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 성 안에서 차례로 빌으심을 마치시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오시어, 밥 자심을 마치시었다.
於其城中, 次第乞已, 環至本處, 飯食訖.
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반식글.
우리말은 세조언해본을 많이 따랐다.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그 문의(文義)를 해석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그 실제로 일어난 상황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1분 3절은 바로 그러한 이미지가 명료하게 그려지는 대목이다. 새벽에 먼동이 틀 무렵, 잠에서 깨어난 비구승들이 가사를 챙겨입고 바리를 들고 1km 떨어진 대성(大城) 안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성안에서 차례로 밥을 빌고, 다시 기원(祇園)의 숲으로 돌아오는 평화롭고 웅장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차제(次第)’란 바로 우리말의 ‘차례’와 같은 표현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말의 ‘차례’가 바로 이 ‘차제(次第)’라는 한자음이 변한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후, 훈민정음으로 한자음을 표기하려고 만든 운서(韻書), 그러니까 우리말 음가로 표기된 최초의 『중한사전』이라 말할 수 있는 『동국정운(東國正韻)』【신숙주(申叔舟) 등 집현전 학사 9명이 세종의 왕명으로 편찬하여 1448년에 간행】의 「서(序)」에 한자음이 우리말의 발음 환경 속에서, 그 초성(初聲)이 변한 예로 차제(次第, 차제 → 차례)와 목단(牧丹, 목단 → 모란)의 두 예를 들고 있다.
‘차제(次第)’는 ‘차례로’라는 뜻이며, ‘걸이(乞已)’는 ‘빌으심을 마치시었다’는 뜻이다. 본동사는 ‘걸(乞)’이고, ‘이(已)’는 그 동사의 진행 상태를 나타내는 보어(補語)이다. 문법학에서는 ‘결과보어’라고 칭한다.
그런데 ‘차례로 빌었다’는 뜻은 무엇일까? 1,250명이 한 집을 다 거친다면 그 집은 1년 먹을 곡식이 다 거덜나도 모자랄 것이다. 분명히 비구(比丘)들은 구역을 나누어 중복되지 않게 민폐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빌었어야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육조(六祖)는 재미있는 주석을 남겨놓고 있다:
‘차례로’라는 말은 가난한 집과 부잣집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대한다는 뜻이며 ‘빌으심을 마치시었다’는 것은 많이 빈다 해도 일곱 집을 넘지않는 것이며, 일곱 집만 되면 다시 다른 집에는 가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次第者, 不擇貧富, 平等以化也. 乞已者, 如過乞, 不過七家. 七家數滿, 更不至餘家也.
이것이 반드시 불타시대의 걸식의 법칙을 나타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부처님시대에 걸식에도 어떤 예법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선업(善業)을 더 짓게 한다는 뜻에서 가난한 집만을 찾아다닐 수도 있고, 혹자는 서민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부잣집만을 골라 다닐 수도 있다. 여기 ‘차례로’라는 말에 가난한 집, 부잣집을 불문하고 차례로라는 뜻이 있다함은 일체의 분별심(分別心)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빌어도 많이 빌어서는 아니 된다. 일곱 집만 빌고, 일곱 집에서 밥을 못얻는다 하더래도 더 빌어서는 아니 된다. 주어지는 대로 다른 비구들과 나누어 먹으면 될 것이고, 없으면 굶어야 할 것이다. 빌음에도 어떤 일정한 법도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미얀마에서 현재 행하여지고 있는 습속을 보면, 새벽 6시 먼동이 틀 무렵 장자(長者)가 앞서 일렬로 나가며, 나가기 전에 간단한 게송(偈頌)을 읊는다고 한다. 반드시 맨발로 나가며 비가 와도 일체 우산을 쓸 수 없으며 걸식할 때는 일체 상대방을 쳐다보아서는 안된다. 바리를 가슴에 품고 고개를 숙이는 자세를 취한다. 걸식이 그 자체로 하나의 고행인 것이다.
나는 어려서 비교적 유족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시대 때 우리 아버지가 세의전을 거쳐 쿄오토제대(京都帝大)에 유학까지 한 분이고 보면 당시로서는 정말 부잣집 대가(大家)였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걸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우리 어머니는 분명 대갓집 큰마나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큰마나님 노릇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어머니는 평생 이런 원칙을 가지고 사셨다: ‘누구든지 우리집 대문안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등돌리고 떠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옛날 집들의 대문은 24시간 개방되어 있었다. 그때는 밥을 비는 자나 밥을 주는 자나 다 같이 예의가 있었다. 거지들은 주인집 사람들이 밥을 먹는 시간은 피해서 왔다. 그리고 거지가 오면 우리 어머니는 꼭 툇마루에 독상을 차려 주었다. 그러나 거지는 툇마루에 앉아서 그것을 먹는 법이 없었다. 부엌앞 마당 한 구석에 그것을 가지고 가서 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명절 때가 되면 자기들이 보일 수 있는 성의를 다했다. 그들은 흔히 빗자루나 조리 같은 것을 삼아가지고 왔다. 이것이 옛날에 내가 직접 경험한 걸인들의 예법들이요 우리네 양속(良俗)이다.
"환지(還至)’는 ‘되돌아 왔다’는 뜻이다. ‘본처(本處)’는 기원(祇園)이다. 즉 떠났던 본래의 자리이다. ‘반식글(飯食訖)’에서 ‘반(飯)’은 ‘밥’이라는 명사로 여기서는 ‘아침’에 해당되는 복합적 개념이다. ‘식(食)’은 ‘먹다’라는 동사로써 반(飯)을 목적으로 갖는다. ‘글(訖)’은 식(食)이라는 동사의 보어(補語)이다. ‘반식글(飯食訖)’은 ‘아침먹기를 끝내었다’가 된다【訖은 마친다는 뜻일 때는 ‘글’로 읽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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