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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로 - 와도헌기(臥陶軒記) 본문

한시놀이터/삼국&고려

이인로 - 와도헌기(臥陶軒記)

건방진방랑자 2020. 7. 1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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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잠을 사모하여 도잠을 따라 북창을 낸 공간을 만들다

와도헌기(卧陶軒記)

 

이인로(李仁老)

 

 

순임금을 사모한 안연

讀其書, 考其世, 想見其爲人, 怳然如目擊, 相與遊於語默之表. 孟軻所謂尙友, 誠不以古今爲阻.

顔子: “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 以匹夫, 受帝堯之禪, 五十載垂衣而理天下, 至今仰之如日月. 而顔子陋巷中一瓢之士, 自以爲鷄鳴而起, 孜孜爲善, 卽舜之用心也, 何遠之有哉, 此雖名分不同, 而以意慕之者也

 

인상여를 사모한 사모상여

司馬長卿, 藺相如之爲人, 自以爲名. 相如, 之勇將也, 完璧, 而使人束手, 擊缶, 而令史亦書. 其雄姿偉膽, 凜凜猶生, 長卿迺一介白面生耳, 豈可以得其髣髴哉? 然觀其二賦之作, 雄偉不常, 則其氣足以呑咸陽於胷中, 而視秦皇, 不啻如机上肉, 可知矣. 此則事業不同, 而以氣慕之者也.

 

내가 도잠에 미치지 못하는 세 가지, 그러나 비슷한 한 가지

陶潛晉人也. 僕生於相去千有餘歲之後, 語音不相聞, 形容不相接, 但於黃卷閒, 時時相對, 頗熟其爲人.

作詩, 不尙藻飾, 自有天然奇趣, 似枯而實腴, 似踈而實密. 詩家仰之, 若孔門之視伯夷. 而僕呻吟至數千篇, 語多滯澁, 動有痕纇, 一不及也.

在郡八十日, 卽賦㱕去來, 乃曰: “我不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 解印便去. 而僕從宦三十年, 低徊郞署, 鬚髮盡白, 尙爲齪齪樊籠中物, 二不及也.

高風逸迹, 爲一世所仰戴, 以刺史王弘之威名, 親邀半道, 廬山遠公之道韻, 尙呼蓮社. 而僕親交皆棄, 孑然獨處, 常終日無與語者, 三不及也.

至若少好閑靜, 懶於參尋, 高臥北䆫, 淸風自至, 此則可以拍陶潛之肩. 是以闢所居北廡, 以爲棲遲之所, 因取山谷集中臥陶軒以名之.

 

북창에 기댄 도잠처럼 와도헌에 기댄 나

或者疑之曰: “子於陶潛, 所同者無幾, 而所不可及者多矣, 猶自以比之宜歟?”

僕應之曰: “夫騏驥之足, 一日千里, 駑馬十駕亦至, 溪澗之水萬折而東流, 終至於海. 僕雖不及陶潛高趣之一毫, 苟慕之不已, 則亦陶潛. 不猶愈於以意慕, 而以氣慕者乎.”

李太白有詩云: “陶令日日醉, 不知五柳春. 淸風北䆫下, 因謂羲皇人.” 雖於我亦云可也. . 東文選卷之六十五

 

 

 

 

 

 

해석

 

순임금을 사모한 안연

 

讀其書, 考其世, 想見其爲人,

그 책을 읽고 그가 살았던 세상을 상고해 그 사람됨을 상상해 보면

 

怳然如目擊, 相與遊於語默之表.

뚜렷하게 목격한 것 같아 서로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하는 곁에서 교유할 수 있다.

 

孟軻所謂尙友,

이것이 맹가가 말했던 시대를 거슬러 벗한다는 것이니

 

誠不以古今爲阻.

진실로 고금의 시대적 차이가 장벽이 되진 않는 것이다.

 

顔子: “何人也? 予何人也?

옛적에 안자가 말했다. “순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有爲者亦若是.”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또한 이와 같다.”

 

以匹夫, 受帝堯之禪,

또한 순은 평민으로 요임금의 선양을 받아

 

五十載垂衣而理天下, 至今仰之如日月.

