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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24. 사랑의 슬픔, 정시의 세계 - 3. 보름달 같은 님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4. 사랑의 슬픔, 정시의 세계 - 3. 보름달 같은 님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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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보름달 같은 님

 

 

牧丹含露眞珠顆 모란 꽃 이슬 머금어 진주 같은데
美人折得窓前過 미인이 그 꽃 꺾어 창 가로 와서,
含笑問檀郞 花强妾貌强 방긋이 웃으면서 님께 하는 말 꽃이 어여쁜가요, 제가 어여쁜가요?”
檀郞故相戱 强道花枝好 신랑은 일부러 장난치느라 꽃이 훨씬 당신보다 어여쁘구료.”
美人妬花勝 踏破花枝道 그 말에 미인은 뾰로통해서 꽃가지 내던져 짓뭉개더니,
花若勝於妾 今宵花與宿 꽃이 진정 저보다 좋으시거든 오늘밤은 꽃과 함께 주무시구료.”

 

신혼부부에게만 있을 수 있는 사랑싸움을 재미있게 엮어낸 시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이 뜨락 가득 활짝 피었다. 꽃잎엔 진주알처럼 맑은 이슬이 송글송글 맺히었다. 이슬을 머금었다 하였으니 그녀는 햇살이 고운 이른 아침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님을 남겨 두고 넘치는 사랑에 겨워 꽃밭에 나선 참이었던 것이다.

 

문득 장난기가 동한 그녀는 탐스런 모란꽃 한 송이를 꺾어 창가로 와선 님을 불러 물어보았다. 꽃을 꺾어 옆에 들고 물어보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신랑은 일부러 장난을 걸었다. 아니 장난을 걸어 온건 그녀 쪽이 먼저였다. 꽃이 훨씬 예쁘다는 신랑의 장난에 그녀는 그만 새초롬해져서 꽃을 내던져 발로 마구 밟으며 톡 쏘았다. 꽃이 그렇게 어여쁘면 앞으로는 꽃하고 살라고 말이다. 기나 긴 그리움과 설레임 끝에 이룬 사랑은 이렇게 달콤하다. 대동시선(大東詩選)에는 지은이를 이규보(李奎報)라 하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의 문집에는 보이지 않는다. 제목은 절화행(折花行)이다.

 

妾心如斑竹 郞心如團月 제 마음 일편단심 대나무 같고 님의 마음 둥그런 달과 같아요.
團月有虧盈 竹根千萬結 둥근 달은 찼다가도 기운다지만 대 뿌리는 얼키설키 서려 있지요.

 

성간(成侃)나홍곡(囉嗊曲)이다. 소상강의 반죽(斑竹)과도 같은 일편단심 곧은 자신의 절개를 말하고는, 님의 마음은 온 누리를 환히 비추이는 환하고 둥근 달과 같다고 추켜세웠다. 이렇게 보면 누리를 비추는 고결한 달의 모습을 향한 대나무의 일편단심을 노래한 것이어서 격이 서로 잘 어울린다. 그러나 님을 환한 보름달로 잔뜩 추켜세운 것은 기리자는 것이 아니다. 달은 어떤가. 가득 찬 보름달이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초승달이 되고 또 그믐이 되지 않는가. 오늘 보름달의 광휘는 며칠 후면 스러지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러나 대나무의 뿌리만은 달의 차고 기움에 관계없이 땅 밑 깊은 곳까지 얼키설키 서리어 변할 줄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언제 변할 줄 모를 님의 얄궂은 심사 앞에 님을 보내기 싫은 여인의 마음이 애교있게 펼쳐져 있다. 이 시의 재미는 바로 3구의 반전에 있다. 처음 추켜세우는 듯한 어조를 취하다가 이를 극적으로 뒤집음으로써 미감이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달래고 어르는 억양법이다.

 

그러나 이별은 예고도 없이 불현듯 찾아든다. 변치 않겠노라던 전날의 언약이 있기에 이별은 더욱 서럽다.

 

五更燈燭照殘粧 새벽녘 등불은 얼룩진 화장 비추는데
欲話別離先斷腸 이별을 말하려니 먼저 애가 끊어지네.
落月半庭推戶出 달도 다 진 새벽녘에 문 열고 나서려니
杏花疎影滿衣裳 살구꽃 성근 그림자 옷깃에 가득해라.

 

정포(鄭誧)별정인(別情人)이란 작품이다. 이별을 앞둔 남녀의 정황이 눈물겹다. 오경의 등불은 새벽에 일어나 켠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은 날이 새면 서로 헤어질 것이 아쉬워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날이 새면 나는 사랑하는 여인을 남겨두고 기약 없는 먼 길을 떠나야만 한다. 이별이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애부터 끊어진다.

 

처음 마주 앉았을 때 동산 위로 떠오르던 달은 이제 어느새 서편으로 기울어 마당 위에 가득하던 달빛도 이제 반 밖에 남질 않았다. 달이 지면 해가 뜨고, 해가 뜨면 헤어져야 한다. 달도 지지 않아 문 밀고 나선 것은 갈 길이 먼 까닭이다. 서둘러 문을 밀고 나서는 내 옷깃 위로 살구꽃의 성근 그림자가 가득 어린다. 꽃 그림자가 성글다 했으니 좋은 봄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옷깃 가득히 어려오는 꽃 그림자는 그럼에도 잊지 못할 아름답던 지난날에 대한 가슴 가득한 그리움이다.

 

 

 

 

인용

목차

1. 담장가의 발자욱

2. 야릇한 마음

3. 보름달 같은 님

4. 진 꽃잎 볼 적마다

5. 까치가 우는 아침

6.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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