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 3.5.2 용궁부연록과 崔生遇眞記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본문

카테고리 없음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 3.5.2 용궁부연록과 崔生遇眞記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06:23
728x90
반응형

2) 용궁부연록과 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와의 유사점

 

용궁을 박연폭포(朴淵瀑布) 표연(飄淵)으로 설정한 것은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에서 여선문(余善文)이 체험한 해중의 용궁과는 다르나, 후대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 1484~1555)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에서 최생이 두타산(頭陀山) 용추(龍湫)를 통하여 용궁에 나아가는 수법과 비슷하다.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에는 광리왕(廣利王)의 초청을 받은 여선문이 용궁에 나아가 신축한 영덕전(靈德殿)의 상량문(上樑文)을 짓는다. 초대연의 참석자로는 광연왕(廣淵王)ㆍ광덕왕(廣德王)ㆍ광택왕(廣澤王)이 등장한다. 미녀들이 등장하여 능파지사(凌波之詞)와 채련곡(採蓮曲)을 노래하고 선문(善文)은 수궁경회시이십운(水宮慶會詩二十韻)을 짓는다. 잔치를 파하자 광리왕은 파려반(玻瓈盤)에 야광주(夜光珠)와 통천(通天)의 서각(犀角)을 담아 글값으로 답례한다.

 

後亦不以功名爲意 棄家修道 徧遊名山 不知所從其後 生不以名利爲懷 入名山 不知所從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에서는 최생이 결국 두타용추(頭陀龍湫)를 통해 용궁을 찾아가는데, 거기에는 동선(洞仙)ㆍ도선(島仙)ㆍ산선(山仙)의 삼선(三仙)이 초대되어 있었으며 파연(罷宴) 후 귀가길에는 동선(洞仙)이 주는 연명(延命)의 선약(仙藥)을 받아 학을 타고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말미의 其後生入山採藥 不知所從 證空老居無住菴 多說此事에서 보면 종결법은 같으나 증공(證空)이 늦도록 무주암(無住菴)에 살면서 최생의 체험을 후세에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에서 한생(韓生)과 더불어 초대된 인물은 조강신(祖江神)ㆍ낙하신(洛河神)ㆍ벽란신(碧瀾神)이라고 했다. 조강(祖江)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지는 곳이요. 낙하(洛河)는 한강의 속칭이며, 벽란(碧瀾)은 개성부(開城府) 서쪽 삼십리에 있는 나루를 이른다. 그러므로 본 작품(作品)은 송도(宋都)의 명승 박연폭포(朴淵瀑布, 龍湫)를 용궁으로 설정하고 주변의 한강 임진강 등의 제신(諸神)이 한생(韓生)과 어우러지는 용궁세계를 허구화하고 있다.

 

그 밖에도 곽개사(郭介士)현선생(玄先生)강하군장(江河君長) 등은 조정백관을 이르고, 소운기(掃雲器)ㆍ전모경(電母鏡)ㆍ뇌공고(雷公鼓)ㆍ초풍탁(哨風橐)ㆍ쇄수추(灑水箒) 등은 세종의 천문의기ㆍ측우기ㆍ자격루 등 과학기구를 가리키며 상량문(上樑文)을 청함세종께서 시습을 불러 그이 재명을 친시한 것으로 봄은 박성의(朴晟義)도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朴晟義, 東峯김시습(金時習)금오신화(金鰲新話), 前揭書.

 

이처럼 한생(韓生)의 체험을 김시습(金時習)의 성장체험과 대비해보면 거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리고 용왕이 한생(韓生)에게 부탁한 상량문(上樑文)처럼 김시습(金時習)의 재명을 인정하는 일문으로도 보아진다.

 

 

 

꿈에서 깨어난 후 명리를 떠났다는 것

 

그러나 작품(作品)을 단순히 한 작가의 자서전적 기록으로 속단해 버릴 경우 그 작품(作品)의 문학적(文學的) 위상(位相)에 손상을 입힐 염려가 있다. 제전등신화후(題剪燈新話後)에서 이미 보는 것처럼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이나 용당영회록(龍塘靈會錄)등을 읽은 경험이 이 작품(作品)의 골격을 이루고, ‘夙著異靈 載諸傳奇 國家歲時 以牲牢祀之에서 보는 것처럼 박연용추(朴淵龍湫)에서 예부터 용신이 있어 이를 국가에서 명절이면 큰 소를 잡아 제사하는 우리 전통적 민속신앙을 전래, 용궁사상과 결부시켜 창작해낸 작품(作品)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한생(韓生)의 용궁 환대는 상대적으로 현실에서의 작자의 소대(疏待)를 의미한다. 꿈을 깨자 용궁에서 받은 선물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꿈속에서 누렸던 환대를 격하할 수 없다는 절대적 가치 부여를 의미한다. 그 후 세상의 명리를 생각지 않고 명산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비록 패배자가 될지라도 끝까지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세상으로부터의 횡포를 거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趙東一, 小說의 출현-금오신화(金鰲新話)의 경우, 韓國文學通史, 2, 2005..

 

 

 

 

 

 

인용

목차

한문 논문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