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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 자장 - 12.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고원한 경지에까지 이른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 자장 - 12.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고원한 경지에까지 이른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1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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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고원한 경지에까지 이른다

 

 

子游: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 應對, 進退, 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

, 色賣反. , 素報反.

子游子夏弟子, 於威儀容節之間則可矣. 然此小學之末耳, 推其本, 大學正心誠意之事, 則無有.

 

子夏聞之曰: “! 言游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以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

, 必列反. , 於虔反.

, 誨人不倦之倦. , 猶類也. 言君子之道, 非以其末爲先而傳之, 非以其本爲後而倦敎. 但學者所至, 自有淺深, 如草木之有大小, 其類固有別矣. 若不量其淺深, 不問其生熟, 而槪以高且遠者强而語之, 則是誣之而已. 君子之道, 豈可如此? 若夫始終本末一以貫之, 則惟聖人爲然, 豈可責之門人小子乎?

程子: “君子敎人有序, 先傳以小者近者, 而後敎以大者遠者. 非先傳以近小, 而後不敎以遠大也.”

又曰: “洒掃應對, 便是形而上者, 理無大小故也. 故君子只在愼獨.”

又曰: “聖人之道, 更無精粗. 從洒掃應對, 與精義入神貫通只一理. 雖洒掃應對, 只看所以然如何.”

又曰: “凡物有本末, 不可分本末爲兩段事. 洒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又曰: “自洒掃應對上, 便可到聖人事.” 愚按: 程子第一條, 說此章文意, 最爲詳盡. 其後四條, 皆以明精粗本末, 其分雖殊, 而理則一. 學者當循序而漸進, 不可厭末而求本. 蓋與第一條之意, 實相表裏. 非謂末卽是本, 但學其末而本便在此也.

 

 

 

 

해석

子游: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 應對, 進退, 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

자유가 자하의 문인소자들은 마땅히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소학적인 배움의 실천에는 괜찮다. 그러나 말엽적인 것으로 근본은 없으니, 어째서인가?”라고 말했다.

, 色賣反. , 素報反.

子游子夏弟子, 於威儀容節之間則可矣.

자유는 자하의 제자들이 위의와 용모와 예절에 있어서는 괜찮지만

 

然此小學之末耳,

이것은 소학의 말엽적인 것일 뿐이라고 놀린 것이다.

 

推其本,

근본을 미룬다면

 

大學正心誠意之事, 則無有.

대학마음을 바로잡고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의 일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子夏聞之曰: “! 言游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以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자하가 그것을 듣고 말했다. “! 언유의 말이 지나치다. 군자의 도는 어느 것을 먼저라 해서 전하며, 어느 것을 뒤라 해서 늦추겠는가? 초목에 비유하면 종류에 따라 구분되는 것과 같으니, 군자의 도를 어찌 속일 수 있는가?

, 必列反. , 於虔反.

, 誨人不倦之倦.

()남을 가르치길 게을리 하지 않는다의 권()과 같다.

 

, 猶類也.

()는 종류와 같다.

 

言君子之道, 非以其末爲先而傳之,

군자의 도는 말단으로 급선무를 여겨 전하지는 않고

 

非以其本爲後而倦敎.

근본으로 뒤라 여겨 가르치길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但學者所至, 自有淺深,

다만 학자가 이르는 것에 스스로 깊고 옅음이 있으니,

 

如草木之有大小, 其類固有別矣.

마치 초목이 크고 작은 게 있어 종류가 진실로 구별이 있는 것과 같다.

 

若不量其淺深, 不問其生熟,

만약 옅음과 깊음을 헤아리질 않고 서툴거나 익숙한 것을 묻질 않고

 

而槪以高且遠者强而語之, 則是誣之而已.

대개 고차적이고 원대한 것으로만 억지로 말한다면 이것은 속인 것일 뿐이다.

 

君子之道, 豈可如此?

군자의 도가 어찌 이와 같겠는가?

 

논어’ ‘자장(子張)’의 제12장에서 자하(子夏)는 자신의 교육법을 오해한 자유(子游)에 대해 반론을 폈다. 자유는 자하의 문인들이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고 진퇴하는 예절은 배웠지만 정심(正心)과 성의(誠意) 같은 근본 공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자하는 자유의 말이 지나쳤다고 반박하고 위와 같이 말했다. 자하는 대덕(大德)을 확립하면 소덕(小德)이 간혹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무방하다고 보았지만, 결코 대덕(大德)의 공부만 힘쓰고 소덕(小德)의 공부는 소홀히 해도 좋다고 여긴 것이 아니다.

군자지도(君子之道)는 군자의 도리로, 자하는 본()과 말()의 구별이 없이 모두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다. 숙선전언(孰先傳焉)은 반어다.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겠는가, 지엽적인 것을 우선시해서 먼저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숙후권언(孰後倦焉)도 반어다.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가르치길 게을리하겠는가, 근본적인 것을 뒤로 돌려 가르치길 게을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비저초목(譬諸草木)그것을 초목에 비유하면이다. 비유의 원관념은 가르침에 고정된 순서가 있지는 않지만 어린 사람에게 소절(小節)부터 가르쳐 차츰 고원(高遠)하고 근본적인 것을 가르쳐나가는 일이다. 구이별의(區以別矣)는 종류에 따라 구별한다는 말이다. 언가무야(焉可誣也)는 반어로, 어찌 속이겠는가, 속일 수 없다는 뜻이다. 속일 무()란 그 위치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 대해 마치 이르러 있다고 기만함을 말한다.

사람을 선별해서 일부에게만 근본적인 것을 가르치고 나머지에게는 지엽적인 것만 가르친다면, 그것은 평등교육이 아니다. 우리 교육은 과연 평등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

근본과 말단이 갖춰진 사람은 오직 성인일 것이다.”

