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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박지원 - 답홍덕보서答洪德保書(二)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박지원 - 답홍덕보서答洪德保書(二)

건방진방랑자 2019. 5. 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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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德保書()

 

작은 명성에 비해 거대한 비방

弟之平生交遊 不爲不廣 挈德量地 皆許以友 然其所與者 不無馳名涉勢之嫌 則目不見友 所見者 唯名利勢也 今吾自逃於蓬藋之間 可謂不剃之比邱 有妻之頭陀 山高水深 安用名爲 古人所謂動輒得謗 名亦隨之 殆亦虛語 纔得寸名 已招尺謗 好名者老當自知

 

명성을 추구하면 생기는 불상사

年少果慕浮名 剽飾詞華 借藉奬譽 所得名字 僅如錐末 而積謗如山 每中夜自檢 齒出酸㳄 名實之際 自削之不暇 况敢復近耶 名之友已去吾目中久矣 所謂利與勢 亦甞涉此塗 蓋人皆思取諸人而歸諸己 未甞見損諸己而益於人 名兮本虛 人不費價 或易以相予 至於實利實勢 豈肯推以與人 奔趨者多見其前躓後踣 徒自近油點衣而已 此亦利害卑鄙之論 而其實皭然如此

 

좋은 벗이란

亦甞受戒於吾兄避此兩塗者 亦已十年之久 吾旣去此三友 始乃明目 求見所謂友者 葢無一人焉 欲盡其道 友固難矣 亦豈眞果無一人耶 當事善規 則雖牧猪之奴 固我之良朋 見義忠告 則雖采薪之僮 亦吾之勝友 以此思之 吾果不乏友朋於世矣 然而牧猪之朋 難與參詩書之席 而采薪之僮 非可寘揖讓之列 則俛仰今古 安得不鬱鬱於心耶

 

형에게도 좋은 벗이고픈 마음

入山以來 亦絶此念 而每思德操趣黍佳趣 悠然沮溺耦耕 眞樂依依 登山臨水 未甞不髣髴懷想也 念兄於友朋一事 知有血性 而至於九峯諸人 天涯地角 間關寄書 可謂千古奇事 然此生此世 不可復逢 則無異夢境 實鮮眞趣 庶幾一見於方域之中 無相閟諱 亦不難千里命駕 未知吾兄亦未之有見耶 抑斷此念於胷中否也 往日談屑之際 未甞及此 今適因一段悠鬱 聊以奉質焉 -孔雀館文稿

 

 

해석

 

작은 명성에 비해 거대한 비방

 

弟之平生交遊 不爲不廣

이 아우의 평소 교유가 넓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挈德量地 皆許以友

덕을 헤아리고 지체를 비교하여 모두 벗으로 허여한 터이지요.

 

然其所與者 不無馳名涉勢之嫌

그러나 벗으로 허여한 자 중에는 명성을 추구하고 권세에 붙좇는 혐의가 없지 않았으니,

 

則目不見友 所見者 唯名利勢也

눈에 벗은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는 것은 다만 명성과 이익과 권세였을 따름이외다.

 

今吾自逃於蓬藋之間[각주:1]

그런데 지금 나는 스스로 풀숲 사이로 도피해 있으니,

 

可謂不剃之比邱 有妻之頭陀

머리를 깎지 않은 비구승이요 아내를 둔 행각승이라 하겠습니다.

 

山高水深 安用名爲

산 높고 물이 깊으니, 명성 따위를 어디에 쓰겠는지요?

 

古人所謂動輒得謗 名亦隨之

옛사람의 이른바 걸핏하면 곧 비방을 당하지만, 명성 또한 따라온다.”는 것

 

殆亦虛語

또한 헛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纔得寸名 已招尺謗

겨우 한 치의 명성만 얻어도 벌써 한 자의 비방이 이르곤 합니다.

