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까치가 우는 아침
有約來何晩 庭梅欲謝時 | 약속을 하시고선 왜 안 오시나 뜨락의 매화 꽃도 시드는 이때. |
忽聞枝上鵲 虛畵鏡中眉 | 나무 위서 까치가 울기만 해도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요. |
이옥봉(李玉峯)의 「규정(閨情)」이란 작품이다. 절망의 겨울을 다 보내고 봄이 다 가도록 금세 오마던 님은 돌아올 줄 모른다. 저 매화꽃이 지기 전에는 오셔야 할 텐데. 봄이 되면 온다던 님이 꽃마저 지면 영영 안 오실 것만 같아 여심은 공연한 조바심을 지우지 못한다. 꽃망울이 부프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꽃이 피면 님이 오마고 했으므로. 그런데 정작 꽃이 피자 이제는 님이 오시기도 전에 시들까봐 조마한 가슴을 어쩌지 못한다. 그러나 매화꽃이 질 때는 이제 막 봄이 시작될 무렵인데도 그녀의 마음은 벌써 봄이 다 가버린 것만 같아서 다급하기만 하다.
아침 까치가 울면 귀한 손님이 온다고 했다. 까치 소리가 날 때마다 행여 님이 오실 것만 같아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눈썹을 고친다. 그러나 헛손질이 잦아질수록 그녀의 불안도 깊어만 간다.
近來安否問如何 | 근래에 안부는 어떠신지요 |
月到紗窓妾恨多 | 사창에 달 떠오면 사무치는 그리움. |
若使夢魂行有跡 | 꿈속 넋이 만약에 자취 있다면 |
門前石路便成沙 | 문 앞의 돌길이 모래로 변했으리. |
이옥봉(李玉峯)의 「증운강(贈雲江)」이다. 근래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보아 님이 그녀를 찾은 것이 이미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달 떠오는 밤 사창 속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말하여, 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을 드러내 보였다.
3ㆍ4구의 과장된 언술에 이 시의 묘미가 있다. 그녀는 밤마다 님을 만나러 길을 나서니, 만일 꿈속의 일이 자취로 남는다면 그 많은 밤마다의 꿈은 집 앞의 돌길이 다 닳아 모래로 변하기에 충분하리라는 것이다. 남들이야 편히 잠잔다고 할 줄 몰라도 굳이 잠을 청하는 것은 졸음이 와서가 아니다. 꿈 길 밖에는 님을 만날 길이 없으니, 꿈에서라도 만나기 소원인 때문이다.
이명한(李明漢)의 시조에 위 시와 꼭 같은 내용이 보인다.
꿈에 다니는 길이 자최 곳 나랑이면
님의 집 창밖에 석로(石路)라도 달으련마는
꿈길이 자최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초장과 중장은 위 시 3ㆍ4구와 그대로 일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搖蕩春風楊柳枝 | 봄바람 버들가지 휘날리우고 |
畵橋西畔夕陽時 | 그림 다리 서쪽에 해가 기울제, |
飛花撩亂春如夢 | 나는 꽃 어지러운 꿈 같은 봄 날 |
惆悵芳洲人未歸 | 슬프다 방주에 님은 안 오네. |
이정귀(李廷龜)의 「유지사(柳枝詞)」 다섯 수 가운데 한 수다. 봄바람이 버들가지를 간지르며 흩날리우는 정경을 뒤로하고 다리 저편으로 봄날의 하루해가 저물고 있다. 저무는 해의 잔광 속에서 봄날을 빛내던 꽃잎들도 분분히 진다. 어지러이 날리어 땅 위로 떨어지는 꽃잎, 아름답던 봄날은 진정 한바탕 꿈이었던가.
아지랑이 나른하던 봄이 다 지나도록 지난날 방주에서 아름답던 사랑을 속삭이던 그 님은 소식도 없고, 하루를 일 년같이 손꼽아 기다리던 꽃답던 마음도 날리우는 꽃잎 따라 땅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꽃잎이 다 진 뒤 내 청춘이 다 간 뒤 그때에 가서 님이 돌아오신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지랑이 흔들리는 봄날 저물녘의 원경 위로 분분히 떨어지는 낙화, 그녀의 눈물은 이미 말라 버렸다.
膝下孩兒新學語 | 슬하에 아이는 말을 갓 배우겠고 |
竈門老婢舊懸瓢 | 부엌의 늙은 종은 양식이 없다겠지. |
林園廖落生秋草 | 정원엔 황량하게 가을 풀이 돋았겠고 |
想見容華日日凋 | 날로 여윌 그 모습이 눈에 선하네. |
그리움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준(奇遵)이 귀양 가 있을 때 멀리 아내를 그리며 지었다는 「회처(懷妻)」란 작품이다. 먼 변방에서 귀양살이 하던 가장은 애써 잊으려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그리운 가족들 생각에 가슴이 저미도록 아팠다. 귀양 올 때 뱃속에 있던 아이는 지금쯤은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제 자식의 얼굴을 모르는 아비도 있던가. 나 없는 집의 살림은 얼마나 군색할 것인가. 계집종은 부엌에서 떨어진 양식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주인 없는 정원은 버려진 채 잡초만 무성할 게고, 그 위에 시름겨운 아내의 모습조차 겹쳐지니 견딜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아내의 모습도 젊고 예쁜 모습이 아니다. 어느새 세상 시름에 이마엔 주름이 잡히어 있다. 모든 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었던가. 이런저런 생각에 그는 또 밤을 하얗게 새우고 만다. 더욱이 자신은 나라에 죄를 지은 몸이었다. 아! 언제나 다시 만나 오순도순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도리를 다하며 살아볼 것인가. 그날이 진정 오기는 할 것인가.
인용
1. 담장가의 발자욱
2. 야릇한 마음
3. 보름달 같은 님
4. 진 꽃잎 볼 적마다
5. 까치가 우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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