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들어야 들린다
제일 마지막 표현인 ‘부좌이좌(敷座而坐)’는 라집(羅什)의 위대성을 잘 드러내주는 명번역 중의 명번역이다. 그 산스크리트 원문을 보면, ‘이미 마련된 자리에 앉아, 양다리를 꼬고, 몸을 꼿꼿히 세우고, 정신을 앞으로 집중하였다.’로 되어 있다. 이미 설정된 자리에 쌍가부좌를 틀고 등을 세우고 입정(入定)하였다는 뜻인데, 현장(玄奘)은 이러한 원문에 충실하여 ‘어식후시(於食後時), 부여상좌(敷如常座), 결가부좌(結跏趺坐), 단신정원(端身正願), 주대면념(住對面念)’이라고 구구한 문자를 늘어놓았다. 집(什)【앞으로 꾸마라지바(鳩摩羅什)를 약(略)하여 집(什)으로 쓰기도 한다】의 위대성은 바로 문자의 간결함과 상황적 융통성이다.
특정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보다는 불특정의 장소에 방석이나 자리를 깔아 자리를 만드는 것이 보다 더 상황적이고 자연스러운 맛이 있다. 그리고 ‘결가부좌를 하고 등을 세우고 선정(禪定)에 들었다’하는 것보다는 그냥 ‘앉았다’, 그냥 ‘자리 위에 편안하게 앉았다’가 몇천만 배 나은 번역이다. 『금강경』의 설법은 선정이나 삼매에 들은 자가 비의적으로 내뱉는 주문이 아니다. 그냥 편하게 방석 위에 앉은 자가 또렷한 제정신으로 말하는 일상언어인 것이다. 집(什)의 번역의 위대성은 바로 이러한 자연스러움에 있는 것이다. 빈 공간에 자리를 까는 행위는, 바로 자리를 깔음으로써 그 자리를 성화(聖化, sacralization)시킨다는 제식적 의미를 지닌다. 즉 그 주변에 성스러운 공간이 창출되는 것이다. ‘자리를 깐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성화의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좌(坐)’ 즉 ‘앉았다’ 함은 무엇인가?
사복음서에 공통으로 나오는 유명한 스토리 중의 하나가 예수가 다섯 개의 떡덩이와 두 마리의 물고기로 5천 명의 무리를 먹인 사건이다. 예수에게 복음의 진리를 들으러 모인 갈급한 심령 5천 명! 날이 이미 어두웠고 마을에 내려가 사먹으려 해도 돈도 없고 그만한 물자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 오병이어(五餠二魚)! 이것은 혼자 먹기에 딱 좋은 분량이다. 5병2어를 혼자 먹는다는 것은 분명 소승(小乘)이다! 5병2어로 5천 명이 다 함께 먹는 것이야말로 대승(大乘)이다. 나는 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설화처럼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의 갈림길을 말해주는 강력한 상징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복음서에 공통으로 나오고 있는 이 기적설화를 잘 뜯어보면 이 소승과 대승의 갈림길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예수의 한마디를 모두가 간과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혼자 먹을 수 있는 분량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다. 이때 예수는 말씀하신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그리고 4복음서에 공통으로 기재되어 있는 결정적인 한 마디가 있다. 예수는 5천 명의 무리를 향하여 외친다.
“이 무리들로 하여금 앉게 하라!”
여기에 가장 중요한 멧세지는 배고파 들뜬 오천 명의 무리로 하여금 모두 같이, 함께 앉게 한다는 것이다. 한 마음으로 한 잔디 위에 앉게 하라! 배고픔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나서 싸우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복음의 소식에 기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앉아라! 이스라엘의 사람들아! 바리새도 앉아라! 엣세네도 앉아라! 단검을 품은 이스카리옷(Judas Iscariot)도 앉아라! 게릴라인 열성당원들도 앉아라! 제사장도 앉고, 배고픈 자도 앉고 배부른 자도 앉아라! 보통 ‘일어나라!’는 외침은 ‘북돋음’이요. 무위(無爲)가 아닌 유의(有爲)로의 외침이다. 전쟁이 일어났다! 일어나라! 싸우자! 자본가들의 횡포가 심하다. 일어나라! 노동자여! 나가자! 싸우자! 춘투의 계절이다!
다섯 개의 떡덩이와 두 마리의 물고기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기 전에 예수가 요구한 것은 ‘앉으라!’라는 명령이었다. 바로 ‘앉음’의 ‘일심(一心)’이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가 5천 명에게 공유될 수 있는 대승(大乘)의 비결이었다.
서서 듣는 진리가 있다. 그러나 금강의 지혜는 앉아서 들어야 들린다. 모든 성난 가슴을 가라앉히고, 북돋아진 모든 양기를 가라앉히고 들어야 들린다. 성문(聲聞)도 독각(獨覺)도 보살(菩薩)도, 삼승(三乘) 모두가 같이 앉아야 들리는 지혜인 것이다. 이것이 제1분(第一分)의 마지막이다. 이제 우리는 겨우 금강의 지혜가 설파되는 자리의 문턱에 온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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