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무릇 있는 바의 형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佛告須菩堤: “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불고수보리: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아론(無我論)’이 강한 어조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 처음 ‘허망(虛妄)’ 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허망이라는 말은 곧 인간의 인식과 관련된 말이다. 존재 그 자체의 허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는 방법ㆍ수단이 모두 허망하다는 뜻이다. 콘체는 이 허망을 ‘fraud’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우리 인식의 기만성을 내포한 말이다. ‘견제상비상(見諸相非相)’의 ‘견(見)’은 ‘깨닫다’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제상(諸相)이 비상(非相)임을 깨닫는다면, 그제서야 곧 여래(如來)를 보게 되리라는 뜻이다.
법정 스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이 구절을 어느 선객(禪客)이 제상(諸相)과 비상(非相)을 같이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고 해석한 적도 있다. 문의(文義)의 맥락으로 보면 바른 해석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석하여도 그 종지(宗旨)에 어긋남은 없다.”
원불교는 법당에 모신 법신불(法身佛)이 참으로 법신(法身)이라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등신불(等身佛)일 필요가 하나도 없다 하여 아예 그것을 원(圓, 동그라미)의 모습으로 추상화시켰다. 과감하고 혁신적인 발상이다. 원불교도 처음에는 이러한 혁신불교로서 출발한 콤뮤니티운동이었다. 그러나 원불교의 과제상황은 바로 그러한 혁신적인 발상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관성 있게 유지시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데 있다. 원불교도들에게 끊임없는 반성을 촉구한다.
석두희천(石頭希遷) 문하(門下)의 선승,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이 혜림사(慧林寺)에 머물 때, 매우 추운 겨울 날씨에 법당에서 좌선을 하다가 궁둥이가 시려우니까 법당에 놓인 목불상을 도끼로 뻐개 불 지피우고 궁둥이를 쬐이는 장면이 있다. 내 책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통나무, 1998) 68~69쪽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제상비상(諸相非相)’의 의미를 한번 이와 관련시켜 다시 새겨볼 만하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則見如來).’는 『금강경』에 처음 나오는 사구게(四句偈)다. 『금강경』에서 ‘사구게’라고 말한 것이 꼭 이런 것을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4행시에 해당되는 대목이 제10분, 제26분, 제32분에도 나온다. 그러니까 4개의 4행시가 있는 셈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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