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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 24. 사랑의 슬픔, 정시의 세계 - 6.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4. 사랑의 슬픔, 정시의 세계 - 6.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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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정시(情詩) 가운데서도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남정네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평생 고생만 하다 떠난 아내이기에 가슴에 저미는 아픔이 유난스럽다. 이런 시를 망자를 애도하는 시라 하여 도망시(悼亡詩)라고도 하는데 몇 작품을 함께 보기로 하자.

 

嫁日衣裳半是新 시집 올 제 해온 옷이 반 너머 그대로니
開箱點檢益傷神 궤를 열고 살펴보다 더욱 맘을 상하네.
平生玩好俱資送 평생 좋아하던 것을 함께 담아 보내서
一任空山化作塵 빈 산에 다 맡기니 티끌되어 스러지라.

 

이계(李烓)부인만(婦人挽)이다. 아내가 훌쩍 세상을 떠버리고, 땅에 묻으려고 아내의 옷가지를 뒤적이다 목이 메이고 만 노래다. 아내의 옷상자를 꺼내어보았다. 시집 올 때 지어온 옷이 반 너머 그대로다. 아껴 입느라고 그랬던가. 겨우 이렇게 살다가고 말 것을. 시집 올 때 옷이 반 너머 그대로라고 했으니 그녀가 아직 청춘의 나이임을 알 수 있다.

 

시집 올 때 한 벌 한 벌 새로 옷을 지을 때야 어찌 이것이 한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관 속에 들어가 주인과 함께 흙 속에 묻히고 말 것을 생각이나 했으랴. 그밖에 노리개와 패물이 모두 만져보매 눈물겹고, 들여다보매 생시의 모습이 훤히 떠올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두 싸서 그녀의 관에 함께 묻었다. 아끼어 입지 않고 장롱 깊이 넣어둔 옷이 죽음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부질없이 관의 빈 곳을 채워 주인과 함께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죽은 아내의 옷과 아끼던 물건들을 모두 함께 관 속에 넣은 뜻은 그녀와의 다정했던 기억마저 아내와 함께 떠나보내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날 다정했던 사랑의 기억이야 어디 땅에 묻는다고 잊혀지겠는가.

 

聊將月老訴冥府 월하노인 통하여 저승에 하소연해
來世夫妻易地爲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我死君生千里外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 밖에 살아남아
使君知有此心悲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김정희(金正喜)배소만처상(配所輓妻喪)이다. 이 시는 추사가 만년 제주도에 유배 갔을 당시 지은 시이다. 절해고도(絶海孤島) 제주도에서 실의의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늙고 병든 노정객에게 아내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오랜 세월 부부의 인연으로 지냈던 나날들. 자신의 귀양 소식에 아내는 얼마나 낙담하고 절망했던가. 끝내 그 절망을 지우지 못하고 아내는 그렇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돌아보면 예술도 명예도 덧없는 것이었다. 정작 평생을 함께 보낸 아내의 죽음에 가서 곡 한 번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는 기가 막히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였다.

 

첫 구에서는 월하노인에게 부탁해서 이 기막힌 심정을 저승에 하소연 하겠노라 했다. 월하노인은 중매의 신이다. 전생에 그가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을 맺어 주어 현생에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아내가 훌쩍 세상을 떠나버린 지금엔 백년해로의 언약을 저버린 그녀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월하노인에게 내세엔 부부를 바꾸어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소연하겠다 했다. . 내세에는 삶과 죽음을 바꾸어 지금의 이 기가 막힌 심정을 그대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죽은 이는 그렇듯 훌쩍 떠나면 그 뿐이겠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하염없는 슬픔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옛 시조에도 위 시와 비슷한 작품이 있다.

 

 

우리 둘이 후생(後生)하여 네나되고 내너되어

내너 그려 긋던 애를 너도 날그려 긋쳐보렴

평생에 내 설워하던줄을 돌려볼가 하노라

 

 

玉貌依稀看忽無 곱던 모습 아련히 보일 듯 사라지고
覺來燈影十分孤 깨어 보면 등불만 외로이 타고 있네.
早知秋雨驚人夢 가을비가 잠 깨울 줄 진작 알았더라면
不向窓前種碧梧 창 앞에다 오동일랑 심지 않았을 것을.

 

이서우(李瑞雨)도망실(悼亡室)을 보자. 오동잎에 듣는 성근 가을 비 소리에 잠이 깨었다. 깨고 보면 등불만 외로이 제 살을 태우고 있는 밤. 등불을 켠 채 든 잠이니, 불면의 시간 알지 못할 허전함과 외로움에 뒤척이다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어여쁘던 아내의 모습을 보았건만 문득 깨고 보면 그 모습은 어디서고 찾을 길이 없다.

