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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0. 시마 이야기 - 6.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0. 시마 이야기 - 6.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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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시를 향한 열정과 사물의 비밀을 꿰뚫으려는 시인의 집착

 

지금까지 시마(詩魔)와 시귀(詩鬼), 그리고 귀시(鬼詩)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모두 시가 폐부에 깊이 박힌 고질(痼疾)이 되어, 시를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었던 옛 시인들의 시정신이 빚어낸 소화(笑話)들이다. 그러나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이 이들 이야기 속에는 깃들어 있다. 시마(詩魔)는 한 마디로 옛 사람의 시를 향한 열정의 다른 말이다. 시귀(詩鬼)는 달리 말해 사물의 비밀을 끝까지 꿰뚫으려는 시인의 집착일 뿐이다.

 

사조제(謝肇淛)란 이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생각이 많으면 심화(心火)가 타오르고 심화가 타면 신수(腎水)가 고갈되어 심장과 신()이 교통이 안 되므로 사람의 생리가 끊어진다. 그러므로 문인의 대다수가 자식을 두지 못하고 또한 장수하지 못하니, 이는 그 하는 일이 이런 까닭이다[思慮多則心火上炎, 火炎則腎水下涸, 心腎不交, 人理絶矣. 故文人多無子, 亦多不壽, 職是故也].” 동기창(董其昌), “그림을 그리는 도는 이른바 우주가 손에 달려 있어 눈앞에 있는 것이 모두 생기(生機)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왕왕 오래 산다[画之道, 所謂宇宙在乎手者, 眼前無非生機. 故其人往往多壽].”고 말하였다. 과연 시인은 단명(短命)하고, 화가는 장수(長壽)하는가.

 

이 두 사람의 말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이치가 전혀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을 하더라도 만약 혼후(渾厚)하게 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으며, 그림을 그려도 너무 정교함만 추구하면 혹 단명하기도 한다. 속담에 말하기를, ‘목공은 일생 동안 궁하나, 철공하는 사람은 필경 부자가 된다.’하니, 이 말은 그 운명과 운수가 직업에 따라 다르게 된다는 말이다. 목공은 깎아 버리기만 하고, 철공하는 사람은 항상 붙여 더하기 때문이다.

此兩言未必盡然, 而理或不誣. 然文若渾厚, 可得延壽, 画若細巧, 亦或致夭. 俗諺曰: ‘木工一生窮, 冶叟畢竟富.’ 此言其命數, 應乎術業. 木工以其截削也, 冶叟以其敷衍也.

 

 

이덕무(李德懋)앙엽기(盎葉記)에서 한 말이다.

 

 

 

결핍에 깃드는 시마

 

시마(詩魔)가 떠난 시인들은 시 짓기를 그만둘 일이다. 실제로도 젊은 시절 날카로운 표현과 치열한 시정신으로 시단(詩壇)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시인들이 어느 순간 침묵의 나락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침묵은 그래도 보기에 아름답다. 이미 시마가 떠나가 버린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전에 벌어놓은 점수까지 죄다 까먹는 조악한 시를 발표하는 시인들은 얼마나 추한가. 시마(詩魔)가 떠나고 보면, 지금 발표하고 있는 것이 시인지 넋두리인지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모양이다.

 

시마(詩魔)를 쫓아내겠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이규보(李奎報)의 경우는 오히려 행복하다. 시마(詩魔)가 더 이상 오지 않는 시인들은 붓을 꺾든지, 아니면 차라리 영시마문(迎詩魔文)이라도 지을 일이다. 배부르고 따뜻함 속으로 시마(詩魔)는 절대 깃들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충족된 넉넉함을 시마(詩魔)는 혐오한다. 이것은 꼭 물질의 넉넉함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결핍된 상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시인의 정신이 죽창처럼 곤두서 있는 지점에서 시마(詩魔)는 슬그머니 시인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시인은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인용

목차

1. 즐거운 손님, 시마(詩魔)

2. 시마와의 논쟁과 시마 증후군

3. 시마의 죄상

4. 시귀(詩鬼)와 귀시(鬼詩)

5. 귀신의 조화와 시인의 궁달

6.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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