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짝짝이 신발
임백호林白湖가 막 말을 타려는데 하인이 나서며 말하기를,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가죽신과 나막신을 한짝씩 신으셨네요.” 하자, 백호가 꾸짖으며 말하였다. “길 오른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가죽신을 신었다 할 터이고, 길 왼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나막신을 신었다 할 터이니,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林白湖將乘馬, 僕夫進曰: “夫子醉矣. 隻履鞾鞋.” 白湖叱曰: “由道而右者, 謂我履鞾, 由道而左者, 謂我履鞋, 我何病哉!” |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조선 중기의 쾌남아이다. 그가 평양 부임길에 길가에 황진이 무덤 곁을 지나게 되었다. 왕명을 받들고 가는 터였음에도 호기에 겨워 기생의 무덤에 술잔을 부어 주며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紅顔은 어데 두고 백골白骨만 누었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라는 시조 한 수를 지었다가, 임지 부임하기도 전에 파면을 당했다던 풍류 남아다.
잔치 집에서 거나해진 그가 잘못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와 말에 올라타려 하자, 하인이 거들고 나선다. “나으리, 신발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요!” “옛끼 이놈! 길 오른편에서 나를 본 자는 저 사람이 가죽신을 신은게지 할 터이고, 길 왼편에서 나를 본 자는 저 이가 나막신을 신었구먼 할 터인데, 짝짝이고 아니고가 무슨 상관이더란 말이냐. 어서 가기나 하자!”
이로 말미암아 논하건대, 천하에 보기 쉬운 것에 발 만한 것이 없지만, 보는 바가 같지 않게 되면 가죽신인지 나막신인지도 분별하기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참되고 바른 견해는 진실로 옳다 하고 그르다 하는 그 가운데에 있다. 그러나 땀이 이로 변화하는 것 같은 것은 지극히 미묘하여 살피기가 어렵다. 옷과 살의 사이에는 절로 빈 곳이 있어 떨어지지도 않고 붙어있지도 않으며 오른쪽도 아니요 왼쪽도 아니니 누가 그 ‘가운데’를 얻을 수 있겠는가? 由是論之, 天下之易見者, 莫如足, 而所見者不同, 則鞾鞋難辨矣. 故眞正之見, 固在於是非之中. 如汗之化蝨, 至微而難審. 衣膚之間, 自有其空, 不離不襯, 不右不左, 孰得其中? |
묘한 말씀이다. 그저 걸어 갈 때라면 신발을 짝짝이로 신은 것이 과연 우스꽝스러운 노릇일 테지만, 그렇지 않고 이쪽 발과 저쪽 발 사이에 말이 가로 놓이고 보면 짝짝이 신발은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괴상한 논리이다. 사람들은 어느 한쪽의 자기 기준만을 가지고 사실을 판단하므로, 자신이 본 반쪽만으로 으레 반대편도 그러려니 할 것이기에 한 말이다.
우리의 판단은 늘 이 모양이다. 짝짝이 신발처럼 알아보기 쉬운 것도 그 사이에 어떤 다른 것이 끼어들기만 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만다. 그렇다면 말 탄 사람의 신발이 짝짝이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어찌 해야 할까? 말의 정면에 서서 보면 금세 알 수가 있다. 너무도 분명한 짝짝이 신발조차도 올바로 볼 줄 모르는 우리네 안목이고 보면, 옷과 살 사이에 붙어사는 눈에 잘 뵈지도 않는 이의 문제에 이르러서는 뭐라 분명한 판단을 갖기란 더더욱 쉽지가 않다. 과연 그렇다면 떨어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붙어 있는 것도 아니며, 오른쪽이라 할 수도 없고 왼쪽이라 하기도 어려운, 이도 저도 아니면서 막상 아닌 것도 아닌 그 중간 지점은 어디인가? 연암은 진정한 견식은 바로 이러한 시비의 정 ‘가운데’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 전문
인용
2. 이가 사는 곳
3. 짝짝이 신발
5. 중간에 처하겠다
5-1. 총평
7. 이 작품집에 나는 모르고 그대들만 아는 코골이는 알려주시라
7-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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