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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2. 연원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2. 연원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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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원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소화시평권하 62에선 연원이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원이 있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닌 근본이 있다는 얘기이고 기본이 갖춰져 있다는 얘기이다. 정약용이 쓴 원교(原敎)라는 글을 통해 얘기해보자면, 다산은 효제충신(孝弟慈忠信)과 같은 것들을 하기 위해선 인의(仁義)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의(仁義)가 밑바탕에 있는 사람은 어른을 만나면 공경할 것이고, 상사를 만나면 충성할 것이며, 자식을 만나면 사랑할 것이다. 그런데 이건 그때그때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라 근본에 인의(仁義)만 있다면 저절로 행해질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처럼 시적 재능도 힘차느냐,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하느냐 하는 것은 그런 자질을 연마하는 것이라기보다 연원이 있으면 된다고 본 것이다. 연원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에 따라 힘찬 시를 쓰기도 하고, 부드러운 시를 쓰기도 한다. 그건 누군가 그래야 한다고 써지는 게 아니라, 연원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그에 알맞은 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이런 말을 읽을 때면 자연히 보드를 배울 때가 생각난다. 물론 딱 한 번 밖에 배우지 않아 여전히 잘 탈 수도 없지만, 그 당시 이틀 간 보드를 타면서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기본을 잘 연마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실패와 무수한 도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안전만 추구하다 보면 아주 기본적인 동작만을 주구장창하며 보드 자체를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 그에 반해 넘어지더라도 자꾸 흐름이 끊기더라도 여러 도전을 해본 사람은 보드의 움직임을 몸으로 익히게 되고 그에 따라 예전이면 넘어질 뻔한 상황도 능수능란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즉 이 글에서 홍만종이 말하고자 했던 연원이란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 자신을 맡긴 상태에서 자신이 알게 모르게 키워왔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체에 구속되지 않고 여러 체를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深藏睡虎風煙晦 깊은 곳에 잠자는 호랑이 감추려 듯 바람과 안개 자욱하고,
倒掛生龍霹靂噴 용을 거꾸로 걸었는지 벼락소리 내뿜어 나오네.

 

여기선 조찬한의 두 가지 시를 예로 들고 있다. 완폭대(玩瀑臺)라는 시는 굳세게 흘러 내려오는 폭포만큼이나 굳센 기상을 자랑한다. 폭포에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엔 마치 호랑이라도 감추어 있는 듯 신비한 기상이 한껏 어린다. 저 폭포의 무섭게 떨어지는 물줄기만 통과하면 지금껏 본 적 없는 전혀 다른 세상이 훅하고 나타날 것만 같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선 우렁찬 폭포소리를 거꾸로 달아놓은 용에 비유하며 풀어내고 있다. 폭포의 우렁찬 물소리는 마치 용이 내지는 괴성 같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폭포 하나를 봤을 뿐인데 조찬한은 거기서 호랑이도 봤고 용도 본 것이다. 이게 바로 작가의 상상력인데 그걸 이렇게 14자의 글귀로 표현한 부분이 놀랍기만 하다.

 

이렇게 힘찬 기상을 담는 사람이라면 부드럽고 담백한 시를 쓰기 어렵다. 그건 마치 자신이 줄곧 써왔던 시의 반대성향의 시를 써야 하는 난해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우린 정두경에게서 이미 본 적이 있다. 정두경은 전후칠자를 이어 복고파 시풍을 구사한 시인으로 유명한데 그의 시에 대해 김창흡은 매번 지을 적마다 이렇게 웅대한 말이로구나[每作此雄大語].’라고 혹평을 가한 것이다. 이 말은 달리 생각하면 굳센 기상의 시만을 써온 사람이라면 그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처럼 조찬한도 위의 시에서 굳센 기상을 얘기했다면 다른 시에서 다른 기상으로 시를 쓰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다.

 

 

新燕不來春寂寂 새 제비 오지 않아 봄이 적적했는데
故人將去雨紛紛 고인은 떠나려 하고 비만 부슬부슬 내리네.

 

그렇다면 홍만종이 두 번째로 예를 든 시를 보기로 하자. 이 시에서 조찬한은 괴산 수령으로 떠나는 지인에 대한 아쉬움을 한가득 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봄이 됐음에도 강남 갔던 제비조차 오지 않아 적적하던 차였는데 거기에 맘을 나누던 지인은 수령 발령을 받아 떠나려 분주하고 그런 울적한 심사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으려는 듯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이 시에서 느껴지는 정조는 마치 대동강가에서 뭇 처녀들이 낭군을 떠나보내며 읊던 가슴 시린 그런 정조. 확실히 처음에 예로 든 시에선 강하고 굳센 기상이 읽혀지는데 바해 이번 시에선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정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윗 시가 남성적인 정조의 느낌이라면 밑의 시는 여성적인 섬세한 정서가 한껏 묻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시의 정서가 확연히 달라지니 홍만종이 연원운운하며 했던 얘기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던 거다. 모든 걸 잘 하려는 노력하지 말고 그저 연원이 충만해지길, 기본이 충실해지길 바라는 게 나을 것이다. 천리 길로 한 걸음부터이듯 거창한 것을 하려 하지 말고 지금 당장 기본적인 것부터 착실히 해나갈 일이다. 그러다 보면 조찬한이 여러 시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시를 지을 수 있었듯이, 우리도 닥치는 무수한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갈고 닦아온 그대로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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