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부시의 묘미와 시경 해석의 문제점
『소화시평』 권상57번엔 악부시에 대한 소개까지 하고 있다. 소개된 악부시는 민간에서 떠돌던 노래들을 한시로 변용하여 정착시킨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유행가, 특히나 소속사에서 만든 노래보다 인디밴드의 노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와 같은 노래들이 꼭 그런 꼴이다.
그래서 ‘관풍찰속(觀風察俗)’이라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공기관의 마인드이고 그저 자연스럽게 나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담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관에선 왜 이런 노래들을 담으려 했을까 하는 점이다. 보통 사람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을 땐 좋은 얘기만 하게 되어 있다.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나눠 나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 좋은 얘기만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그 얘기를 듣고 ‘나 참 괜찮은 사람인가봐’라고 착각하면 아니 아니 아니 된다. 진심은 앞에서가 아닌 뒤에서 나오게 마련이고, 나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닌 나와 떨어져 있을 때 나오게 마련이니 말이다. 나의 눈치조차, 나의 반응조차 볼 필요가 없을 때 하는 말들이 진심에 가깝다면, 그런 말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당사자에게서가 아닌 남에게 들을 수밖에 없다. “걔가 그러는데 너 참 재수없다더라”, “접때 가면서 걔가 그러던데 너 그때 참 너무했다고 하던데”라는 등등의 뒷담화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표면화되지 않은 진심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 이처럼 악부시도 민가에서 자연스럽게 흘려 퍼진 노래로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잘 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불려진 게 아니기에 그 속엔 진심이 담겨 있어 그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 교수님은 지금의 악부라고 하면서 이 노래를 추천해줬다. 음유시인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 유쾌하다.
이런 이유로 공자가 300편으로 줄이고 새롭게 편집한 『시경』은 참 나쁜 편집이자 해석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 당시 민가에 흘려 퍼지던 생기발랄하고 가슴 뭉클한 사랑이야기, 애끓는 마음들을 모두 정치적인 맥락에서 해석해버렸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시경』의 ‘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는 노래만 들어봐도 그렇다. ‘저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 무성하네. 그곳에 멋진 낭군님 있으니, 얼굴이 그리도 조각미남 같아 원석을 잘라낸 다음 쪼은 듯, 옥을 잘라낸 다음 갈은 듯 하여라’. 이 노래는 낭군을 연모하는 낭자의 마음으로 읽으면 된다. 티비 모니터를 보며 오빠를 외치는 뭇 팬들의 마음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여기에 도덕적인 잣대를 떡하니 대어 ‘수양하고 또 수양하여야 한다’라고 하면 진정한 왜곡인 것이다.
爲報郞君道 今年歸不歸 | 낭군에게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말하니, ‘올해는 오시나요? 안 오시나요?’ |
江頭春草綠 是妾斷腸時 | 강 머리에 봄풀 푸르러지면, 이때가 저의 애간장 끓어요. |
郞如車下轂 妾似路中塵 | 낭군는 수레의 바퀴 같고 저는 길 가운데 티끌 같네. |
相近仍相遠 看看不得親 | 서로 가깝지만 서로 멀기도 해. 보기만 할 뿐 가까워질 수 없네요. |
綠竹條條勁 浮萍箇箇輕 | 푸른 대나무 가지는 굳세고, 부평초 하나하나 가벼워. |
願郞如綠竹 不願似浮萍 | 낭군은 푸른 대나무여야지, 부평초 같기를 원하진 않는다. |
이처럼 이번에 배운 악부들도 그 당시의 생기발랄한 모습이 그대로 담긴 명작이었다. 그제나 이제나 다르지 않은 건 사람의 정감이다. 그리워하고 맘 아파하고 서로 부둥켜안고 또 바람을 전해주는 모습들 말이다. 사람이기에 통한다는 게 그런 것이고 악부를 볼 때 꼭 지금의 모습 같다고 느껴지는 게 그런 것이다. 서로 더 가까이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바퀴와 먼지’에 비유한 것도 그렇고, 전화가 없던 시기이기에 봄풀을 보며 ‘오겡끼데스까?(잘 지내니? 언제나 올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 거기에 지금도 남편이 집을 나갈 때면 “차 조심하고, 횡단보도로 건너고, 꽃뱀 조심하고!”라고 잔소리를 하듯 ‘너 부평초처럼 싸구려틱하게 놀지 말고, 대나무처럼 지조 있게 놀아’라고 하는 잔소리도 참 정겹다.
거기에 최호의 「장간행」은 무척 재밌었다. 전후사정은 모르지만, 관심이 있었는지 여자가 먼저 조심스레 말을 거는 모습이 담겨 있고, 거기에 따라 남자도 아쉬운 듯 반가운 듯 대답을 해주는 모습이 꼭 한 편의 드라마 같다.
▲ 영화 [봄날은 간다]는 그야말로 생기발랄한 감성을 그대로 담은 영화 같다. 악부의 영화 버전이랄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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