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시를 쓴 성간
籬落依依半掩扃 | 마을 뵐 듯 말 듯 사립문을 닫혔는데 |
夕陽立馬問前程 | 석양에 말 세우고 앞길 물어야 해. |
翛然細雨蒼烟外 | 갑자기 가랑비 내리고 푸른 안개 피어오르는 저 편에 |
時有田翁叱犢行 | 때마침 늙은이 ‘이랴!’ 소를 끌고 가네. |
『소화시평』 권상57번에 소개된 「도중(途中)」라는 시는 머리로 상상하며 시를 그려야 한다. 말을 타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선비가 있다. 처음 가는 길인데 날씨가 약간 흐린지 멀리 있을 땐 마을이 보일 듯 말 듯 흐릿하기만 하다. 말이 서서히 앞을 향해 나아가니 드디어 사립문이 보였지만 반쯤 닫혀 있다. 저물기 전에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데 도무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길을 묻고 싶지만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갑자기 비가 내리다가 그치니, 산엔 안개가 가득 피어오른다. 이런 광경은 때론 신비롭게 보일 테지만, 마음이 급한 이 순간엔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아, 오늘 이러다 길에서 노숙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절망에 빠져들 그 때, 안개 속에서 “이랴~ 이랴~” 소리를 내며 소를 끌고 가는 노인이 보인다. 그 순간 얼굴엔 회심의 미소가 띄어지며 ‘살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상황을 그리며 보니 도보여행을 했던 순간까지 떠오르며 확 와 닿았다.
그런데 이걸 보면서 ‘푸르다는 이미지[蒼]’와 ‘소[犢]’라는 이미지가 나오니, ‘청우(靑牛)’로 봐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청우’는 내가 참여하기 전에 이미 했던 부분이었기에 나중에서야 홀로 공부하다보니 알게 된 내용이라 기억에 난다. 그럼에도 독학의 폐단인 ‘청우’가 노자를 칭한다는 걸 알았지만, 어떤 상징인지는 잘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스터디를 하면서 명확하게 알게 됐다. ‘靑牛=탈속한 인간’이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그 전에 공부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고 그 속 의미까지 알게 되니 확실히 각인이 되었다. 이래서 공부란 돌고 돌며 망각하고 다시 기억되며 알게 되는 묘한 맛을 지닌 것이다. 이번 편은 그래서 여러모로 재밌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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