 

好名者老當自知

명성 좋아하는 자는 늙어가면 저절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명성을 추구하면 생기는 불상사

 

年少果慕浮名

젊은 시절에는 과연 나도 허황된 명성을 연모하여,

 

剽飾詞華 借藉奬譽

문장을 표절하고 화려하게 꾸며서 예찬을 잠시 받고는 했지요.

 

所得名字 僅如錐末 而積謗如山

그렇게 해서 얻은 명성이란 겨우 송곳 끝만 한데 쌓인 비방은 산더미 같았으니,

 

每中夜自檢 齒出酸㳄

매양 한밤중에 스스로 반성하면 입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었지요.

 

名實之際 自削之不暇

명성과 실정의 사이에서 스스로 깎아내리기에도 겨를이 없거늘

 

况敢復近耶

더구나 감히 다시 명성을 가까이 하겠습니까.

 

名之友已去吾目中久矣

그러니 명성을 구하기 위한 벗은 이미 나의 안중에서 떠나버린 지 오래입니다.

 

所謂利與勢 亦甞涉此塗

이른바 이익과 권세라는 것도 일찍이 이 길에 발을 들여놓아 보았으나,

 

蓋人皆思取諸人而歸諸己

대개 사람들이 모두 남의 것을 가져다 제 것으로 만들 생각만 하지

 

未甞見損諸己而益於人

제 것을 덜어내서 남에게 보태주는 일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名兮本虛 人不費價

명성이란 본시 허무한 것이요 사람들이 값을 지불하는 것도 아니어서,

 

或易以相予

혹은 쉽게 서로 주어 버리는 수도 있지만,

 

至於實利實勢 豈肯推以與人

실질적인 이익과 실질적인 권세에 이르면 어찌 선뜻 자기 것을 양보해서 남에게 주려 하겠습니까.

 

奔趨者多見其前躓後踣

그 길로 바삐 달려가는 자들은 흔히 앞으로 엎어지고 뒤로 자빠지는 꼴을 보기 마련이니,

 

徒自近油點衣而已

한갓 스스로 기름을 가까이 했다가 옷만 더럽힌 셈입니다.

 

此亦利害卑鄙之論 而其實皭然如此

이 역시 이해(利害)를 따지는 비열한 논의라 하겠지만, 사실은 분명히 이와 같습니다.

 

 

 

좋은 벗이란

 

亦甞受戒於吾兄避此兩塗者

또한 진작 형에게 이런 경계를 받은 바 있어, 이익과 권세의 이 두 길을 피한 지가

 

亦已十年之久

하마 10년이나 됩니다.

 

吾旣去此三友

내가 명성ㆍ이익ㆍ권세를 좇는 이 세 가지 벗을 버리고 나서,

 

始乃明目 求見所謂友者 葢無一人焉

비로소 눈을 밝게 뜨고 이른바 참다운 벗을 찾아보니 대개 한 사람도 없습디다.

 

欲盡其道 友固難矣

벗 사귀는 도리를 다하고자 할진댄, 벗을 사귀기란 확실히 어려운가 봅니다.

 

亦豈眞果無一人耶

그러나 어찌 정말 과연 한 사람도 없기야 하겠습니까.

 

當事善規 則雖牧猪之奴 固我之良朋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잘 깨우쳐 준다면 비록 돼지 치는 종놈이라도 진실로 나의 어진 벗이요,

 

見義忠告 則雖采薪之僮 亦吾之勝友

의로운 일을 보고 충고해 준다면 비록 나무하는 아이라도 역시 나의 좋은 벗인 것이니,

 

以此思之 吾果不乏友朋於世矣

이를 들어 생각하면 내 과연 이 세상에서 벗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요.

