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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이규보가 지은 아부시, 화려한데도 씁쓸한 이유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이규보가 지은 아부시, 화려한데도 씁쓸한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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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가 지은 아부시, 화려한데도 씁쓸한 이유

 

 

소화시평권하 64에서 두 번째로 인용된 시의 주인공은 이규보다. 최치원 다음에 이규보가 나온다는 건 물론 홍만종의 개인적인 취향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확 나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건 곧 삼국시대엔 최치원을 최고로 치는 것까진 인정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고려 전기엔 괜찮은 시가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고려 전기에 활약한 시인 중엔 정지상이나 김부식, 이인로와 같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의 시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다루지 한 명 정도는 다룰 만한데도 다루지 않았다. 이쯤 되면 홍만종에게 정말 묻고 싶어진다. 이번 편은 좋다는 한시들만을 선별했는데 그 기준이 무언지 궁금하다고, 그리고 고려 전기의 작품을 하나도 들지 않은 건 왜 그런지 궁금하다고 말이다.

 

이규보의 기사년동슥 한림주정(己巳年燈夕 翰林奏呈)라는 시는 전형적인 아부시. 이미 이런 류의 시들은 이색의 입근대명전(入覲大明殿)와 정도전의 계유정조봉천전구호(癸酉正朝奉天殿口號)라는 시를 통해 봤었다. 두 작품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임금이 개최한 연회를 드높이기 위해 한껏 치장된 시어들을 구사하고 있으며 임금을 마치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요순임금으로 그리거나 그 당시의 분위기를 매우 몽환적이며 환상적인 분위기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규보가 지은 이 작품에선 어떤 부분들이 묘사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대단히 재밌는 점이라 할 수 있다.

 

 

九門淸蹕走驚雷 구문 임금 행차에서 물렀거라는 외치는 소리 놀란 우레처럼 달리더니,
蘂闥華筵卜夜開 궁궐의 화려한 연회는 밤을 정해 열렸네.
龍燭影中排羽葆 용 장식된 촛대의 그림자 속에 임금님이 자리 잡고
鳳簫聲裏送金杯 봉황 피리 소리 속에 황금 술잔을 내려주시네.
三呼萬歲神山湧 세 번 만세를 부르니 신산이 솟구쳤고
一熟千年海菓來 한 번 천 년마다 익는 반도(蟠桃)가 왔다네.
恩許侍臣司宴樂 임금의 은혜가 사신들로 하여금 연회를 주관하도록 허락해주셔서
宣花滿揷醉扶迴 어사화(御賜花) 가득 꽂고 취하여 부축 받으며 돌아온다네. 東國李相國文集

 

수련(首聯)에선 연회가 열리기까지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임금의 행차를 위해 물렀거라. 임금님 행차시다.”라고 벽제(辟除)하는 소리는 우레처럼 달린다고 하여 얼마나 힘찬 소리였는지, 그리고 기쁨에 겨운 소리였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나선 이 날의 연회는 좋은 날을 점쳐 길일(吉日)에 열렸다고 하고 있다. 우리도 이사를 가거나 할 때 손 없는 날을 택하기도 하고 결혼식을 할 땐 길을 택해 하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결혼식장이 섭외가 되는 날에 하는 풍조가 강해졌지만 여유가 있다면 되도록 좋은 날에 하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함련(頷聯)에선 연회가 열리기까지 정돈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임금께서 자리에 앉으셨는데 그 앞엔 용으로 장식된 촛대가 있었던가 보다. 하긴 용이라는 상징을 쓸 수 있는 존재는 임금뿐, 용 촛대와 임금은 매우 자연스럽게 섞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리에 앉은 임금은 곧바로 신하들에게 술잔을 하사했나 보다. 그것도 봉황피리 소리가 연회장 가득 울리는 속에서 말이다. 바로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서술하며 그 자리가 얼마나 위용이 넘치면서도 활기찼는지를 엿볼 수가 있다.

