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불교에 휩쓸린 민심을 바로잡을 사람은 바로 정달가
정도전(鄭道傳)
불교가 장악한 고려 문단의 실상
若東方則其弊尤甚, 人皆好之篤而奉之謹. 又號爲大儒者, 反爲讚誦歌詠, 助揚聲勢, 鼓舞振動.
彼下民之昏愚, 惟從達者之好者爲如何也? 於是, 先王之學, 寂寥無聞, 耳目所接, 無非異端. 襁褓孩兒, 學語之始, 卽誦其言; 嬉戲之時, 便設其儀. 習與性成, 恬不知非, 邪與心熟, 堅不可破.
雖聰明之士, 眩惑其空玄, 暴悖之人, 喜懼其禍福, 莫不尊奉依歸. 毀倫滅理, 風俗頹敗, 傾家破產, 父子離散, 其禽獸之歸, 塗炭之苦, 亦不可旣矣?
불교를 이단시하려 할 때 닥치는 상황
幸玆秉彝, 極天罔墜, 雖在波頹之中, 尙有一二明經之士, 深知其害, 竊議而私歎之, 往往辨之於人. 則或有所聽信而開悟之者, 是理義之心, 人皆有之矣, 然下焉不尊, 民卒不從.
及與爲佛者辨之, 則彼亦有是心, 自知其非, 屢至辭窮, 然恥爲之屈, 惟務自勝. 援引公卿之尊奉, 大儒之讚誦, 以折辨者. 乃曰: “夫豈不義而某公信之? 以某公之位之德, 而尊奉讚誦如此 汝反非之, 汝能賢於某公歟?”
辨者若曰: “位爲公卿, 而於道有不學; 號爲大儒, 而於學有不正. 但當質諸本心, 辨其邪正而已, 豈以某公之故, 而遽以此爲是云爾.” 則爲有說矣. 然此不惟獲以下訕上之罪, 人反不信, 以爲狂妄, 譏笑毀謗, 使無所容, 辨者默然無言. 彼爲佛者, 意氣洋洋, 自以爲吾說勝也
是知異端之邪, 不可以口舌爭也; 下民之惑, 不可以義理曉也, 惟其學術之正, 德位之達, 爲人所信服者然後可以正矣
불교 배척의 적임자 달가
吾友達可其人也. 達可雖無其位, 達可之學, 學者素服其正也; 達可之德, 學者素服其達也. 以予昏庸, 不恤譏議, 慨然有志於闢異端者, 亦以達可爲之依歸也, 天生達可, 其斯道之福歟.
近聞往來之言, 達可看『楞嚴』, 似佞佛者也. 予曰: “不看『楞嚴』, 曷知其說之邪? 達可看『楞嚴』, 欲得其病而藥之, 非好其道而欲精之也.” 旣而私自語曰: ‘吾保達可必不佞佛. 然昌黎一與太顚言, 後世遂以爲口實, 達可爲人所信服, 其所爲繫於斯道之廢興, 不可不自重也.’
且下民昏愚, 易惑難曉, 達可幸思之. 『三峯集』 卷之三
해석
불교가 장악한 고려 문단의 실상
若東方則其弊尤甚,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폐단이 더욱 극심해
人皆好之篤而奉之謹.
사람들이 모두 이단을 좋아하길 독실히 하여 받들길 근엄하게 합니다.
又號爲大儒者, 反爲讚誦歌詠,
또한 대유라 불리는 자들이 도리어 이단을 찬송하고 노래로 불러서
助揚聲勢, 鼓舞振動.
성세(聲勢)를 돕고 드날려 고무시키며 흔들어댑니다.
彼下民之昏愚,
저 하층민들은 어둡고 어리석으니
惟從達者之好者爲如何也?
오직 통달한 자가 좋아하는 것을 쫓으니 어찌 해야 합니까?
於是, 先王之學, 寂寥無聞,
이에 선왕의 학문이 적적하고 고요하여 듣질 못하고
耳目所接, 無非異端.
귀와 눈에 접하는 것들이 이단이 아닌 게 없습니다.
襁褓孩兒, 學語之始, 卽誦其言;
강보에 싸인 아기가 말을 배우는 시초에 곧 이단의 말을 외고
嬉戲之時, 便設其儀.
장난칠 때에 곧 의식을 베풉니다.
習與性成, 恬不知非,
습관과 성품이 이루어지니 편안해져 잘못을 알지 못하니,
邪與心熟, 堅不可破.
사악한 것이 마음에 숙성되어 견고해져 깨뜨릴 수 없습니다.
雖聰明之士, 眩惑其空玄,
비록 총명한 선비라도 공허하고 현묘한 것에 현혹되고
暴悖之人, 喜懼其禍福,
난폭하고 어긋난 사람들은 화복설(禍福說)을 기뻐하거나 두려워 하여
莫不尊奉依歸.
높여 받들고 의존하며 귀의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毀倫滅理, 風俗頹敗,
인륜은 무너지고 이치는 사라지며 풍속이 퇴폐해져
傾家破產, 父子離散, 其禽獸之歸,
가산이 기울어져 파산하므로 부자는 뿔뿔이 흩어져 짐승으로 돌아갔으니
塗炭之苦, 亦不可旣矣?
도탄의 괴로움이 또한 지극하지 않겠습니까?
불교를 이단시하려 할 때 닥치는 상황
幸玆秉彝, 極天罔墜,
다행히 타고난 본성이 하늘이 다하도록 실추되진 않아
雖在波頹之中, 尙有一二明經之士,
비록 세파가 무너진 가운데에서도 오히려 1~2명의 경서에 밝은 선비가 있기에
深知其害, 竊議而私歎之,
깊이 피해를 알기에 몰래 의논하고 사사롭게 탄식하며
往往辨之於人.