 

然而牧猪之朋 難與參詩書之席

그러나 돼지 치는 벗은 경서(經書)를 논하는 자리에 함께 참여하기 어렵고,

 

而采薪之僮 非可寘揖讓之列

나무하는 벗은 빈주(賓主)가 만나 읍양(揖讓)하는 대열에 둘 수는 없는 것인즉,

 

則俛仰今古 安得不鬱鬱於心耶

고금을 더듬어 볼 때 어찌 마음이 답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형에게도 좋은 벗이고픈 마음

 

入山以來 亦絶此念

산속으로 들어온 이래 이런 생각마저 끊어 버렸지만,

 

而每思德操趣黍佳趣[각주:2]

매양 덕조(德操)가 기장밥을 지으라고 재촉할 적에 아름다운 정취가 유유하였고,

 

悠然沮溺耦耕 眞樂依依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 짝지어 밭을 갈 적에 참다운 즐거움이 애틋하였던 것을 생각하면서,

 

登山臨水 未甞不髣髴懷想也

산에 오르고 물에 다다를 적마다 형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답니다.

 

念兄於友朋一事 知有血性

생각하건대 형은 벗 사이의 교제에 열렬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줄 잘 알지만,

 

而至於九峯諸人 天涯地角

심지어 구봉(九峯) 등 여러 사람들이 하늘가와 땅 끝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間關寄書 可謂千古奇事

여러 사람을 거쳐 힘들게도 편지를 부쳐오는 것은 천고의 기이한 일이라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然此生此世 不可復逢

그러나 이 생전,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으니,

 

則無異夢境 實鮮眞趣

곧 꿈속과 다를 바 없어 실로 진정한 정취는 드물 것입니다.

 

庶幾一見於方域之中 無相閟諱

혹시 우리나라 안에서 한 번 만나 보아 서로 거리낌 없이 회포를 털어놓을 수 있다면

 

亦不難千里命駕[각주:3]

천리를 멀다 아니 하고 찾아가고 말겠는데,

 

未知吾兄亦未之有見耶

형도 이런 벗을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抑斷此念於胷中否也

아니면 영영 이런 생각을 가슴속에서 끊어 버렸는지요?

 

往日談屑之際[각주:4] 未甞及此

지난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이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었으므로,

 

今適因一段悠鬱 聊以奉質焉 -孔雀館文稿

지금 마침 한 가닥의 울적한 마음이 들어 우선 여쭙는 바입니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09136

答洪德保書: 1 / 2 / 3

 

 

  1. 1778년(정조 2) 연암이 가족을 이끌고 황해도 금천(金川)의 연암협(燕巖峽)으로 이주한 사실을 말한다. [본문으로]
  2. 덕조는 사마휘(司馬徽)의 자이다. 사마휘는 후한(後漢) 말의 인물로 인재를 잘 알아보았는데, 유비(劉備)에게 제갈량과 방통(龐統)을 천거하였다. 사마휘와 제갈량 등은 양양(襄陽) 현산(峴山)에 사는 은사 방덕공(龐德公)을 존모하여 섬겼다. 제갈량은 방덕공의 집에 갈 때마다 상(牀) 아래에서 절을 하곤 했다. 그러나사마휘는 방덕공의 집에 갔을 때 방덕공이 출타하고 없자, 그 부인에게 빨리 기장밥을 지으라고 재촉하여 방덕공의 처자들이 분주히 상을 차렸는데, 잠시 뒤 방덕공이 돌아오더니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서 누가 주인인지 손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격의 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三國志 卷37 蜀書 龐統傳 裴松之註》 [본문으로]
  3. 不難千里命駕: 천리명가(千里命駕)는 멀리 벗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진(晉) 나라 때 여안(呂安)이 혜강(嵇康)의 고상한 취미에 탄복하여 그를 보고 싶은 생각이 날 적마다 즉시 천리 밖이라도 수레를 준비시켜 그를 만나러 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본문으로]
  4. 談屑之際: 담설(談屑)은 톱으로 나무를 썰 때 톱밥이 술술 나오듯이 말이 막히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두 사람이 만나 대화할 때 의기투합하여 화제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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