대의 관세음보살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기자생활을 오래 해보았지만 기자들은 우선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언론이라는 강고한 벽 속에 있어 다치지 않는 존재, 그래서 타인에게 위압적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사실을 전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기자는 많아도, 이상호처럼 세상의 아픈 소리를 들어야만 기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숨겨진 소리, 보통사람들에게 가려져서 안 들리는 소리, 그 소리를 항상 찾아나섭니다. 기자는 모름지기 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그토록 용감하게 자신을 현장에 던지고 사는 기자는 많지 않습니다. 세월호 속에 사라진 슬픈 소리도 이상호의 대변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상호는 그러한 삶의 자세 때문에 본인이 항상 아픕니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으면 같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죠. 그러한 이상호를 박해하고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 자신이 고소를 당하고 보니 그가 수없이 고소를 당하면서 얼마나 깊은 시련을 겪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제야 나도 철이 드는 거죠.
존경스러운 불교학자 카마타 시게오(鎌田茂雄, 1927~2001【동경대학에서 화엄학을 전공하고 동경대학 교수가 되어 많은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그는 한국불교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죠. 『조선불교사(朝鮮佛敎史)』등의 저술이 있습니다】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을 강론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뭐 별것이겠냐, 바로 너 자신이다! 네가 스스로 관세음보살이 되지 않으면 이 경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이 세상의 아픔을 절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소리는 들리기 시작하는 거다!”
주어는 관자재보살이고 동사는 ‘행(行)’입니다. 행은 ‘실천한다’ 정도의 뜻일 것입니다. ‘심(深)’은 심오하다는 뜻으로 ‘반야바라밀다’를
수식합니다. 그러면 이런 뜻이 되겠지요.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지혜의 완성을 실천할 때에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여기 ‘때에’라는 것은 결코 특정한 시점을 나타내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자재보살은 통시간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나는 ‘초시간적’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습니다. 대승불교는 시간 속의, 역사 속의 불교이기 때문이죠). 모든 때에 걸쳐서 관세음보살은 심반야바라밀다를 행(行)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깨달음의 내용은 일시적 명제가 아니라 보편적 명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제의 구속이 없습니다.
조견, 도, 일체고액, 오온
다음 ‘조견(照見)’이라는 말도 ‘비추어 안다’ ‘총체적인 우주의 통찰, 즉 전관(全觀)에 도달한다’는 뜻이지요. 무엇을 조견하는가? 조견의 내용 역시 우주론적 통찰입니다.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하다는 것을 통찰한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되면 일체의 고액(苦厄, 고와 액, 고통과 재액)을 극복하게 된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라는 문구는 어느 산스크리트어 원본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장(玄奘)의 역문에는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장이 한어의 문맥에 따라 첨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도(度)”’ 일체고액을 넘어간다, 그러니까 극복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거꾸로 현장이 본 산스크리트 원본에는 이 구절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현존하는 산스크리트본이 모두 후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알아야 할 테크니칼 팀(technical term)이 바로 ‘오온’이라는 것입니다. ‘빤차 스칸다(pañcaskandha)’를 말하는데 ‘다섯 가지의 집적태’라는 뜻입니다. 한자의 ‘온(蘊)’도 ‘쌓였다’, ‘축적되었다’, ‘모여 이루어진다’ 등등의 뜻이 있습니다. 라집이 이것을 ‘오음(五陰)’이라 번역했는데 좋지 않은 번역이죠. 물론 ‘음(陰)’도 ‘온’의 뜻으로 썼을 것입니다. 우리는 ‘온축(蘊蓄)’이니, ‘온결(蘊結)’이니, ‘온합(蘊合)’이니 하는 말을 쓰지요.
오온(五蘊)이란 이 다섯 가지 집적태로써 우주의 일체 존재가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우주관을 나타냅니다. 초기불교의 핵심이론이지요.
1) 색(色) 2) 수(受) 3) 상(想) 4) 행(行) 5) 식(識)
이 중에서 색(色, rūpa)은 물질적 요소를 총칭합니다. 공간을 점유하는 연장태, 그 모든 것을 가리키지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요소로 구성된 우리의 육체도 루빠입니다. 한문상으로도 좋은 번역이지요. 색깔이 있는 것은 곧 빛을 반사하는 물체이므로 색(色)이 곧 물질(matter)을 대변한 것입니다.
5온 중에서 색온을 제거하면 나머지 4온은 모두 정신적인 것이지요. 수온(受蘊, vedanā)이라는 것은 눈으로 색을 본다든가, 귀로 소리를 듣는다든가 하는 감각기관의 감각작용(perception)을 의미합니다. 상온(想蘊, saṃjñā)은 보통 ‘표상작용(representation)’이라 번역하는데, 역시 한문의 뜻대로 ‘생각한다’로 해석하면 족합니다. 보고들은 것을 가지고 생각한다는 뜻이지요. 행온(行蘊)은 ‘saṃskāra’의 번역인데 ‘saṃ’은 ‘~을 가지고’의 뜻이고 ‘kāra’는 작위(作爲)의 뜻이 있습니다. 행한다는 뜻이지요. 의지적으로 동작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지작용(volition)이라 말하기도 하지요. 식온(識蘊, vijñāna)은 ‘vi(분별하여) + jña(안다)’는 뜻인데 판단력을 갖춘 우리의 의식작용을 말합니다.
사실 매우 어렵게 해설이 되어 있지만 실상 알고 보면 한자의 뜻 그대로 생각하는 것이 제일 간단하지요. 수(受)는 감각작용입니다. 느끼는 것이지요. 상(想)은 느낀 것을 조합하여 생각하는 것이죠. 행(行)은 생각한 것을 소재로 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行)이 축적되면서 판단력과 기억력을 갖춘 우리의 의식(識)의 장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색 → 수 → 상 → 행 → 식은 저차원의 물질이 고차원의 의식에까지 진화되는 조합과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여기서 말하는 ‘조합formative process’은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는 ‘Prchension’, ‘Concrescence 등의 말에 해당). 그런데 이 모든 단계는 독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합현상이므로 그 자체로 독자적인 아이덴티티(실체성)를 갖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과정(Process)‘일 뿐이지요.
오온(五蘊) pañca skandha |
물질세계 material world |
색(色) rūpa |
물질 matter |
의식작용 mental function |
수(受) vedanā |
감수작용 perception |
|
상(想) samjñā |
표상작용 representation |
||
행(行) saṃskāra |
의지작용 volition |
||
식(識) vijñāna |
인식작용 consciousness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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