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박동섭, 그를 조심
강의실엔 열기가 가득했다. 연수라고 하면 아무래도 점수를 채우기 위한 것이기에, 의무감으로 참석하여 시간만 때우게 된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 알고자하는 열망이 강의실을 활활 달구고 있었으니 말이다.
▲ 강의실에 모인 선생님들. 모두 집중력 있게 강의를 듣고 있다.
익숙한 낯섦, 그 속으로
더욱이 놀라웠던 점은 연수를 받으러 오신 분들은 동섭쌤에 대해, 그리고 그가 연구한 비고츠키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안양에서 강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동섭쌤을 아는 분들이 강의를 요청했기에 하나보다(참통모임 같은 경우)’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두 가지 부분에서 동섭쌤이 어떻게 강의를 하는지 보고 싶었다. 첫째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을 각인시키면서 강의하는가?’이다. 낯선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거부감을 낳기도 하기에 어떤 식으로 강의를 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둘째 ‘교육적 처방에 익숙한 교사들에게 어떻게 기술에 대한 부분을 강의하는가?’이다.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얘기를 들을 때 사람은 긴장하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너는 그르고, 나는 맞다’는 말처럼 들려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며 자신의 논지를 펴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드디어 강의실 앞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동섭쌤이 섰다. 이제 드디어 4년 만에 동섭쌤의 강의를 듣게 된다. 나까지 괜스레 긴장된다.
▲ 시작이다. 이 시간이 어찌 보면 가장 떨리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발작적으로 떠오른 ‘박동섭, 그를 조심’이란 제목
근데 결론부터 말해, 두 부분 모두 다 더할 나위 없었다. 솔직히 지금껏 전문 연구자로 수많은 강연을 다니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썰을 푼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텐데, 그런 걱정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는 볼멘소릴 들을 만 했다.
강의를 다 듣고 떠올랐던 게 우치다쌤이 쓰셨다던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조심』이라는 책 제목이었다. 물론 그 책을 읽어본 적은 없기에 그 책에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치다쌤은 무라카미상을 존경한다고 말한 적이 있기에, ‘그를 조심’이란 말이 어떤 말인지 유추는 가능하다. 흔히 ‘치명적인 매력’이라는 말은 어떤 매력에 빠져들어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을 때 쓰는 말이다. 아마 우치다쌤이 보기에 무라카미상은 ‘치명적인 매력’의 사내였나 보다. 그렇기에 반어적으로 ‘그를 조심’이라 표현한 것이다.
그처럼 책 제목이 발작적(이 단어 동섭쌤이 엄청 자주 쓴다)으로 떠오르며, ‘박동섭, 그를 조심’이 오늘 강연을 한 마디로 표현해주는 말이라 생각했다. 왜 그를 조심해야 하는지는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 우치다쌤의 강의는 정적인데 반해, 동섭쌤의 강의는 동적이다.
메르스보다 무서운 바이러스는?
살면서 지키려 노력해야 할 것들이 있다. 돈과 명예, 자존심은 너무도 흔하디 흔하기에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여기에 신념이 포함된다.
신념이란 어찌 보면 정해져 있진 않지만, 삶의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생각의 경향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엔 그게 나 자신을 지탱하게 도와주는 버팀목이지만, 때론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된다.
이를 테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를 신념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에게 과학적인 지식을 인용하여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해도 그는 거북해하기만 할 뿐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두 개다 섞어서, ‘창조과학회’라는 ‘창조론으로 해석한 진화론’을 만들기도 한다. 중요한 건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알고 싶은 대로 알려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배운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존의 생각’을 깨부수는 일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섭쌤은 아예 “배움이란 것은 배우려 생각했던 것 이외의 것을 배우는 것, 또는 그 이상의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난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우겠다’고 버티고 있는데, ‘그걸 아작내 주겠어.’라고 접근해 오니, “Warning! Warning!”을 외치며 살살 도망칠 수밖에 없다.
동섭쌤은 강의 중간 중간에 퀴즈를 냈다. 그런데 그 퀴즈들이 황당하기도 했지만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내용이라 다들 신나게 웃어재꼈다. “작년 한 해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바이러스는 ‘메르스’였었죠. 그 전에는 ‘사스’와 ‘에볼라’가 있었구요. 그런데 그것보다 가장 치명적이면서 언제든 곁에 있는 바이러스는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라고 묻는다. 순간 정적이 흐르며 알고 있는 바이러스 명칭을 떠올린다. ‘호환 마마, 그것도 아니면 수두가 아닐까?’라고 잠시 생각하고 있을 때, 동섭쌤은 “옆집 바이러스입니다”라고 한 마디 던진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소가 터졌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옆집 바이러스’에 노출되며 살게 되기에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동섭쌤은 옆집 바이러스의 정체를 설명해준다. 바로 ‘보통’ 내지 ‘평균’이란 객관을 위장한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기준이 무겁게 개인을 짓누르며 동화시키는 그 현실에 대해서 말이다. 최근엔 ‘엄친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이니, 이게 그저 웃어넘기기엔 뭔가 찝찝한 얘기임이 분명하다. 즉, 이 퀴즈를 통해 어찌 보면 사회적으로 너무나 당연시 되고, 나의 생각 속에 똬리를 틀고 앉은 일상을 깨부수고 있었던 것이다.
▲ 메르스보다 에볼라보다 사스보다, 아니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무서운 '옆집 바이러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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