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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 10. 시마 이야기 - 5. 귀신의 조화와 시인의 궁달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0. 시마 이야기 - 5. 귀신의 조화와 시인의 궁달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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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귀신(鬼神)의 조화와 시인(詩人)의 궁달(窮達)

 

 

정지상(鄭知常)이 일찍이 산사(山寺)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밤에 달이 휘영청 밝아 홀로 범각(梵閣)에 앉아 있는데, 홀연히 허공에서 시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僧看疑有刹 鶴見恨無松 스님이 보면 절 있을까 의심하고 학이 보곤 소나무 없음 아쉬워 하네.

 

정지상은 혼자 생각에 귀신이 알려주는 것이려니 하였으나, 무엇을 노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뒤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갔는데, 고시관(考試官)하운다기봉(夏雲多奇峯)’, 여름 구름엔 기이한 봉우리 많네.”란 도연명의 시구를 시제(詩題)로 하여 ()’자를 압운으로 내거는 것이었다. 퍼뜩 산사(山寺)에서 귀신이 들려준 시구가 생각난 그는 이를 이어 시로 써서 제출하였다.

 

白日當天中 浮雲自作峯 밝은 해 중천에 환히 떴는데 뜬 구름 제 홀로 봉우릴 짓네.
僧看疑有刹 鶴見恨無松 스님이 보면 절 있을까 의심 하고 학이 보곤 소나무 없음 아쉬워 하리.
電影樵童斧 雷聲隱士鍾 번개는 나무꾼의 도끼 자루요 우레는 은사(隱士)의 종소리로다.
誰云山不動 飛去夕陽風 산이 움직이지 않는다 누가 말했나 저물녁 바람에 저리 날려 가는데.

 

여름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은 허공에 수려한 산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스님네가 보면 근사한 절이 있으려니 생각함직 하고, 날던 학도 소나무만 있으면 진짜 산으로 알고 깃들일 만큼 실감나는 모습이다. 그런 착각에 빠져 있던 시인의 눈에 나무꾼의 도끼처럼 번개가 번쩍이고, 은사(隱士)의 종소리인양 우레가 치더니만, 석양 무렵 바람에 불려 먼 곳으로 산이 둥실둥실 떠가는 것이 아닌가. 마치 산 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구름 모자 벗겨오지하는 노래 가사를 듣는 듯 상쾌한 느낌을 준다. 고관(考官)은 특히 34구를 경어(驚語)라 하여 극구 칭찬하였으나, 이 두 구절이 귀신이 정지상(鄭知常)에게 일러준 것임은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백운소설(白雲小說)에 보인다.

 

 

 

귀신이 시로 사람을 출세시키다

 

성수시화(惺叟詩話)에는 귀신이 시로써 김안로를 출세시킨 이야기도 실려 있다. 김안로가 어릴 적 관동지방을 유람하였는데, 꿈속에 귀신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春融禹甸山川外 우임금의 산천 밖엔 봄 기운이 한창인데
樂奏虞庭鳥獸間 순임금 뜰 짐승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하네.

 

그러면서 이는 네가 벼슬을 얻을 말일 것이다[此乃汝得路之語].”라고 하였다. 이듬해 그가 정시(庭試)를 치러 들어갔더니, 연산군이 율시 6수를 내어 시험 치는데, 그 가운데, “이원(梨園)의 제자(弟子)들이 심향정(沈香亭) 가에서 한가로이 악보(樂譜)를 들쳐본다[梨園弟子, 沈香亭畔, 閒閱樂譜].”는 제목이 있었는데, ‘()’자로 압운하였다. 퍼뜩 귀신이 읊어준 시구를 떠올린 김안로는 그것을 써서 바쳐, 마침내 장원 급제하였다. 김안국(金安國)이 그때 시관(試官)으로 자리에 있다가 이것은 귀신의 말이지 사람의 말이 아니다[此句, 鬼語, 非人詩也].”라고 하였다. 이에 김안로가 사실대로 이야기하니 사람들이 김안국의 식견에 모두 탄복하였다.

 

 

 

귀신이 시로 사람을 죽이다

 

조기종(趙己宗)이란 젊은 서생이 남학(南學)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는 구두(句讀)도 뗄 줄 모르고 시를 지을 줄도 몰랐다. 하루는 꿈에 빈 집에 들어갔는데 넓고 조용하였고, 대추꽃이 막 피어나 마치 초여름과 같았다. 두 세 명의 서생이 그곳에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기종에게 굳이 시 짓기를 청하였다. 이에 조기종이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樹上棗滿開 空家寂無人 나무 위엔 대추꽃이 활짝 피었고 빈 집은 적막하여 아무도 없네.
春風吹不盡 萬里草多新 봄바람 끝없이 불어오더니 만리에 봄 풀이 새로웁구나.

 

꿈에서 깬 뒤 그는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꿈에서 지은 시를 써서 벽에 붙여 놓았는데, 이튿날 죽고 말았다. 이것이 귀신이 시로써 사람을 죽인 이야기다. 소문쇄록(謏聞鎖錄)에 실려 있다.

 

 

 

 

인용

목차

1. 즐거운 손님, 시마(詩魔)

2. 시마와의 논쟁과 시마 증후군

3. 시마의 죄상

4. 시귀(詩鬼)와 귀시(鬼詩)

5. 귀신의 조화와 시인의 궁달

6.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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