若夫始終本末一以貫之,

만약 처음과 끝, 본질과 말단이 하나로 그것을 꿰뚫는다면

 

則惟聖人爲然,

오직 성인만이 그러한 것이니,

 

豈可責之門人小子乎?

어찌 문인소자에게 책임 지울 수 있는가?

 

程子: “君子敎人有序,

정명도(程明道)가 말했다. “군자가 사람을 가르칠 때 차례가 있으니

 

先傳以小者近者,

먼저 자잘하고 지근한 것으로 전하고

 

而後敎以大者遠者.

후에 위대하고 고원한 것으로 가르친다.

 

非先傳以近小,

먼저 지근하고 자잘한 것을 전하고 후에

 

而後不敎以遠大也.”

고원하고 위대한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又曰: “洒掃應對, 便是形而上者,

또 말했다.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는 것은 곧 형이상(形而上)’으로

 

理無大小故也. 故君子只在愼獨.”

이치엔 대소가 없기 때문에 군자는 다만 홀로됨을 삼감에 있다.”

 

又曰: “聖人之道, 更無精粗.

또 말했다. “성인의 도는 다시 정밀함과 거친 게 없다.

 

從洒掃應對,

쇄소응대(洒掃應對)’로부터

 

與精義入神貫通只一理.

뜻을 정밀히 하고 신이한 경지에 드는 것[精義入神]’까지 다만 하나의 이치를 관통한다.

 

雖洒掃應對, 只看所以然如何.”

비록 쇄소응대(洒掃應對)’는 다만 그걸 하는 까닭이 어떠한지를 보아야 한다.”

 

又曰: “凡物有本末,

또 말했다. “모든 사물엔 본말이 있지만

 

不可分本末爲兩段事.

본말을 나누어 양극단의 일로 여겨선 안 된다.

 

洒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쇄소응대(洒掃應對)’가 그러한 것으로 반드시 그걸 하는 까닭이 있다.”

 

又曰: “自洒掃應對上, 便可到聖人事.”

또 말했다. “‘쇄소응대(洒掃應對)’로부터 올라가면 곧 성인의 일에 도달할 수 있다.”

 

愚按: 程子第一條,

내가 생각하기로 정자가 말한 제일 조항은

 

說此章文意, 最爲詳盡.

이장의 뜻을 설명함에 가장 자세하고 극진하다.

 

其後四條, 皆以明精粗本末,

그 후의 네 조항은 모두 정밀함과 거침, 근본과 말단이

 

其分雖殊, 而理則一.

나누어져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하나임을 밝혔다.

 

學者當循序而漸進,

학자는 마땅히 차례에 따라 점점 나가야 하니,

 

不可厭末而求本.

말단을 싫어하고 근본만 추구해선 안 된다.

 

蓋與第一條之意, 實相表裏.

대체로 제일 조항의 뜻과 실제로 서로 표리가 되니,

 

非謂末卽是本,

말단이 곧 근본이어서

 

但學其末而本便在此也.

다만 말단을 배우면 근본은 곧 여기에 있다고 말한 건 아니다.

 

논어’ ‘자장(子張)’의 제12장에서 자유(子游)가 자하(子夏)의 문인들이 세세한 예절은 배우지만 근본 공부는 못했다고 비판하자 자하는 지나치다고 반박을 했다. 그리고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도리로 말하면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고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가르치길 게을리 하겠는가라 반문하고 초목에 비유하면 종류로 구별하듯이 어린 사람에게는 소절(小節)부터 가르쳐 차츰 고원(高遠)하고 근본적인 것을 가르쳐나가는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하는 오직 처음과 끝을 구비하고 있고 어린 제자들은 그러한 경지에 있지 않거늘, 만일 어린 제자들에게 점진적인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자들을 속이는 일이 된다고 했다. 유시유졸(有始有卒)은 처음도 있고 끝도 있어서 처음과 끝이 하나로 관통되어 있다는 말이니, 처음은 근본(根本), 끝은 지말(枝末)을 가리킨다. ()는 유()와 통용한다.

북송의 정이(程頤)는 성인의 도에는 정()과 조()의 구별이 없다고 했다. ()은 형이학의 이치, ()는 형이하의 공부를 말한다. 정이는,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어른의 말에 응하고 손님을 대하는 작은 일로부터 의리(義理)를 정밀하게 연구하여 깊고 높은 경지에 들어가는 일에 이르기까지, 본래 하나의 이치로 관통되어 있다고 보았다.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 이것이다. 성인은 평소 정()과 조(), ()와 소()를 막론하고 모든 일에서 미진한 점이 없고, 굳이 생각을 하지 않고 억지로 힘을 쓰지 않는 가운데[不思不勉] 천도의 실상과 순수하게 부합한다.

이에 비해 배움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아직 공부의 경지가 옅고 익힘이 익숙하지 못하다. 따라서 그들에게 갑자기 높고 원대한 것을 말해준다면 그것은 그들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교육이란 것이 만일 사람을 크고 원대한 인격으로 성숙시켜 나갈 수 없다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조항 내용
1 君子敎人有序, 先傳以小者近者, 而後敎以大者遠者. 非先傳以近小, 而後不敎以遠大也.
2 洒掃應對, 便是形而上者, 理無大小故也. 故君子只在愼獨.
3 聖人之道, 更無精粗. 從洒掃應對, 與精義入神貫通只一理. 雖洒掃應對, 只看所以然如何.
4 凡物有本末, 不可分本末爲兩段事. 洒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5 自洒掃應對上, 便可到聖人事.

 

 

인용

목차 / 전문 / 편해 / 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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