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단서만으로도 술술 해석되던 한시
甲第當時蔭綠槐 | 큰 집 그 당시엔 푸른 회화나무 우거졌겠고 |
高門應爲子孫開 | 높은 문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 |
年來易主無車馬 | 근래에 주인이 바뀌어 거마가 끊겼고 |
惟有行人避雨來 | 오직 나그네만이 비 피하러 들어오네. |
『소화시평』 권상40번에 나온 이곡의 「도중피우(道中避雨)」라는 시를 처음에 할 때만 해도 1, 2구가 잘 해석되지 않았다. 3, 4구야 너무도 명확했으니 괜찮은데 1, 2구는 뭘 말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래서 ‘큰 집 푸른 회화나무 그늘 진 때에, 귀한 집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라고 풀이했었다. 그만큼 글자만 따라 내용은 전혀 이해를 못한 채 해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오늘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좀 해석할 시간을 줄 테니, ‘人之侈大宮室爲後世計’에 나오는 ‘계(計)’가 무엇인지 사자성어로 생각해봐.”라고 하고선 잠시 나가셨다. 아마 화장실에 갔다 오는 걸 텐데, 그 시간은 5분 내외로 그렇게 길진 않았다. 그때 부담감을 안고 글을 보는데 세상에나, 이렇게 잘 보일 수가. 해석이 전혀 되지 않던 게 해석되는 건 물론이고, 그 내용도 훨씬 와 닿았다. 물론 그 당시엔 ‘갑제(甲第)’를 과거급제로 풀어서 훨씬 더 쉽게 이해가 됐던 거다. 이런 경험을 통해 좀 더 한문이란 게 부담이나 어려움이기보다 뭔가 방향을 잡아갈수록 오는 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처음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생각했고, 교수님이 호명해줘서 그걸 말했더니, 뭔가 근접하긴 했지만 아쉽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말했더니, 교수님도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걸 얘기해주더라. 맞다고 무릎을 쳤다.
요즘 『맹자』도 블로그에 쓰며, 글과 글 사이에 유기적으로 링크를 거는 걸 재미삼아 하고 있다. 이렇게 공부하니 무언가 체계가 잡혀가는 느낌도 들며, 하나하나 나의 소중한 자료들이 쌓인다는 느낌도 든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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