 

안타까운 그의 꿈을 깨운 것은 야속할사 오동잎에 듣는 빗발이었다. 꿈을 깬 그는 오늘따라 유난히도 오동잎이 원망스러웠다. 그 벽오동은 왜 심었던가. 뜨락에 심어 봉황을 깃들이고, 그 상서로움 속에 오순도순 정답게 살자함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아내가 세상을 뜨고 없는 지금에 지난날의 정답던 약속은 하염없는 눈물과 탄식만을 자아낼 뿐이다.

 

김상용(金尙容)의 시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동에 듣난 빗발 무심히 듣건마는

내 시름 하니 잎잎이 수성(愁聲)이로다

이후야 잎 넙운 나무를 심을 줄이 있으랴

 

 

깊은 밤 넓은 오동잎에 듣는 빗소리는 얼마나 상쾌할까 마는 마음에 근심이 있어 들으니 소리마다 근심을 자아낼 뿐이라는 것이다. 위 시에서 댓잎에 듣는 빗소리도 여늬 때면 더위를 가셔 줄 시원한 그 소리가 님 그려 잠 못 드는 밤에는 괴로운 소음이 됨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또 이은상은 밤 빗소리란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 뇌고인(惱苦人)들아 밤 빗소리 듣지 마소

두어라 이 한 줄밖에 더 써 무엇하리오.

 

 

羅幃香盡鏡生塵 휘장 향내 스러지고 거울 먼지 쌓였구나
門掩桃花寂寞春 닫아건 문 안엔 복사꽃만 적막해라.
依舊小樓明月在 누각에는 그때처럼 달 떠있건만
不知誰是捲簾人 발을 걷고 같이 볼 사람이 없네.

 

이달(李達)도망(悼亡)이다. 주인을 잃은 빈방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훌쩍 가버린 아내의 체취가 그리워서였다. 그러나 주인 잃은 거울 위엔 먼지만 자옥히 쌓여 있고, 휘장에는 향내마저 스러진 지 오래다. 사람 없는 빈방은 이다지도 적막한가. 나갈 일 없어 닫아건 문가엔 예전처럼 복사꽃이 피었고, 달빛 받아 그 꽃잎은 곱기도 한데 그 꽃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적막하기만 하다. 아내가 곁에 없는 지금 봄이 온들 무엇하며 꽃이 핀들 무엇하리.

 

엘리어트(T. S. Eliot)는 그의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하였다. 대지 위에 새롭게 피어난 꽃들과 봄날을 노래하는 새들, 이런 것들로 대지는 새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지만 황무지와 같은 마음속에 그것들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아련한 옛 기억을 무참하게 일깨워 줄 뿐인 것이다.

 

 

4월은 더없이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써 잠든 뿌리를 뒤흔드노라.

 

겨울은 차라리 따뜻했노라,

망각의 눈은 대지를 뒤덮고,

메마른 구근(球根)들로 가냘픈 목숨 이어주었노라.

 

여름은 소나기를 몰고 슈타른버거호수를 건너와,

우리를 놀래주었지, 그래서 우리는 회랑(回廊)에 머물렀다가,

다시 햇빛 속을 걸어 공원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을 이야기했지.

 

나는 러시아 사람 아니에요, 리투아니아 출생이지만, 나는 순수 독일인이에요.

우리가 어린 시절, 사촌 태공의 집에 머물 때,

사촌이 썰매를 태워주었는데, 나는 겁이 났어요,

마리, 마리 꼭 잡아라고 말하며 그는 쏜살같이 내려갔어요.

산속에선 자유로워요.

밤이면 책 읽으며 보내고, 겨울이면 남쪽으로 가지요.

 

저 얽힌 뿌리들은 무엇이며, 이 돌무더기에서

무슨 가지들이 자라난단 말인가? 인간의 아들이여,

너는 알기는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이란

망가진 우상들 무더기뿐, 거기 해가 내리쬐어도

죽은 나무엔 그늘이 없고, 귀뚜리도 위안 주지 못하며,

메마른 돌 틈엔 물소리조차 없노라. 오로지

이 붉은 바위 아래에만 그늘 있노라,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라)

그리하면 나는 네게 보여주리라,

아침에 너를 뒤따르는 네 그림자와 다르고

저녁에 너를 마중 나온 네 그림자와 다른 것을;

한 줌 먼지 속 두려움을 네게 보여주리라.

 

상큼한 바람

고향으로 부는데

아일랜드의 내 님이시여

어디쯤 계시나요?

 

일 년 전 당신은 내게 처음으로 히야신스를 주셨어요,’

사람들은 나를 히야신스 아가씨라고 불렀어요.’

- 하지만 우리가 히야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돌아왔을 때,

한 아름 꽃을 안은 너, 머리칼도 젖어있었지,

나는 말도 못하고 내 두 눈은 보이지도 않았지,

나는 살지도 죽지도 않은 채, 아무 것도 모른 채,

빛의 핵심을, 그 고요를 들여다보았지.

바다는 텅 비었고 쓸쓸합니다.

