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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성현 - 풍소궤범서(風騷軌範序)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성현 - 풍소궤범서(風騷軌範序)

건방진방랑자 2019. 5. 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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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시만 남고 고시가 사라진 세태에 경종을 울리려 고시를 모아 편찬하다

풍소궤범서(風騷軌範序)

 

성현(成俔)

 

 

고시는 뿌리이자 근원이다

樹木者必培其根本, 根本旣固, 則柯葉自然鬯茂而敷翠, 導泉者必浚其淵源, 淵源旣開, 則支流自然旁達而無礙. 不然則無根之木必枯, 而無源之水必絶, 能喩此理, 可以知學詩之道矣.

夫古詩, 譬之水木, 則根本淵源也, 而律乃柯條支派也. 詩三百篇, 邈乎不可尙已, 蘇子卿李少卿, 始製五字, 逮建安黃初, 曺子建父子繼而振之, 王仲宣劉公幹之徒從而羽翼之. 自是厥後, 作者繼出, 歷魏唐極矣. 當是時也, 去古未遠, 元氣尙全, 故其詞雄渾雅健, 不務規矱, 而自有規矱.

 

당나라 근체는 근본을 잃고 수식만 야단스러워졌다

至唐又製律詩, 媲黃配白, 倂儷對偶競趨繩尺, 華藻盛而句律疏, 鍛鍊精而性情逸, 氣局狹而音節促, 淆淳散朴, 斲喪元氣, 而日趨乎萎薾.

大抵自古而學律易, 自律而學古難, 如枝葉不能庇本根, 支派不能當源流也.

 

고시는 없고 율시만 남은 폐단을 일깨우러

我國詩道大成而代不乏人, 然皆知律而不知古, 其間雖有能知者, 未免有對偶之病, 而無縱橫捭闔之氣, 以嫫母之資, 效西子之顰, 實今日之痼疾, 而不能醫者也.

余嘗在玉堂, 極論斯弊, 同列亦以爲然曰: “律詩則有瀛奎律髓, 絶句則有聯珠詩格, 而獨無古體所裒之集, 其可乎?”

於是登天祿閣, 抽金匱萬卷書, 自漢魏至于元季, 搜抉無遺, 擇其可爲楷範者若干首, 分爲前後集. 前集十六卷, 以體編之, 欲使人知其體製; 後集二十九卷, 以類分之, 欲使人從其類而用之. 譬如適淸廟者, 見朱絃疏越, 三歎而遺音, 大羹玄酒, 澹泊而有至味, 有夏嚼殷卣, 貴重而無紛餙之侈. 足以鼓其氣 養其詠, 昌其辭, 以造乎淵弘博大之域, 然後始可與論古之風矣.

所與同撰者, 叔強子珍君節國耳太虛次韶而余之攬轡東來, 遂鍥于梓焉. 成化二十年甲辰孟冬, 江原監司成俔, . 虛白堂文集卷之六

 

 

 

 

해석

 

고시는 뿌리이자 근원이다

 

樹木者必培其根本, 根本旣固, 則柯葉自然鬯茂而敷翠,

나무를 심는 이는 반드시 근본을 북돋워야 하니 근본이 이미 견고하다면 가지와 입은 자연스레 울창하고 무성하여 푸르름을 펼쳐낸다.

 

導泉者必浚其淵源, 淵源旣開, 則支流自然旁達而無礙.

샘을 파내는 이는 반드시 수원지를 파니 근원이 이미 트인다면 지류는 자연히 겉으로 나와 다다르니 막힘이 없다.

 

不然則無根之木必枯, 而無源之水必絶, 能喩此理, 可以知學詩之道矣.

그렇지 않다면 뿌리 없는 나무는 반드시 마를 테고 수원지 없는 물은 반드시 멈추니 이런 이치를 깨우칠 수 있다면 시를 배우는 방법을 알 만하다.

