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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침대에서 읽는 비고츠키 - 3. 정답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 본문

연재/배움과 삶

침대에서 읽는 비고츠키 - 3. 정답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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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답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

 

 

우리는 학교 교육을 받으며 정답이 있다고 배우며 살아왔다. 그래서 정답이 없는 것을 감내하며 버텨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삶이란 게 알지 못하는 미지의 순간을 버티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보니, 갑갑증이 일 수 밖에 없다. 그럴 때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답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답을 얘기하는 책을 읽거나 하는 것이다.

 

 

비고츠키하면 생각나는 내용. 이걸 보고 "그 얘기는 누구도 다 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그게 비고츠키의 전부가 아닌데~~"라고 했다.

 

 

 

정답을 원하세요?

 

자기계발서란 정체불명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힐링이란 이름의 강연에 사람이 꽉꽉 찬다. 그곳에 가면 답을 직접적으로 들어 갑갑한 마음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사 대상의 연수는 대부분이 수업 개선을 위한 코칭, 수업혁신과 같이 처방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즉각적으로 변화를 주고, 실험할 수 있는 방법을 다루어야 편하게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비고츠키가 한국에 전해질 때도 좀 더 나은 사람이 근접발달영역에서 잘 이끌어주면 학생의 학업능력이 신장된다는 식의 처방적인 내용만 전해졌다. ‘학력 신장이란 하나의 목표에 맞춰 어떤 이론이든, 어떤 방법이든 차용해다 쓰기 바빴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큰 맥락은 사라지고, 자질구레한 방법들만 난무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서술이 곧 처방이다라고 외친 들, “그래서 어떻게 서술하면 학력이 올라가나요?”라는 황당한 질문만 받게 될 뿐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서술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한 학생이 지각을 밥 먹듯 할 때, 그 학생의 상황을 어떻게 서술하느냐에 따라 처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침잠이 많다고 서술하면 저녁에 일찍 잘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고, ‘늦도록 게임을 해서라고 서술하면 컴퓨터를 없애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며, ‘가정 내 불화로 마음을 다잡지 못해서라고 서술하면 학교에서 안정감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줄 것이다. 즉 상황을 어떻게 서술해 나가느냐에 따라 방법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때 동섭쌤은 우치다쌤의 대화를 엮어 만든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에듀니티, 2013)라는 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줬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동섭쌤이다 보니, 학부모들의 강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책 제목만 보면 이 책을 읽으면 14세 아이의 마음을 잘 알게 된다고 오해할만 하다. 그때 한 학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서 이 강의를 들으러 왔습니다라고 강의에 참석하게 된 이유를 말했단다. 그러자 동섭쌤은 당황했다고 한다(강의 중에 당황과 황당의 차이도 설명해줬다. 차 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차가 앞으로 가면 당황이고, 그 차가 내 쪽으로 오면 황당이란다. 그 말에 강의실은 완전히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후문~). 왜냐하면 그 책에선 시종일관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란 주제로 강의하려 했기 때문이란다. 이런 경우가 바로 처방을 바라는 상황에서, 서술을 이야기할 때의 난처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서술의 중요함에 대해 얘기해야만 한다.

 

 

책을 통해 번역자의 강의를 들을 때의 부모 맘도 '어떤 방법이 있을 거야?'라는 심정이 강할 것이다.

 

 

 

유쾌! 상쾌! 통쾌!

 

망치로 깨부순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처방이 아닌 생각을 하게 하는 서술을 얘기한다는 이미지가 자칫 무거운 이미지, 또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지금 글로 재구성하다보니 좀 무거워진 것일 뿐, 강의 시간엔 웃음과 공감이 넘실거렸다.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당황과 황당의 차이’, ‘옆집 바이러스’,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라는 말들은 청중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중간 중간 삽입한 얘기들이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강의를 하니 일목요연한 강의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정신없다는 평을 들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유쾌하다는 평을 듣게 된다.

그 뿐 아니라 멀티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기도 한다. 이번엔 시간이 많지 않아 영화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보통 때는 영상을 함께 보며 거기에 들어 있는 메시지도 전달해준다. 그렇게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강의를 하다 보니, 저번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원피스라는 애니메이션으로 특강을 하기도 했고, 1월 말에 헤세이티에서 하게 될 특강 중 1강의 부제가 선우가 보라에게 한 말 vs 보라가 선우에게 한 말을 중심으로 in 응답하라 1988’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것들 속에서 어떤 메시지를 건져내어 전달해주는 데에 탁월하다. 그러니 상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집중력은 떨어지고 책상이 나를 끌어당긴다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이 날 강의에서도 한 분이 졸리기에 질문을 하겠습니다. 아까 전에 2할 정도의 학생만 이해해도 성공한 수업이고 나머지는 교사 집단에서 채워진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잘못 들으면 누군가가 할 것이기에 나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라며 질문을 던졌고, 동섭쌤은 “(짧고도 굵게)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른이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최고의 무술 경지는 합과 합이 만나 쨍쨍 소리를 내며 춤사위를 연상케 한다고 했는데, 지금 같은 경우 합과 합이 맞아 들어간 대련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동섭쌤은 졸음이 온다고 했는데, 그러면 우리 동천홍의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볼까요라며 연거푸 동천홍의 울음소리를 틀어줬으니 말이다. 그렇게 길게 우는 닭은 처음 봤기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집중하며 들었다. 최고 기록이 31초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동영상으론 17초 정도가 최장 시간이더라. 강의 시간에 어디선가 닭의 울음소리가 그것도 연거푸 들린다고 상상해보라, 어이없으면서도 통쾌하지 않은가(그런데 동천홍이란 자료는 수업 자료였다. “우린 어떻게 토종닭보다 동천홍이 길게 운다는 것을 알 수 있죠?”라고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을 해주진 않으셨다. 나중에 차를 타고 에듀니티로 갈 때 듣게 된 답은 무의식적으로 시간이란 매개물을 통해 생각하고 있기에 알 수 있다는 거였다).

 

 

동천홍, 또는 장명계. 아주 기풍 있게 생겼다. 그 목소리는 어찌나 간들어지는지 모른다. 

 

 

 

결론은 박동섭, 그를 조심!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박동섭, 그를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지금껏 고수하고 있었던 신념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생일대의 체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며, 상황을 여러 가지로 서술해보며 다양한 관점에서 말하게 될지도 모르며, “결혼과 연애의 차이점을 알아? 연애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고, 결혼은 불쾌감을 참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라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을지도 모르며, “동천홍이 31초를 우는 영상을 찾거든 나에게 좀 보내줘라며 밑도 끝도 없이 동천홍에 관심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명예로워지는 것도, 아름다워지는 것도 아니니 박동섭, 그를 조심하라.

 

 

평소엔 '진'이란 드라마를 보여주는데, 이날은 볼 시간이 없어서 쉬는 시간에 그냥 켜놓으셨다.

 

인용

목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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