 

경련(頸聯)에선 술잔을 하사하신 임금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신하들은 만세토록 영원하소서!’라는 뜻을 담아 만세를 삼창하기에 이른다. 몇 명의 신하들이 모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에 묘사된 느낌으로만 보자면 대단히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종이는 세 번 만세를 부르니 신선산이 솟구쳤고[三呼萬歲神山湧].’를 신하들이 손이 번쩍 들며 만세를 외치니 그 모습이 마치 신선산이라도 솟아오른 듯한 장엄한 느낌을 주었을 거라고 말했다. 아마도 현종이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 느낌처럼 이 순간은 웅장했을 것이다. 그러자 임금께서는 안주라도 하라는 듯 복숭아를 하사해주셨고 그게 각 자리에 전달되었다. 이런 광경을 이규보는 단순히 복숭아 하사해주셨네라고 쓰지 않고 한 번 천 년마다 익는 반도(蟠桃)가 왔다네[一熟千年海菓來].’라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묘사했다. 그리고 그건 5구에 나온 신산(神山)’이란 단어가 해과(海菓)’라는 단어를 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쓰였다는 걸 알게 한다. 그건 그만큼 임금의 은혜를 추켜세우는 상징어이기도 하다. 임금의 은혜로 인해 신선산이 솟아올랐고 그곳에서만 무르익는 반도(蟠桃)전적에 따라서는 2000년에 한 번 익는다고 나오기도 함. 김형술 교수는 아마도 여기선 일곱 글자란 시적 제약 때문에 이천년(二千年)이란 세 글자를 쓰지 못하고 천년(千年)이란 두 글자만 썼을 거라고 추정하기도 했음를 먹게 됐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전형적인 아부시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정황만을 묘사하지 않고 그 안에 이미 전거가 있는 단어를 씀으로 임금의 은혜를 우회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구절에 대해 홍만종은 일찍이 장엄함과 고움에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未嘗不歎其壯麗].’고 평가했는데, 여기에 대해선 이미 앞에서 말했기 때문에 다시 말하지 않아도 의미는 충분히 알 것이다.

 

바로 미련(尾聯)에선 그런 임금께서 신하들에게 연회의 즐거움을 맡도록 허락하셔서 신하들은 임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연회를 만끽할 수 있었으며 그 덕에 곤드레만드레한 채 부축받으며 돌아온다고 끝을 맺었다. 바로 이 구절은 영락없이 정도전의 계유정조봉천전구호(癸酉正朝奉天殿口號)라는 시의 끝 구절과 판박이로 똑같다. 여기선 관리들이 한껏 비틀거리며 만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바로 이 장면을 통해 임금이 얼마나 정치를 잘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관리들이 만취해도 될 정도의 태평성대인지를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단순히 보고 넘어가려는데 교수님은 잠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신다. 이규보의 삶은 초년에 경설(鏡說)을 짓던 시기의 패기만만하던 시절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다 전주목사록(全州牧司錄) 겸 서기(書記)에 보임되었다가 무슨 일로 인해 33세에 파직되어 떠나게 됐으며, 여러 곳을 전전하게 된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38살이 되던 해에 상최상국서(上崔相國書)를 지어 올려 벼슬을 구했고 결국 최충헌의 눈에 들어 명령에 따라 모정기(茅亭記)를 지어올림으로 직한림원(直翰林院)에 보임되게 된다. 그렇다 바로 이 시는 그 후로 4년이 흐른 42살이 되던 해에 지은 것으로 무인정권에 아부하기 위해 지은 시였던 것이다.

 

바로 이런 회절(回折)의 역사가 담겨져 있는 시였기 때문에 교수님은 비분강개한 마음을 표현했으며 아무리 아름답게 지어진 시일지라도 편안히 만은 볼 수가 없노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 말엔 충분히 동감한다. 누군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절개를 지키며 꿋꿋이 살아간 사람들(죽림고회 같은 경우가 바로 이 경우이며, 일제시대 때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ㆍ이시영 등등의 독립투사들이 바로 이 경우다)이 있으니 말이다. 결국 작품을 볼 때에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그 사람이 그 작품을 짓게 된 계기이며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좀 더 역사에 대해 면밀히 연구하며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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