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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중간은 어디인가? - 2. 이가 사는 곳 본문

책/한문(漢文)

중간은 어디인가? - 2. 이가 사는 곳

건방진방랑자 2020. 3. 2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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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가 사는 곳

 

예전 황희黃喜 정승이 공무를 파하고 돌아오니, 그 딸이 맞으며 말하였다.

아버님, []를 아시는지요? 이는 어디서 생기나요? 옷에서 생기나요?”

그렇지.”

딸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이겼다!”

하자 며느리가 청하여 말하기를,

이는 살에서 생기지요?”

네 말이 맞다.”

며느리가 웃으며 말하기를,

아버님은 내가 맞다시는 걸요.”

하였다. 부인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누가 대감더러 지혜롭다 하겠수. 다투고 있는데 둘 다 옳다니요?”

정승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둘 다 이리 오너라. 대저 이는 살이 아니면 알을 까지 못하고, 옷이 아니고는 붙어있질 못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옳은 것이야. 비록 그렇긴 해도 옷이 장롱 속에 있어도 또한 이는 있고, 설사 네가 벌거벗고 있더라도 오히려 가려울 테지. 땀기운이 물씬하고 끈적끈적한 기운이 풀풀 나는 가운데, 떨어지지도 않고 붙어있지도 않은 옷과 살의 사이, 바로 거기서 이는 생기느니라.”

昔黃政丞自公而歸, 其女迎謂曰: “大人知蝨乎? 蝨奚生? 生於衣歟?” : “.” 女笑曰: “我固勝矣.” 婦請曰: "蝨生於肌歟?” : “是也.” 婦笑曰: “舅氏是我.” 夫人怒曰: “孰謂大監智, 訟而兩是?” 政丞莞爾而笑曰: “女與婦來. 夫蝨非肌不化, 非衣不傅. 故兩言皆是也. 雖然衣在籠中, 亦有蝨焉, 使汝裸裎, 猶將癢焉. 汗氣蒸蒸, 糊氣蟲蟲, 不離不襯, 衣膚之間.”

그리고는 다소 엉뚱하게 연암은 두 개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황희 정승의 이야기임백호의 일화가 그것이다.

먼저 황희 정승의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이 이야기는 계집종끼리 싸우다가 둘이 차례로 와서 하소연하자 둘에게 모두 네 말이 옳다고 대답했다는 널리 알려진 황희 정승의 설화를 연암식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조카가 그 곁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어찌 둘 다 옳을 수 있느냐고 따지자 황희는 능청스레 그래, 네 말이 옳다고 했다는 바로 그 이야기다.

청허선생이 나는 모른다고 연암에게 미룬 문제는 이것과 저것의 사이를 갈라 분변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연암은 예의 황희 정승 이야기를 패러디하여 이가 과연 살에서 생기는가 아니면 옷에서 생기는가의 문제로 화제를 옮겨왔다. 이는 옷에서 생긴다고 믿는 딸과, 이는 살에서 생긴다고 여기는 며느리를 두고 황희는 둘 다 옳다고 말한다. 그러자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그의 부인이 따지고 대든다.

빙그레 웃으며 하는 황희의 대답은 이러하다. “이는 살의 온기가 없이는 알을 까지 못하고, 옷이 없고는 붙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는 옷과 살의 사이, 떨어진 것도 아니요 딱 붙은 것도 아닌 그 중간에서 생겨나는 것이야. 네 몸에 이가 있는데, 네가 옷을 벗어 걸면 이도 따라서 옷 속에 있게 되지. 그렇다고 이는 옷에서 생겨난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또 반대로 옷을 활활 벗어 던져도 네 머리카락과 네 몸은 이 때문에 근질근질 할 터인데, 그렇다고 이가 살에서 생겨난다고 할 수야 있겠니? 그러니 너희들의 말은 둘 다 맞고 또 둘 다 틀린 것이야. 내 말을 알겠느냐?”

요컨대 옷과 살의 사이, 중간이 바로 문제의 지점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기를 요구한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가치중립적 판단은 으레 회색분자로 내몰리고 만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일에는 단정적 가치 판단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각자의 가치를 지닌 말똥과 여의주

1. 바른 견식은 어디서 나오나?

2. 이가 사는 곳

3. 짝짝이 신발

4. 자네의 작품집은 여의주인가 말똥인가

5. 중간에 처하겠다

5-1. 총평

6. 글의 생명은 진정성의 여부에 달렸다

7. 이 작품집에 나는 모르고 그대들만 아는 코골이는 알려주시라

7-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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