 

명성 자자한 천리안, ‘소소트리스부인은

독감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 영특한 카드 한 벌로

유럽에서 제일 현명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의 카드가 나왔어요,

물에 빠져죽은 페니키아 뱃사람이에요,

(보세요! 그의 두 눈은 진주로 변했잖아요.)

 

이 카드는 미녀 벨라도나, 암굴의 여인인데, 중요할 때면 등장하지요.

이것은 세 지팡이와 함께 있는 사나이, 이것은 수레바퀴,

그리고 이것은 외눈박이 장사꾼, 또 이것은

텅 빈 카드, 그가 무언가 등에 짊어지고 가지만

나는 볼 수 없는 것이지요. 매달린 사나이는

보이지 않는군요. 물을 조심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혹시 에퀴톤부인을 만나거든

천궁도(天宮圖)는 내가 직접 가져간다고 전해주세요.

요즈음은 세상이 하도 험악하니까요.

 

허황한 도시,

겨울 새벽녘 누런 안개 속에,

런던 다리 위 흘러가는 사람들, 많기도 해라,

죽음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 망친 줄 나는 생각도 못했다.

어쩌다 짧은 한숨들 내쉬며

저마다 제 발끝만 내려다보며 간다.

언덕길을 올라 윌리엄왕 거리로 내려서면

성 메어리 울로스성당에서 들려오는

아홉 시의 마지막 아홉 점 죽어가는 소리.

거기서 나는 친구를 만나 그를 붙잡고 소리쳤다, ‘스테트슨!’

밀라에해전에서 나와 한 배 탔던 자네!

지난 해 자네가 뜰에 심었던 그 시체 말일세,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피겠나?

혹시 서리가 느닷없이 묘상(苗床, Bed)을 뒤흔들진 않았었나?

, 그 인간의 친구라는 개를 멀리하게,

그렇지 않으면 그놈이 발톱으로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들 위선의 독자여! 나의 동류, 나의 형제여!

 

 

달은 예전 그대로 복사꽃잎을 비추이며 떠올랐건만, 그 밤 함께 발을 걷어 올리다 탄성을 발하던 그 님은 이제 내 곁에 없다. 남정을 잃은 아낙의 마음은 오히려 매섭다. 그러나 아내 잃은 남정의 마음은 애처롭기만 하다. 2구의 닫아건 문은 바깥일에 흥미를 잃은 실의한 마음이 드러나 있다. 변함없는 자연과 덧없는 인간사가 34구에서 교차되면서 2구의 적막한 심사를 고조시키고 있다.

 

淡煙疎雨新秋 안개 끼고 비 내리는 초가을
不禁愁 솟아나는 근심 금할 길 없어
記得靑帘江山酒樓 그대와 만나던 강가 술집 찾았으나
人不住 사람은 간 곳이 없네.
花不語 꽃도 말이 없고
水空流 물만 부질없이 흐르는데
只有一雙檣燕 다만 돛대 위엔 한 쌍의 제비가 있어
肯相留 날더러 머물러 있으라 하네.

 

왕정균(王庭筠)오야제(烏夜啼)란 작품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강가에 안개가 자옥하게 서리고, 가슴 속에선 뭉게뭉게 솟아나는 근심이 있다. 지나간 날들에 대한 회한, 다시 못 올 그 날에 대한 그리움들이 한데 엉켜 견딜 수가 없다.

 

강가를 이리저리 거닐어본다. 옛날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 강가 주막은 쓸쓸하니 기척도 없고, 사랑하던 사람의 자취도 다시 찾을 길 없다. 가을 들길에는 그때처럼 함초롬히 안개에 젖어 꽃이 피었다. 꽃도 말이 없다. 꽃잎에선 눈물인양 빗물이 듣고, 눈을 돌려 보면 쓸쓸한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강물이 조촐히 흘러가고 있다. 모든 것은 옛날과 그대로인데 또 예전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 한 쌍의 제비. 주인 잃은 배의 돛대 위에 나란히 앉은 제비도 그대로 있다. 그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은 먼 길을 떠나 돌아올 줄 모르고, 나는 날마다 이 강변에 나와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한다.

 

이상 사랑을 주제로 한 정시(情詩) 몇 수를 만남에서 이별까지 사랑의 한살이로 엮어 감상해보았다. 한시에서 사랑의 노래는 어째서 이렇게 슬픔에 푹 젖어 가라앉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정서란 애초에 모든 것이 충족된 속에서 터져 나오는 법이 없다. 소중한 무엇밖에 놓여 있다는 생각, 안겨야 할 어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마음에서 정서는 비로소 움터 나온다. 필자는 세 해 전 김도련 선생과 함께 한국의 애정한시 2백여 수를 엮어 감상한 평설집 꽃피자 어데선가 바람불어와(교학사, 1993)를 펴낸 일이 있다. 이 글은 이 책 가운데서 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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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담장가의 발자욱

2. 야릇한 마음

3. 보름달 같은 님

4. 진 꽃잎 볼 적마다

5. 까치가 우는 아침

6.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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