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낭환집서 (7)
건빵이랑 놀자
7. 이 작품집에 나는 모르고 그대들만 아는 코골이는 알려주시라 이로 볼진대 얻고 잃음은 내게 달려 있지만 기리고 헐뜯음은 남에게 있다. 비유하자면 이명耳鳴이나 코골기와 같다.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의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 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의 아이가 귀를 맞대고 귀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였다. 以是觀之, 得失在我, 毁譽在人. 譬如耳鳴而鼻鼾. 小兒嬉庭, 其耳忽鳴, 啞然而喜, 潛謂隣兒曰: “爾聽此聲. 我耳其嚶. 奏鞸吹笙, 其團如星.” 隣兒傾耳相..
6. 글의 생명은 진정성의 여부에 달렸다 이러한 가치 판단의 문제(자! 그렇다면 우리가 처해야 할 그 ‘중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 다른 시각에서 다룬 글이 바로 「공작관문고자서孔雀舘文稿自序」이다. 이글에서 연암은 다시 이명耳鳴과 코골기의 비유를 들고 나온다. 먼저 원문을 읽어 보도록 하자. 글이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일 뿐이다. 저 제목에 임해 붓을 잡기만 하면 문득 옛 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경전의 뜻을 찾아 생각을 꾸며 근엄하게 하며 글자마다 무게를 잡는 자는, 비유하자면 화공畵工을 불러 진영眞影을 그리는데 용모를 고쳐서 나가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멀뚱멀뚱 구르지 않고, 옷의 무늬는 닦은 듯 말끔하여 평상의 태도를 잃고 보면 비록 훌륭한 화공이라 해도 그 참 모습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
5. 중간에 처하겠다 애초에 우리의 관심사는 장님의 비단옷과 밤길의 비단옷 사이에 우열을 갈라 따지는 일이었으니, 그 대답은 정령위와 양웅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를 헤아려 보면 해결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그것을 청허선생은 “난 몰라! 난 몰라!”했고, 연암은 다시 청허선생에게나 가서 물어보라고 했으니,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답을 어디에서 찾을까? 다음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보이는 삽화가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법 싶다. 장자가 산 가운데로 가다가 가지와 잎새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 베는 사람이 그 곁에 멈추고도 베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으니, “쓸 만한 곳이 없다”고 하였다. 장자가 말하기를, “이 나무는 쓸모없음을 가지고 그 타고난 ..
4. 자네의 작품집은 여의주인가 말똥인가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사랑하여 여룡驪龍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도 또한 그 구슬을 가지고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자패子珮가 이를 듣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것으로 내 시집의 이름을 삼을 만하다”하며 마침내 그 시집을 이름지어 『낭환집蜋丸集』이라하고는 내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蜣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 笑彼蜋丸. 子珮聞而喜之曰: “是可以名吾詩.” 遂名其集曰蜋丸, 屬余序之. 말똥구리는 더러운 말똥을 사랑스런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정성스레 굴린다. 말똥구리에게 있어 말똥은 여룡이 물고 있는 여의주보다 더 소중하다. 여룡이 여의주와 바꾸자 한들 거들떠 볼 까닭이 없다. 말똥구리에게 여의주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여룡..
3. 짝짝이 신발 임백호林白湖가 막 말을 타려는데 하인이 나서며 말하기를,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가죽신과 나막신을 한짝씩 신으셨네요.” 하자, 백호가 꾸짖으며 말하였다. “길 오른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가죽신을 신었다 할 터이고, 길 왼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나막신을 신었다 할 터이니,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林白湖將乘馬, 僕夫進曰: “夫子醉矣. 隻履鞾鞋.” 白湖叱曰: “由道而右者, 謂我履鞾, 由道而左者, 謂我履鞋, 我何病哉!”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조선 중기의 쾌남아이다. 그가 평양 부임길에 길가에 황진이 무덤 곁을 지나게 되었다. 왕명을 받들고 가는 터였음에도 호기에 겨워 기생의 무덤에 술잔을 부어 주며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紅顔은 어데 두고 백골白骨만 누었나니. 잔..
2. 이가 사는 곳 예전 황희黃喜 정승이 공무를 파하고 돌아오니, 그 딸이 맞으며 말하였다. “아버님, 이[蝨]를 아시는지요? 이는 어디서 생기나요? 옷에서 생기나요?” “그렇지.” 딸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이겼다!” 하자 며느리가 청하여 말하기를, “이는 살에서 생기지요?” “네 말이 맞다.” 며느리가 웃으며 말하기를, “아버님은 내가 맞다시는 걸요.” 하였다. 부인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누가 대감더러 지혜롭다 하겠수. 다투고 있는데 둘 다 옳다니요?” 정승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둘 다 이리 오너라. 대저 이는 살이 아니면 알을 까지 못하고, 옷이 아니고는 붙어있질 못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옳은 것이야. 비록 그렇긴 해도 옷이 장롱 속에 있어도 또한 이는 있고, 설사 네가 ..
1. 바른 견식은 어디서 나오나? 진정지견眞正之見, 즉 참되고 바른 견식見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번에 살펴보려는 「낭환집서蜋丸集序」와 「공작관문고자서孔雀舘文稿自序」는 바로 이 진정眞正한 견식의 소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암의 글이 늘 그렇듯 이들 글 또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여러 겹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 글쓴이의 진의를 온전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나가 놀다가 장님이 비단옷 입은 것을 보았다. 자혜가 휴우 하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아! 제게 있는데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자무가 말하였다. “대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 마침내 서로 더불어 청허선생聽虛先生에게 이를 물어보았더니, 선생은 손을 내저으며 “나는 모르겠네. 나는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