50년 동안 옷을 드리운 채 천하를 다스려 지금에 이르러선 해와 달처럼 우러른다.

 

而顔子陋巷中一瓢之士,

안자는 누추한 마을 속에 하나의 표주박으로 사는 선비였지만

 

自以爲鷄鳴而起, 孜孜爲善,

스스로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것이

 

卽舜之用心也, 何遠之有哉,

곧 순의 마음을 쓰는 것이니 어찌 먼 데에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으니,

 

此雖名分不同, 而以意慕之者也

이것이 비록 명분이 같지 않지만 뜻으로 그를 사모한 것이다.

 

 

 

인상여를 사모한 사모상여

 

司馬長卿, 藺相如之爲人, 自以爲名.

사마장경은 인상여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스스로 이름으로 삼았다.

 

相如, 之勇將也,

대체로 인상여는 조나라의 용맹한 장수로

 

完璧, 而使人束手,

구슬을 완전히 한 채 조나라로 돌아왔고 진나라 사람들에게 손 쓰지 못하게 했고

 

擊缶, 而令史亦書.

진나라 왕을 꾸짖어 장군을 치게 하였고 조나라 사관에게 또한 서술하게 했다.

 

其雄姿偉膽, 凜凜猶生,

인상여는 씩씩한 자태와 위대한 담력으로 늠름하여 살아 있는 듯했으니,

 

長卿迺一介白面生耳, 豈可以得其髣髴哉?

사마상여는 곧 일개의 백면서생일 뿐인데 어찌 비슷할 수 있겠는가?

 

然觀其二賦之作, 雄偉不常,

그러나 자허부(子虛賦)상림부(上林賦)의 작품을 보면 씩씩하고 위대하여 평범하지 않으니

 

則其氣足以呑咸陽於胷中,

그의 기는 넉넉하게 가슴 속에 함양을 삼킬 만했고

 

而視秦皇, 不啻如机上肉, 可知矣.

진시황 보기를 밥상 위의 고기처럼 했음을 알 만하다.

 

此則事業不同, 而以氣慕之者也.

이러하다면 그들이 한 일은 같지 않지만 기로서 인상여를 사모했던 것이다.

 

 

 

내가 도잠에 미치지 못하는 세 가지, 그러나 비슷한 한 가지

 

陶潛晉人也.

대체로 도잠은 진나라 사람이다.

 

僕生於相去千有餘歲之後,

나는 서로 시대의 거리가 천여년 후에야 태어나

 

語音不相聞, 形容不相接,

말소리를 서로 들어보지 못했고 모습을 서로 접하질 못했지만

 

但於黃卷閒, 時時相對, 頗熟其爲人.

다만 책황권(黃卷): 옛날 책이 좀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황벽나무로 내피(內皮)를 염색한 황색종이를 썼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통칭하여 말한다. 사이에서 이따금 서로 대하며 매우 그 사람됨에 익숙해졌다.

 

作詩, 不尙藻飾, 自有天然奇趣,

그러나 도잠이 지은 시는 수식과 기교를 더하지 않아 절로 천연의 기이한 뜻이 있으니,

 

似枯而實腴, 似踈而實密.

마른 듯하나 실제론 풍부하고 엉성한 듯하나 실제론 빼곡하다.

 

詩家仰之, 若孔門之視伯夷.

시인들이 그를 추앙하기를 공자의 문하생들이 백이를 보는 것 같이 한다.

 

而僕呻吟至數千篇,

그러나 내가 신음하며 지은 시들이 수천 편에 이르지만

 

語多滯澁, 動有痕纇, 一不及也.

말은 많이 막히고 떫으며 행동엔 흔적이 있으니 첫째로 도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在郡八十日, 卽賦㱕去來,

도잠은 군수로 있은 지 80일에 곧 귀거래사를 짓고

 

乃曰: “我不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

내가 오두미를 위하여, 허리를 굽혀 향리의 어린놈에게 절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解印便去.

인수를 풀고 곧바로 떠나버렸다.

