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광한(申光漢)의 「증별당질원량잠지임영동군(贈別堂姪元亮潛之任嶺東郡)」
一萬峯巒又二千 | 일만 봉우리에 또 이천 봉우리. |
海雲開盡玉嬋姸 | 바다구름 개자 옥 같은 봉우리들 선연해. |
少時多病今傷老 | 어려선 병이 많았고 지금은 늙음에 속상하여 |
終負名山此百年 | 마침내 명산을 저버린 나의 삶 백년. |
1) 이 작품은 관동으로 벼슬살이를 가는 종질 申潛을 전송하면서 쓴 것임.
2) 권근(權近)의 「금강산(金剛山)」에서 표현한 것을 가져와 금강산의 외형을 묘사하고 있음.
3) 젊은 시절에는 병으로 금강산을 찾지 못하다가 늙게 되어 끝내 금강산을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함.
4. 양사언(楊士彦): 동래(蓬萊)ㆍ해객(海客: 해금강의 나그네)라는 호는 금강산에 대한 사랑을 보여줌 -「제발연반석상(題鉢淵磐石上)」
白玉京 蓬萊島 | 백옥경, 봉래도. |
浩浩烟波古 | 넘실넘실 안개 속 파도는 예스럽고 |
熙熙風日好 | 따뜻한 바람은 날로 좋아. |
碧桃花下閑來往 | 벽도화 아래에 한가로이 오가니, |
笙鶴一聲天地老 | 신선이 학 타고 생활 불자 천지가 늙었다네. |
1) 외양을 거의 묘사하지 않고 천상의 공간으로 그려 신선처럼 사는 자신을 던져 넣음.
2) 금강산에서 떠난 후에도 자주 찾아 ’유산객들이 남녀(藍輿)를 타던 것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겼고 금강산의 승려들이 양사언을 매우 원망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음.
3) 그러나 유산(遊山)의 도구로 남여(藍輿)가 쓰인 것은 고려 때부터이니 그런 말에 대해선 의심해볼 만함.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