 

夫古詩, 譬之水木, 則根本淵源也, 而律乃柯條支派也.

일반적으로 고시(古詩)를 물과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와 수원지이고 율시(律詩)는 가지와 지류이다.

 

詩三百篇, 邈乎不可尙已, 蘇子卿李少卿, 始製五字, 逮建安黃初, 曺子建父子繼而振之, 王仲宣劉公幹之徒從而羽翼之.

시경은 까마득해 숭상할 만하지 않고 한()의 자경(子卿)인 소무(蘇武)와 소경(小卿)인 이능(李陵)이 처음으로 5자 시를 지었고, 건안(建安)ㆍ황초(黃初)건안은 후한 헌제(後漢獻帝)의 연호이며, 황초는 위 문제(魏文帝)의 연호이다. 건안과 황초의 연대는 서기 196년에서 226년까지에 이르며, 이 시기에 조식(曹植) 부자를 위시한 많은 시인이 나서 이 시풍을 건안체(建安體)라 하였다. 연간에 조식(曹植)과 조조(曹操)가 계승하여 떨쳤으며 중선(中宣) 왕찬(王粲)과 유간(劉幹)의 무리가 좇으며 보좌했다.

 

自是厥後, 作者繼出, 歷魏唐極矣.

이로부터 이후로 작가들이 계속해서 나와 위()ㆍ진()ㆍ송()ㆍ제()ㆍ수()ㆍ당()을 거쳐 극성을 이뤘다.

 

當是時也, 去古未遠, 元氣尙全, 故其詞雄渾雅健, 不務規矱, 而自有規矱.

이때에 옛날과의 거리가 멀지 않고 원기가 아직 보전되었기 때문에 시어는 크고 어우러지고 바르고 굳세 법도에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법도가 있었다.

 

 

 

당나라 근체는 근본을 잃고 수식만 야단스러워졌다

 

至唐又製律詩, 媲黃配白, 倂儷對偶競趨繩尺, 華藻盛而句律疏, 鍛鍊精而性情逸, 氣局狹而音節促, 淆淳散朴, 斲喪元氣, 而日趨乎萎薾.

당나라에 이르러 또 율시(律詩)를 짓게 되니 노랑에 견주어 흰백을 배치하고 대우를 아울러 늘어놓고 법도를 따랐으며 수식을 성대히 하지만 시구의 법칙은 엉성해지며 수식은 정밀하지만 성정은 달아났으며 기의 범위는 협소해지고 음절은 촉박해졌으며 순수함을 뒤섞고 순박함을 흩었으며 원기를 깎아내 상하게 하니 날로 위약해짐에 다가갔다.

 

大抵自古而學律易, 自律而學古難, 如枝葉不能庇本根, 支派不能當源流也.

일반적으로 고시로부터 율시를 배우긴 쉽고 율시로부터 고시를 배우긴 어려우니 가지와 잎이 뿌리를 도울 순 없고 지류가 수원지에 당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고시는 없고 율시만 남은 폐단을 일깨우러

 

我國詩道大成而代不乏人, 然皆知律而不知古, 其間雖有能知者, 未免有對偶之病, 而無縱橫捭闔之氣, 以嫫母之資, 效西子之顰, 實今日之痼疾, 而不能醫者也.

우리나라의 시도는 크게 융성해 시대에 사람이 없진 않았지만 모두 율시만 알고 고시는 모르고 그 사이에 비록 알 만한 이가 있어도 대우의 병폐를 피하질 못해 이곳저곳을 여닫는 기운이 없어 모모(嫫母)嫫母: 옛날 황제(黃帝)의 왕비로서 얼굴이 못생겼다.의 자질임에도 서시(四施)의 찡그림을 본받고 있으니 실로 지금의 고질병이고 낫게 할 수 없는 것이다.

 

余嘗在玉堂, 極論斯弊, 同列亦以爲然曰: “律詩則有瀛奎律髓, 絶句則有聯珠詩格, 而獨無古體所裒之集, 其可乎?”

