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현리 김석의 옛 집을 지나며 느꺼움이 있어
과개현김공석구거 유감(過介峴金公碩舊居 有感)
신광한(申光漢)
同時逐客幾人存 立馬東風獨斷魂
煙雨介山寒食路 不堪聞笛夕陽村 『十淸先生集』 卷之四
해석
同時逐客幾人存 동시축객기인존 | 함께 쫓겨났던 빈객 몇 사람이나 남았나? |
立馬東風獨斷魂 립마동풍독단혼 | 동풍에 말 세우니 홀로 넋 끊기네. |
煙雨介山寒食路 연우개산한식로 | 안개 낀 비 속 개산【개산(介山):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 나라 개지추(介之推)가 숨어살다가 죽은 산의 이름이다. 진 문공(晉文公)이 19년 동안의 망명생활 끝에 본국에 돌아와 그동안 자기를 따라다니며 고생한 사람들을 논상하였는데, 개지추만이 누락되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면산(綿山) 속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한식일(寒食日)에 문공이 그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하여 산에다 불을 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고 불타 죽었다. 개자추의 충성을 기려 문공이 그 산을 개산이라 하고 그의 공에 보답했다 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 僖公 二十四】의 한식 길 |
不堪聞笛夕陽村 불감문적석양촌 | 석양 마을의 젓대소리 차마 듣질 못하겠구나. 『十淸先生集』 卷之四 |
해설
기묘사화에 조광조의 일파로 몰려 파직, 여주에 퇴거하여 있은 지 15년만에, 다시 소명을 입어 서울로 돌아오는 도중, 개산(介山) 기슭에 있는 공석(公碩) 김세필(金世弼)의 옛마을을 지나게 된 것이다.
김세필은 작자보다 11년 선배로서, 갑자사화 때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후 풀려나, 대사헌ㆍ이조참판을 거쳐 사은사(謝恩使)로 북경에 다녀온 그해 겨울, 기묘사화에 조광조를 사사한 중종의 잘못을 규탄하다 유춘역(留春驛)에 장배(杖配)되었던 수난동지(受難同志)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기야 기묘사화 당시 파직ㆍ유배ㆍ 극형된 무수한 사람 가운데 지금 살아 있는 사람으로 나 말고 몇 사람이나 있을 것인가? 대부분 이미 공석과 함께 유명을 달리하고 있지 않은가?
이 날은 한식날이다. 춘추시대 진(晉)의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개산(介山)에 숨어 살다 억울하게도 불에 타 죽은 날이다. 작자는 공교롭게도 바로 이 한식날, 중국의 개산 아닌, 우리나라 개산 기슭의, 개자추에 비견될 충신 김세필의 옛마을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변덕스러운 세태 인정을 보여주듯, 가랑비 자욱히 내리며 간간이 여우볕 나비치는 석양, 이제는 이미 고인이 된 수난 동지의 옛 마을에, 한 과객이 되어 봄바람에 말을 세우고, 조곡(弔哭)을 아뢰는 듯 구슬픈 단장(斷腸)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착잡한 무한 감개에 젖고 있는 작자이다.
‘한식 > 개산 > 개자추 > 김세필’의 일련의 연쇄상 연상(連鎖狀聯想)이 자연스러운 가운데, 이미 가고 없는 그 임을 그리는 비회(悲懷)를 ‘煙雨ㆍ夕陽ㆍ피리 소리’가 부추기고, ‘東風’이 ‘春草年年綠 王孫歸不歸’ [王維]의 감회를 북돋우고 있다.
둔재(遯齋) 성세창(成世昌)은, 이 시의 ‘개산(介山)’이란, 그날이 한식이라 막연히 고사의 산명을 인용했을 뿐, 우리나라에 실재하는 산은 아니려니 하면서도, 미심쩍어,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던 바, 김공의 옛집 가까이 ‘개현(介峴)’이란 산이 있음을 확인하고는, 과연 따를 수 없는 대수(大手)로다 하며, 크게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임경(任)의 『현호쇄담(玄湖瑣談)』 7번에 전해 온다.
그 길로 광나루에 이르렀는데, 나룻배 안에서 문득 바라본 삼각산의 옛 얼굴이 하도 반가워 칠절(七絶) 한 수 「선산망견삼각산유감(船上望見三角山有感)」를 또 읊으니 다음과 같다.
孤舟一出廣陵津 | 외론 배로 광나루 밖 내쳐진 몸이 |
十五年來未死身 | 아니 죽어 15년만에 다시 왔어라! |
我自有情如識面 | 나는 보니 아는 얼굴 정에 겹다만 |
靑山能記舊時人 | 청산이야 알아주랴? 그 옛날 나를…… |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년, 242~244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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