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책을 만들기 위해선 기초공사가 필요하다
첫 강의를 들으며, ‘정말 책으로 출판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어렸다. 평상시에 글을 쓰며 ‘언젠가 책으로 낼 날도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게, 그 강의를 통해 좀 더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고로 정한 게 바로 작년 4월부터 6월까지 정열을 불사르며 썼던 『트위스트 교육학』이었다. 총 5번의 강의를 듣고 55편의 후기로 남겼으니, 글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고 함께 공유하며 볼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종이의 질을 알 수 있는 샘플북이다. 이걸 통해 어떤 종이로 인쇄하면 좋을지 미리 판단해볼 수 있다.
원고가 바뀌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가 있더라. 그건 바로 ‘동섭쌤의 강의를 듣고서 그 내용을 후기로 썼다’는 데에 있었다. 아무리 강의를 듣고 내 식대로 재해석하여 썼다 할지라도 1차 저자는 동섭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동섭쌤의 동의가 당연히 필요하고, 그런 것 없이 그냥 진행할 경우 저작권이 문제가 되어 애써 편집하여 출판한 책을 폐기처분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부분이 꺼림칙했기에 다른 원고로 바꾸기로 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글들은 『지리산 종주기』, 『카자흐스탄 여행기』,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기』다. 아무래도 직접 한 여행을 기록한 것이기에 1차 창작물에 해댱되며, 홀로 떠난 여행이 아닌 학교 아이들과 함께 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교육적인 시사점까지 담고 있어 독창적인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부제를 단다면 ‘학생들과 함께 여행하며 교육의 단상을 담다’ 정도이지 않을까. 세 편의 여행기 모두 심혈을 기울여 썼기에 모두 책으로 펴내고 싶었지만, 그건 비현실적인 생각이기에 원고를 하나만 정해야 했다. 그래서 그나마 분량이 가장 적어 편집하기가 수월한 『지리산 종주기』로 정했다.
어떤 일이든 우여곡절은 분명히 있지만 그 지난할 것만 같고 고통스러울 것만 같은 시간을 지나며 한 걸음씩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엔 끝이 보이게 된다. 윤상의 「달리기」란 노래에 나오는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라는 가사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 시간에 흠뻑 빠져들어 달릴 수 있어야 하리라.
▲ 2013년에 일주일 동안 6명의 아이들과 지리산 종주를 했다. 결국 이 글을 책으로 펴내기로 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선 기초공사가 필요하다
두 번째 강의는 출판과정에 대한 설명, 출판 기획서 작성 요령, 책의 구조에 대한 설명, 종이의 구분과 같이 책을 만들 때 실질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다뤘다. 이미 5년 전에 ‘편집자 입문 과정’에서 배웠던 내용이 대부분이니 복습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들었다. 그러나 ‘나만의 32페이지 배열표 만들기’와 ‘지면 레이아웃 만들기’ 부분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꽤나 흥미롭더라. 이런 과정은 책을 통일성 있고 짜임새 있게 만드는 기초공사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단재학교에 와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다르다』라는 잡지를 아이들과 만들며 출판에 대해 간접체험을 해봤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땐 더더욱 출판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던 교사가 출판을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아이들을 데리고 책을 만들어야 했으니, 진정한 도전이었던 셈이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심정으로 원고를 던져주고 무작정 편집하도록 했고, 나름대로 인쇄되어 나온 책은 아이들이 만든 것답게 아마추어의 향기가, 야매의 풍취가 물씬 풍겼다. 그래도 출판 전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경험하며 만들었다는 게 어디인가.
▲ 편집인들은 이런 식으로 한 눈에 책의 내용이 보이도록 배열표를 만든다.
철저히 계획할 것이냐, 상황에 내맡겨 둘 것이냐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나름의 한 방법일 수 있지만, 만약 이번에 배웠던 것처럼 아예 배열표부터 작성하고 각자 편집할 원고의 레이아웃을 만들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더 퀄리티 높은 책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두세 번 정도 ‘이 글에 맞는 디자인은 뭘까?’를 되물어 보며 좀 더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됐다면 조금이나마 디자인의 질은 올라갔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엔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자기가 쓴 글을 자기가 직접 편집한다’고 편집 방향을 정했을 때부터 전문가적인 느낌보단 아마추어의 팍팍 튀는 느낌이나 어설프지만 해보려는 마음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지면 레이아웃 만들기’까지 하도록 했다면 도전도 하기 전에 ‘너무 어렵다’며 포기했을지도 모르고, 개성이 묻어나는 디자인이 아닌 일반적인 잡지 디자인으로 정형화됐을지도 모른다. 교육이 때론 아이들을 획일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이런 방식으로 레이아웃을 잡고 디자인을 하면 훨씬 짜임새 있게 편집할 수 있다’는 점만 가르치고, 아이들이 그 방식을 활용하여 편집을 하던지, 아니면 자기 식대로 편하게 편집을 하던지 모두 인정해주며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 아마추어 아이들이 기초 지식도 없이 만들었지만, 그런 아마추어적인 느낌을 사랑한다.
어쨌든 『다르다』를 만든 경험 후에 좀 더 전문적인 ‘배열표 만들기’나 ‘지면 레이아웃’이란 게 있는 걸 알게 되니, 전문가의 세계에 발돋움이라도 한 양 가슴이 뛰었다. 역시 관심이 있을 때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볼 일이다.
이렇게 두 번째 강의는 2시간 동안 진행되며 끝났다. 다음 주까지 ‘1회 분량의 원고 써오기 & 32페이지 배열표 만들기(선택: 지면 레이아웃 해오기)’를 과제로 내줬다. 숙제가 많고 꽤나 고민을 해야 하니 부담이 되더라. 그쯤 되니 이 연수를 기획한 and님이 첫 번째 수업을 마치고 “저도 예전에 강의를 들었을 때 초반엔 잘 따라갔지만, 원고도 잘 쓰지 못했고 서서히 과제가 밀리기 시작하니 도무지 수업을 따라갈 수 없게 되더라구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충실히 과제를 해서 꼭 책까지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고 했던 말이 괜한 넋두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지금도 배열표를 내려 보며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고 감조차 잡지 못해 헤매고 있다. 과연 내일 강의를 들으러 가기 전까지 완성은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국토종단 때처럼 무작정 부딪히는 수밖에는.
▲ 이곳도 에듀니티처럼 간식과 간단한 식사가 놓여 있다. 맘껏 먹고 편하게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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