 

而僕從宦三十年, 低徊郞署, 鬚髮盡白,

나는 벼슬한 지 30년에 낭서에 머뭇거리다 보니저회(低徊): 고개를 숙인 채 머뭇거리는 것을 말한다. 수염과 머리가 다 세었지만

 

尙爲齪齪樊籠中物, 二不及也.

오히려 악착같이 새장번롱(樊籠): 새장 자유롭지 못한 처지 속 사물이 되었으니 두 번째로 도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高風逸迹, 爲一世所仰戴,

도잠은 고상한 풍모와 빼어난 자취로 한 세상에 우러르며 숭상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以刺史王弘之威名, 親邀半道,

자사인 왕홍의 위엄 있는 명성으로도 친히 길 가운데서 맞이했고

 

廬山遠公之道韻, 尙呼蓮社.

노산 원공의 도가 있는 운치로도 오히려 백련사백련사(白蓮社):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백련사를 결성(結成)하고 서신(書信)으로써 도연명(陶淵明)을 초청하니, 연명의 답서에 나의 천성(天性)이 술을 즐기는데 법사께서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한다면 곧 가겠다.” 하였다. 혜원이 이를 허락하자 연명이 마침내 찾아갔는데, 그가 입사(入社)할 것을 권유하니 연명은 눈썹을 찌푸리고 돌아갔다. 여부잡기(廬阜雜記)로 불렀다.

 

而僕親交皆棄, 孑然獨處,

그러나 나는 친교를 모두 끊고 외롭게 홀로 거처하며

 

常終日無與語者, 三不及也.

항상 종일토록 함께 말한 사람이 없으니 세 번째로 도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至若少好閑靜, 懶於參尋,

어려서 한가하고 고요함을 좋아한 것에 이르면 만남에 게을렀고

 

高臥北䆫, 淸風自至,

북쪽 창가에 높이 누우면 맑은 바람이 절로 이르러 오니

 

此則可以拍陶潛之肩.

이러하다면 도잠의 어깨를 칠 만하다 할 것이다.

 

是以闢所居北廡, 以爲棲遲之所,

이런 까닭으로 사는 곳의 북쪽 행랑을 열어 머물 곳을 만들고

 

因取山谷集中臥陶軒以名之.

그에 따라 황산곡의 시집 중의 와도헌을 가져다 이름을 지었다.

 

 

 

북창에 기댄 도잠처럼 와도헌에 기댄 나

 

或者疑之曰: “子於陶潛, 所同者無幾,

혹자는 그걸 의심하며 말했다. “자네가 도잠에 같은 것은 거의 드물지만

 

而所不可及者多矣, 猶自以比之宜歟?”

미칠 수 없는 건 많은데도 오히려 스스로 그에게 견주는 게 마땅한가?”

 

僕應之曰: “夫騏驥之足, 一日千里,

내가 응답했다. “천리마의 발걸음으론 하루에 천리를 가나

 

駑馬十駕亦至,

노둔한 말도 10배의 노력이면 또한 도달하게 되고

 

溪澗之水萬折而東流, 終至於海.

시냇물도 만 번 꺾여 동쪽으로 흘러가지만 끝내는 바다에 이른다.

 

僕雖不及陶潛高趣之一毫,

내가 비록 도잠의 고상한 취미에 한 터럭만큼도 미치질 못하나

 

苟慕之不已, 則亦陶潛.

진실로 그를 사모하길 그치질 않는다면 또한 도잠인 것이다.

 

不猶愈於以意慕, 而以氣慕者乎.”

오히려 뜻으로 순을 사모하고 기로 인상여를 사모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李太白有詩云: “陶令日日醉, 不知五柳春. 淸風北䆫下, 因謂羲皇人.”

이태백이 희증정율양(戲贈鄭溧陽)이란 시에서 말했다.

 

陶令日日醉 不知五柳春

현령인 도연명은 날마다 취했기에 다섯 버들개지의 봄 알지 못했지만

淸風北窓下 因謂羲皇人

북창 아래서 맑은 바람 쐬면서 태곳적 사람이라 생각하지.

 

雖於我亦云可也. . 東文選卷之六十五

비록 나에게도 또한 일컬어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기문을 짓는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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