내가 일찍이 홍문관(弘文館)에 있을 적에 이런 폐단을 극렬히 평론하자 동료들 또한 그러하다 여기며 율시에는 영규율수(瀛奎律髓)가 있고 절구(絶句)에는 연주시격(聯珠詩格)聯珠詩格: 책이름. () 나라의 간보(干輔)가 지은 것으로 칠언절구(七言絶句)를 모은 것이다.이 있지만 유독 고체를 모은 시집이 없는 건 괜찮은가?”라고 말했다.

 

於是登天祿閣, 抽金匱萬卷書, 自漢魏至于元季, 搜抉無遺, 擇其可爲楷範者若干首, 分爲前後集.

이에 천록각(天祿閣)天祿閣: 책을 수장한 나라의 건물 이름으로 한()대에 있던 것인데 같은 의미로 전용(轉用)한 것이다.에 올라 금궤(金匱)에서 만 권의 책을 뽑아 한나라와 위나라로부터 원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버림 없이 찾아 본보기[楷範]가 될 만한 것을 선택한 것이 약간 권이라 나누어 전후집으로 삼았다.

 

前集十六卷, 以體編之, 欲使人知其體製; 後集二十九卷, 以類分之, 欲使人從其類而用之.

전집(前集) 16권은 체제로 편집하여 사람들에게 체제를 알게 하려 했고 후집(後集) 29권은 분류로 나누어 사람들에게 분류를 따라 사용하게 하려 했다.

 

譬如適淸廟者, 見朱絃疏越, 三歎而遺音, 大羹玄酒, 澹泊而有至味, 有夏嚼殷卣, 貴重而無紛餙之侈.

비유하면 청묘(淸廟)淸廟: 나라에서 종묘(宗廟)에 제사지낼 때에 연주하는 악장(樂章)이다.에 들어가 주현(朱絃)주현(朱絃): 슬의 25현 한가운데 실제로는 쓰지 아니하는 열셋째 줄. 이를 중심으로 아래의 12현은 탁성 십이율, 위의 12현은 청성 십이율로 조율한다.의 크게 뚫린 밑구멍을 보고소월(疏越): 크게 뚫린 거문고 밑구멍. 세 번 감탄하고 소리를 남긴 것 같고 대갱(大羹)대갱(大羹): 오미(五味)를 일체 첨가하지 않은 담박한 육즙(肉汁)과 현주(玄酒)玄酒: []. 술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근본형태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사에 쓴다.가 담백하면서도 지극한 맛이 있는 것 같으며 하나라의 술 그릇과 은나라의 술통이 귀중하면서 요란한 장식의 사치가 없는 것 같다.

 

足以鼓其氣 養其詠, 昌其辭, 以造乎淵弘博大之域, 然後始可與論古之風矣.

그래서 넉넉히 기운을 고양시키고 읊조림을 기르며 시어를 창달하여 드넓고 큰 지경에 나아가게 한 뒤에야 비로소 고시의 풍을 함께 평론할 수 있다.

 

所與同撰者, 叔強子珍君節國耳太虛次韶而余之攬轡東來, 遂鍥于梓焉. 成化二十年甲辰孟冬, 江原監司成俔, . 虛白堂文集卷之六

같이 편찬한 사람들은 숙강(叔强)ㆍ자진(子珍)ㆍ군절(君節)ㆍ국이(國耳)ㆍ태허(太虛)ㆍ차소(次韶)이며 내가 고삐를 잡고 동쪽으로 와 마침내 널빤지에 새게 됐다. 성화(成化)명나라 헌종(憲宗, 재위 1465~1487)의 연호 20년 갑진(1484)년 한 겨울에 강원감사(江原監司) 성현(成俔)이 쓰다.

 

 

인용

작가 / 지도

앞 글(答洪德保書 三) / 뒷 글(息菴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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