이따금 사람들에게 판별해줍니다.
則或有所聽信而開悟之者,
혹 듣는 것을 믿고 생각이 열러 깨치는 사람이 있으니,
是理義之心, 人皆有之矣,
이것은 리의(理義)의 마음이 사람이면 모두 그것이 있어서지만
然下焉不尊, 民卒不從.
지위가 낮아 높질 않아 백성은 끝내 따르질 않습니다.
及與爲佛者辨之, 則彼亦有是心,
불교를 하는 사람과 시비를 따지면 그들도 또한 이 마음이 있으니
自知其非, 屢至辭窮,
스스로 잘못됨을 알아 자주 말이 궁색해지는 데에 이르지만
然恥爲之屈, 惟務自勝.
굴복하는 걸 부끄럽게 여겨 오직 스스로 이기기에만 힘을 씁니다.
援引公卿之尊奉, 大儒之讚誦,
공경이 이단을 높여 받드는 것과 대유가 찬송하는 것을 인용하여
以折辨者.
변론하는 사람을 꺾어버립니다.
乃曰: “夫豈不義而某公信之?
그들은 곧 “어찌 불의한 것을 아무개 공이 믿겠는가?
以某公之位之德, 而尊奉讚誦如此
아무개 공의 지위와 덕으로 높여 받들고 찬송함이 이와 같은데도
汝反非之, 汝能賢於某公歟?”
너는 도리어 잘못됐다고 하니 너가 아무개 공보다 어진가?”
辨者若曰: “位爲公卿, 而於道有不學;
변론하는 사람이 만일 “지위는 공경이 되었지만 도에 배우지 못한 게 있고
號爲大儒, 而於學有不正.
대유라 불리지만 배움에 바르지 못한 게 있다.
但當質諸本心, 辨其邪正而已,
다만 마땅히 본심에서 질정하여 사악함과 바름을 분별할 뿐이지,
豈以某公之故, 而遽以此爲是云爾.”
어찌 아무개 공의 까닭으로 대번에 이것이 옳다고 말하는가?”라고 말하면,
則爲有說矣.
말할 게 있습니다.
然此不惟獲以下訕上之罪,
그러나 이것은 아랫사람으로 윗 사람을 헐뜯은 죄일 뿐만 아니라,
人反不信, 以爲狂妄,
사람들은 도리어 믿지 않고 미쳐 망령된다 여겨
譏笑毀謗, 使無所容,
놀려대고 비웃고 헐뜯어 용납할 곳이 없게 되니
辨者默然無言.
변론하는 사람은 침묵을 유지한 채 말을 안 합니다.
彼爲佛者, 意氣洋洋,
저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의기가 양양해져
自以爲吾說勝也
스스로 ‘나의 말이 이겼다’라고 생각합니다.
是知異端之邪, 不可以口舌爭也;
이것으로 이단의 사특한 것은 입의 혀로 다툴 수 없고
下民之惑, 不可以義理曉也,
백성의 현혹된 것은 의리로 깨우칠 수 없으며
惟其學術之正, 德位之達,
오직 학술의 바름과 덕과 지위의 통달함으로만
爲人所信服者然後可以正矣
사람을 신복시킬 수 있는 사람인 이후에야만 바르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불교 배척의 적임자 달가
吾友達可其人也.
나의 벗 달가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達可雖無其位,
그 이유는 달가가 비록 그만한 지위는 없다 하더라도,
達可之學, 學者素服其正也;
달가의 학문을 배우는 사람들이 본디 그 바름에 탄복하였고
達可之德, 學者素服其達也.
달가의 덕을 배우는 사람들이 본디 그 통달함에 탄복했습니다.
以予昏庸, 不恤譏議,
저의 어둡고 어리석음에도 비난하는 의론에 근심하지 않고
慨然有志於闢異端者,
분개하며 이단을 물리치는 데에 뜻을 둔 것은
亦以達可爲之依歸也,
또한 달가에게 귀의하였기 때문입니다.
天生達可, 其斯道之福歟.
하늘이 달가를 태어나게 한 것은 우리 도의 복입니다.
近聞往來之言, 達可看『楞嚴』,
근자에 오고 가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달가가 『능엄경』을 보니
似佞佛者也.
불자에 아첨하는 듯하다.’
予曰: “不看『楞嚴』, 曷知其說之邪?
내가 말하겠습니다. “『능엄경』을 보지 않으면 어찌 그 말의 사악함을 알겠습니까?
達可看『楞嚴』, 欲得其病而藥之,
달가가 『능엄경』을 보는 것은 병폐를 알아 치료하고자 해서이지
非好其道而欲精之也.”
도를 좋아하여 그것에 정진하려 해서는 아닙니다.”
旣而私自語曰: ‘吾保達可必不佞佛.
이윽고 사사롭게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나는 달가가 반드시 불자에 아첨하지 않는다고 보증합니다.
然昌黎一與太顚言, 後世遂以爲口實,
그러나 창려가 한 때에 태전 스님과 말하여 후세에 마침내 구실이 되었으니
達可爲人所信服, 其所爲繫於斯道之廢興,
달가는 사람들이 신복하고 있으니 우리 도의 흥폐에 매어 있기에
不可不自重也.’
자중하지 않아선 안 된다.’
且下民昏愚, 易惑難曉,
또한 백성들은 어둡고 어리석어 미혹되긴 쉽고 깨우치긴 어려우니
達可幸思之. 『三峯集』 卷之三
그대가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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