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이 복덕은 곧 복덕의 본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오이다. 그러한 까닭에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신 것이오니이다.”
須菩堤言: “甚多. 世尊! 何以故? 是福德卽非福德性, 是故如來說 福德多.”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시복덕즉비복덕성, 시고여래설복덕다.”
보화를 하늘에 쌓아둔다는 것은 곧 대승적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대승적 마음가짐이란, 곧 복덕에 복덕이라는 실체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복덕을 복덕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만 복덕은 복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말한다: “함이 없음을 행하면 되지 않음이 없다”(위무위爲無爲, 즉무불치則無不治. 제3장).
‘즉비복덕성(卽非福德性)’이 『대정(大正)』 판본에는 ‘즉비복복성(卽非復福性)’으로 되어 있다. 『대정(大正)』본에 특별한 교주(校註)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단순한 식자상의 오류로 간주된다. 나카무라는 『대정(大正)』본의 오류를 그대로 따랐고 이기영본(本) 역시 동일하다. 우리가 이런 경우 어떤 근거 위에서 『대정(大正)』의 판본을 오류라 할 수 있는가? 『대정(大正)』도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훌륭한 판본이지만, 『대정(大正)』과 『고려』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대정(大正)』은 활자배인본(活字排印本)이요, 『고려』는 목판본(木版本)이라는 것이다. 양자간(兩者間)에 특별한 의미상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때는, 목판본(木版本)이 활자본(活字本)에 항상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활자본(活字本)은 식자공에 의하여 너무도 쉽게 오식(誤植)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미상으로도 ‘시복덕(是福德), 즉비복덕성(卽非福德性), 시고여래설복덕다(是故如來說福德多).’의 문장에 있어서 ‘복덕(福德)’이 ‘복복(復福)’으로 바뀌어야 할 하등의 필연성이 없다. 우리 『고려대장경』의 판본의 우수성이 처처(處處)에서 입증되는 것이다. 위대하도다! 고려Corea라는 대제국 문화인들의 섬세한 손길이여!
세조본도 ‘즉비복덕성(卽非福德性)’으로 되어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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