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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궁지말(强弩之末) - 강성한 것일지라도 쇠퇴하고 만다 본문

한문놀이터/고사성어

강궁지말(强弩之末) - 강성한 것일지라도 쇠퇴하고 만다

건방진방랑자 2020. 8. 7.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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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궁지말(强弩之末)

강성한 것일지라도 쇠퇴하고 만다

 

 

禦史大夫韓安國, 成安人也, 後徙睢陽. 嘗受韓子雜家說於騶田生, 事梁孝王爲中大夫.

反時, 孝王使安國張羽爲將, 兵於東界. 張羽力戰, 安國持重, 以故不能過. 已破, 安國張羽名由此顯.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匈奴來請和親, 天子下議.

大行王恢, 人也, 數爲邊吏, 習知胡事. 議曰: “與匈奴和親, 率不過數歲卽複倍約. 不如勿許, 興兵擊之.”

安國: “千里而戰, 兵不獲利. 今匈奴負戎馬之足, 懷禽獸之心, 遷徙鳥擧, 難得而制也. 得其地不足以爲廣, 有其衆不足以爲彊, 自上古不屬爲人.

數千里爭利, 則人馬罷, 虜以全制其敝. 且彊弩之極, 矢不能穿魯縞: 衝風之末, 力不能漂鴻毛. 非初不勁, 末力衰也. 擊之不便, 不如和親.”

群臣議者多附安國, 於是上許和親.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북방의 이민족인 흉노(匈奴)는 중원의 한족(漢族)에게 영원한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춘추시대부터 흉노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각 나라마다 성을 쌓았고,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제는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나라 때에 와서는 흉노와 화친정책을 채택하다가 한무제(漢武帝, 재위 BC140BC87)가 강공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한무제 때에 조정에서는 대흉노 강공에 대한 논의가 슬슬 머리를 들기 시작했는데, 강공파의 대표적인 사람은 왕회(王恢)였고 화친파의 대표적인 사람은 한안국(韓安國)이었다. 한무제가 아직 강공책을 쓰기 전의 일이다. 언젠가 흉노들이 사신을 파견하여 화친을 제의해 왔는데, 왕회는 화친을 반대하면서 무력으로 흉노를 칠 것을 주장했다.

그러자 한안국이 천 리 길을 원정하게 되면 군사들에게 이로움이 없습니다. 힘찬 활에서 튕겨 나간 강한 화살도 마지막에는 엷은 비단조차 뚫지 못하고, 아무리 맹렬한 바람이라도 끝에서는 가벼운 기러기 깃털 하나 띄우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힘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막판에 힘이 쇠약해졌기 때문입니다. 흉노를 토벌하기 어려우니 화친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말하자, 여러 대신들이 한안국의 의견에 동의하자 무제도 화친을 허락했다.

 

 

겉뜻: 강한 쇠뇌의 마지막

속뜻: 힘찬 활에서 발사된 화살도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비단조차 뚫지 못하듯 아무리 강한 힘이나 형세도 마지막에는 결국 쇠퇴한다는 뜻이다.

유의어: 충풍지말(衝風之末), 강노지말(强弩之末)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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