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을 칭송하던 사회에서 지어진 한시
『소화시평』 권상56번의 주제인 나태함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이와 관련된 시 두 번도 함께 소개해줬다. 김형술 교수님은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3만 수의 시를 썼으며 이덕무가 영조 때의 제일 시는 사천을 꼽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시 중에 『직중기하동(直中寄巷東)』을 보면 다음과 같다.
官寺淸閒聽禁鍾 | 관청이 맑고 한가로워 통행금지 종소리 들으니, |
此中那得一從容 | 이 가운데 한결같이 조용히 있을 수 있겠는가? (친구 불러 시를 짓겠네라는 뜻) |
故人不起知非病 | 고인이 일어나질 않으니 병 때문이 아님을 아니, |
兒女傍邊好得慵 | 지금 처자식 옆에서 실컷 늘어졌겠지. |
이 시를 잘못 읽으면 불러도 오지 않고, 그저 아녀자의 치마폭에 싸여 있는 친구를 탓하는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교수님은 이 시에서도 중심시어는 ‘용(慵)’에 있다고 봤고 그건 부정의 의미가 아닌 긍정의 의미라고 보았다. 그리고 당연히 나태함을 긍정할 수 있다면, 그건 인간적이고 정겨우며,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는 것도 명확히 집어 주었다.
이와 느낌이 비슷한 시인 『아기마(我騎馬)』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我騎馬 君騎牛 | 나는 말을 탔고, 그대는 소를 탔네. |
牛何駛 馬何遲 | 소 어찌하여 빠르며, 말 어찌하여 늦나? |
君有鞭 我無鞭 | 그대에겐 채찍이 있고, 나에겐 채찍이 없구나. |
時時馬立白雲湄 | 때때로 말은 흰 구름 피어나는 물가에 서는 구나. |
馬立奈何吟一詩 | 말 서니, 어찌하여 한 수의 시를 읊지 않으랴. |
牛聽以鼻亦蹰踟 | 소는 코로 듣고(푸우푸우 소리냄) 또한 머뭇거리네. |
이 시에서도 한가로움, 여유로움, 그러면서도 말이 발길 내딛는 그대로 놔두고 그저 자연과 맞닿아 시를 한 수 읊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여기서 재밌게도 교수님은 ‘말이 왜 흰 구름이 피어나는 물가에 멈추었을까?’라는 것에 대해 재밌는 해석을 해줬다. 이미 말의 주인은 그 전부터 말을 타고 가다가 좋은 물가가 나오면 그 자리에 말을 세워두고 시를 지은 적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말도 그런 주인의 흥취를 알아 자연스럽게 그런 곳이 나오면 서게 됐을 거라는 얘기다. 물론 여기엔 논거(論據)와 증거(證據)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정감(情感)이 필요한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림을 그리며 이 시를 보면 이 시의 풍경이 그대로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시는 자세하진 않지만, 상상하면 할수록 더욱 맛있는 거라고 했던 건가 보다.
이 세 편의 시를 통해 조선 지식인들의 흥취가 현대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흥취와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으름, 나태함, 머뭇거림을 문제로 인식되지 않고 좋은 선비의 지향점으로 인식되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어찌 보면 ‘오래된 미래’라는 말도 있듯이, 과거 속에 버젓이 지금은 사라진 옛 풍경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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