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야릇한 마음
耶溪五月天氣新 | 5월이라 야계엔 날씨가 화창하고 |
耶溪女子足如霜 | 야계의 아가씨는 다리도 희고 곱네. |
相將採蓮耶溪上 | 어울려 야계 위에서 연밥을 따니 |
翠微㔩葉輝艶陽 | 파아란 머리 장식 햇볕 받아 반짝이네. |
採採蓮花不盈掬 | 연밥은 따고 따도 한 줌 안 되고 |
却妬沙上雙鴛鴦 | 백사장 쌍쌍 원앙 샘이 나누나. |
鴛鴦雙飛不得語 | 원앙은 짝져 날고, 내 님은 못 만나 |
蕩槳歸來空斷腸 | 노 저어 돌아오며 속상해하네. |
성간(成侃)의 「채련곡(採蓮曲)」이다. 5월 화창한 여름 날, 야계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희고 고운 다리를 드러내고 연밥을 캐고 있다. 그녀의 파란 머리 장식이 햇볕에 반짝이며 푸른 물 위에 비쳐지니, 그 선연한 아름다움은 비길 데가 없다. 캐고 캐도 한 줌이 되지 않는 연밥은 그녀의 마음이 영 딴 데 가 있음을 말해준다. 그녀는 그저 건성으로 되는 대로 연밥을 따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로 하여금 연밥 따는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의중의 연인이었다. 그래서 백사장에서 쌍쌍이 노니는 원앙새가 샘이 난 것이다.
서로 짝을 지어 목을 부비며 사랑을 속삭이는 원앙새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연밥을 따러 와 사랑하는 사람과 정담을 나누려 하였는데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문득 혼자서 하릴없이 청춘의 때를 보내고 있는 자신의 가련한 처지에 그만 속이 상하고 말았던 것이다.
化雲心兮思淑貞 | 담박한 마음으로 정숙을 생각해도 |
洞寂寞兮不見人 | 산골 너무 적막하여 사람 하나 뵈지 않네. |
瑤草芳兮思芬蒕 | 아름다운 풀잎도 꽃 피울 생각는데 |
將奈何兮是靑春 | 이 젊은 청춘을 장차 어찌 할거나. |
설요(薛瑤)의 「반속요(返俗謠)」로 『전당시(全唐詩)』에 실려 전한다. 구름은 유유자적하다. 아무 데도 얽매인 데 없이 자유자재하다. 구름은 욕심이 없다. 집착도 없다. 처음 그녀는 구름과도 같은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산 속에 들어 머리를 깎고 수도의 길로 정진하였다. 부처님 전에 나아가 생각을 맑고 곧게 하고 삶의 참 이치를 깨닫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적막한 산 중엔 사람의 그림자조차 뵈지 않고, 그녀의 약동하는 청춘은 무엇보다 그 쓸쓸함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무엇을 위해 이 산 중에서 나는 홀로 이렇듯 지내는가. 저 봄풀을 보아라. 저들도 그 싱그러움을 뽐내며 꽃을 피우고 있질 않은가.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끼리 어깨를 부비며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나는 이를 굳이 마다하고 깊은 산 중에서 이 아름다운 청춘의 때를 사르고 있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친 그녀는 여섯 해 동안의 산중 생활을 스스로 그만두고 환속하고 말았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신라의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 승충(承沖)의 딸이었는데 나이 열다섯에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그러나 여섯 해 뒤 이 노래를 부르며 환속하여 곽원진(郭元振)의 아내가 되었다 한다. 청춘의 감정은 출렁이는 물결과도 같다. 가두면 가둘수록 더욱 거세어진다. 이를 굳이 가두어 잔잔하게 하려는 모든 노력은 어찌 보면 부질없는 짓이다. 감정의 일렁임을 억제하려는 집착이 또 하나의 미망을 낳는다. 3구의 ‘꽃다운 요초(瑤草)’는 그녀의 이름이 ‘요(瑤)’인 것을 환기하면 쌍관(雙關)의 의미가 있다.
白面書生騎駿馬 | 백면서생 도련님 준마 타시고 |
洛橋西畔踏靑來 | 낙교 서쪽 길로 답청놀이 나오셨네. |
美人不耐懷春思 | 미인은 싱숭생숭 마음 야릇해 |
擧上墻頭一笑開 | 담장 너머 고개 들어 웃음 보내네. |
성간(成侃)의 「염양사(艶陽詞)」이다. 청춘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정은 예와 지금이 다를 수 없다. 훤한 얼굴에 수려한 용모의 도련님이 준마를 타고 봄나들이를 나섰다. 낙교의 서쪽 물가라 했으니 번화한 도성 근처의 야외임을 알 수 있다. 답청이란 새로 돋은 푸른 풀 위를 걷는 봄날의 흥겨운 산보이다. 바깥 구경하는 법 없이 글방에서 공부만 하던 도련님도 일렁이는 봄날의 흥취를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말 위에 오똑하니 앉아 곁눈질도 하지 않고 도도하게 걸어가는 그 모습이 그만 길가 집 처녀의 시선을 사로잡고 말았다. 그녀 또한 답답한 봄날의 무료를 견디지 못하고, 호기심에 겨운 눈길로 때 마침 길가를 내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세상 풍파라고는 겪어 본 일이 없는 듯한 깨끗한 얼굴과 늘씬한 말의 기상은 첫눈에도 그가 권세가의 귀공자임을 말해 주고 있다. 두근대는 가슴, 봄날의 풋내 나는 사랑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澹掃蛾眉白苧衫 | 눈썹 곱게 단장한 흰 모시 적삼 |
訴衷情話燕呢喃 | 마음 속 충정을 재잘대며 얘기하네. |
佳人莫問郞年歲 | 님이여 내 나이를 묻지를 마오 |
五十年前二十三 | 오십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오. |
사랑의 감정에는 나이가 없다. 해학스러우면서도 함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눈썹을 곱게 그려 단장하고 흰 모시 적삼을 청결하게 입은 여인이 연신 마음속의 이야기를 재잘재잘 쉴 새 없이 말하고 있다. 그녀의 그러한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러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이를 묻지 말라는 말로 말문을 돌렸다. 그래 놓고는 하는 말이 오십년 전에는 나도 나이가 스물 셋이었다고 하였다. 묻지 말라고 해놓고 스스로 대답하는 밀고 당기는 수사의 묘가 재치롭다. 지금 그의 나이는 일흔 셋이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스물 셋의 한창 나이였다면 그녀와 멋진 로맨스를 이루어보기라도 할 텐데 하는 아쉬움을 그렇게 달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앞의 오십 살은 없는 셈 치고 멋진 사랑을 이루어보자고 다짐하고 있는 듯도 싶다.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와 손녀 뻘도 더 되는 젊은 아가씨 사이의 이러한 사랑 노래는 오히려 읽는 이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머물게 한다. 신위(申緯)가 변승애(卞僧愛)란 기생에게 주었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다.
인용
1. 담장가의 발자욱
2. 야릇한 마음
3. 보름달 같은 님
4. 진 꽃잎 볼 적마다
5. 까치가 우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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