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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고원한 경지에까지 이른다
19-12. 자유(子游)가 말하였다: “자하(子夏)의 문인소자(門人小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應對)하고, 집안을 들락날락하는 예절 정도는 잘 배운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말엽적인 것이다. 근본으로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으니 어찌할 것인가?” 19-12. 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 應對, 進退, 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 자하(夏)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어허! 언유(言游: 자유의 성과 자)의 말이 지나치다! 군자의 도인즉, 어느 것이 먼저라 하여 전하고, 어느 것이 후라 하여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초목에 비유해도 용도에 따라 구역을 나누어 심고 수확에도 단계적 절차가 있는 법이니, 어찌 군자의 도에 관하여 근본을 운운하면서 월권을 하려드는가?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그 모든 것을 구비한 분은 오직 성인(聖人)이실 것이다!” 子夏聞之曰: “噫! 言游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以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 |
자하의 말이 옳다. 섣불리 본질을 운운하는 자유(子游)는 겉멋이 든 놈이다. 자유의 비판은 적확한 비판이 아니다. 인간은 당연히 ‘쇄소(洒掃)’로부터 성인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쇄소를 버리고 위성(爲聖)이니 천도(天道)니 상달(上達)을 운운할 수 없다.
우리나라 퇴계(退溪) 학풍을 비판하는 남명(南冥) 조식(曹植, 1501~1572)의 말에도 비슷한 언급이 있다. 그가 퇴계에게 직접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근래 배운다 하는 자들이 손으로는 쇄소(洒掃)의 예절을 알지 못하며 주둥아리로만 천리(天理)를 말하고, 속셈으로는 이름이나 훔쳐가지고 사람을 속이는 데만 써먹어, 그 해가 만연되고 있소이다. 선생과 같은 어른께서 이를 야단치고 말리지 아니 하니 이런 꼴이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까[近見學者, 手不知灑掃之節, 而口談天理, 計欲盜名, 而用以欺人, 害及他人. 豈先生長者無有以訶止之故耶]?”
자기가 사는 방 하나 정결하게 청소하고 살지 아니 하는 자는 인간의 자격이 없다. 삭풍이 부는 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둥우리를 보라! 얼마나 질서 있는 삶의 둥우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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