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일전 석사논문을 지도했던 제자에게서 E-mail을 받았다. 고문론을 주제로 쓴 제 논문을 누군가에게 주었다가, 연암을 고문가라고 한 논문 중의 언급 때문에 논란이 일었는데, 연암이 왜 고문가이냐? 그는 패관소품체를 썼다 해서 문체반정의 와중에서 정조에 의해 순정고문으로 된 반성문을 지어 제출하라는 견책을 입었다. 그렇다면 그는 반고문가임이 분명한데 무슨 근거로 고문가라고 했는가? 이것은 한양대학교에서만 통용되는 주장이 아닌가? 뭐 이런 말이 오갔던 모양이다. 요컨대 그런 상대의 계속된 힐난에 속수무책으로 신통한 대답을 못하고 물러선 녀석이 멀리 대만까지 글을 보내 내게 구조요청을 해온 것이었다.
연암은 고문가인가, 아닌가? 김택영이 『여한십가문초』에서 연암을 당당히 우리나라 10대 고문가의 한 사람으로 꼽았으니, 고문가일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구차한 대답이 될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여간 미묘한 문제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암은 분명히 고문가이다. 그렇지만 그는 고문가가 아니다. 바로 고문가이면서 고문가가 아닌, 역설적으로 말해 고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바로 고문가일 수밖에 없는 모순이 연암을 둘러싼 정체성 논란의 핵심이 된다. 이번에 읽으려는 「초정집서」는 그의 고문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 글을 꼼꼼히 읽는 것으로 앞서의 구조 요청에 대신하려고 한다. 또한 이 글은 옛것과 지금 것 사이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의 첫 대목에서 연암이 들고 나오는 문제는 문장을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문장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마땅히 옛 것을 본받아야지”라고 대답한다. 질문이 다시 ‘옛날에도 종류가 많은데 어떤 옛날을 본받습니까?’로 튀게 되면 문제가 다소 복잡해지지만, 사람들은 이런 의문은 품지 않고, 그저 충실히 옛 사람의 말투를 흉내내고, 어조를 본받는 것으로 옛 사람의 경지에 방불할 수 있다고 믿어 버린다. 그래서 당송 이후의 문장은 읽지도 않고, 아예 글로 치지도 않는다. 그저 사서삼경과 제자백가의 말투를 본뜨고, 지금 쓰지도 않는 표현들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박학과 호고를 자랑한다. 그래서 옛 사람의 글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스스로 옛 사람이라도 된 양 착각한다. 당송 이후의 문장을 글로 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그 글도 뒷세상에서는 글로 치지도 않을 줄은 미처 생각지 않는다.
왕망이 황제를 폐하고 제가 왕위에 올라 신新이란 왕조를 세웠을 때, 그는 주나라 때의 예악문물을 오늘에 다시 복원시켜, 그것으로 그때의 태평성대를 누리리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주나라 때의 벼슬 이름과 행정제도를 복원시켰다. 그러나 주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린 것은 제도 때문이 아니었다. 주공周公과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정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지자 주나라는 전국시대의 수렁 속으로 빠져 들고 만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복원이 아니다. 그것은 겉껍데기일 뿐이다. 껍데기를 본뜬다고 해서 알맹이가 같아지는 법은 없다. 양화가 공자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해서, 공자는 광匡 땅을 지나다가 그곳 사람들에게 양화로 오인되어 억류된 적이 있었다. 양화의 외모가 공자와 꼭 같다고 해서 양화를 만세의 스승으로 섬길 수 있는가? 실제로 공자가 죽은 뒤에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와 꼭 닮은 다른 제자를 스승으로 섬기려 했던 우스운 일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이지 겉모습이 아니다.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아라. 옛글이 훌륭하다면 그것은 거기에 담긴 정신이 훌륭해서이지, 그 표현 때문이 아니다. 만일 옛글을 배운다면서 그 표현에 얽매인다면 그는 공자를 사모한 나머지 모습 닮은 양화마저 스승으로 섬기겠다는 자와 같다. 그것은 또 주나라의 예악문물을 복원했어도 백성의 원성을 사서 얼마 못가 망해버린 왕망의 왕국과 같다. 우선 한나라 때는 주나라 때와 나라의 규모가 달라졌고, 문화의 수준이 달라졌다. 그러니 주나라 때의 제도가 제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것을 오늘에 복원시키겠다는 것은 다 큰 발로 어린아이의 신발을 신겠다고 우기는 격이니 맞을 까닭이 없다.
▲ 공자는 양호와 비슷하게 생겼단 이유로 오해를 받아 광땅에서 포위 당했다.
인용
2. 새 것을 만든다는 건 기이한 걸 만드는 게 아니다
3.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하라
8. 연암은 고문가일까?
8-1. 총평
2. 새 것을 만든다는 건 기이한 걸 만드는 게 아니다
그래서 연암은 첫 단락의 결론을 ‘법고는 해서는 안 된다’로 못 박는다. 옛 것을 본받지 말아라.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옛것을 따르면 안 된다고 했으니, 새것을 추구하면 되겠구나. 그러나 연암은 여기에 대해서도 고개를 내젓는다. 옛것을 따르지 않을진대 갈 길은 지금 여기의 새것 밖에는 없으리라. 그렇지만 이 오래된 하늘과 땅 아래에 전에 없던 새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새것을 추구하라고 하면 문학하는 자들은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하고 황당하고 난해한 것들을 우루루 들고 나와서 이것은 본적이 없지? 이것은 새것이지? 그러니 훌륭하지? 하며, 아닌 대낮에 저도 모를 소리들을 해댄다. 이것이 인기가 있으면 이리로 몰려가고, 저것이 조금 새롭다 싶으면 저리로 몰려간다. 그들의 지상목표는 ‘새로울 수만 있다면’이다. 새로울 수만 있다면 어떤 사회적 금기와도 과감히 싸울 수 있는 각오가 서 있고, 새로울 수만 있다면 어떤 문학적 관습과도 결별할 결심이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예전 진나라의 상앙商鞅이 석자 나무로 백성들을 현혹시켜 가혹한 변법變法을 기정사실화 한 것과 같다. 그 법이 옳을진대 정정당당하게 공포함이 마땅하지 편법은 안 된다. 전에 없던 새로운 방법으로 변법의 시행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은 결국 상앙 자신의 죽음을 불렀을 뿐이다. 이연년이 제아무리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도 그 목소리로 종묘제악의 의례를 대신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새롭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새로워야만 좋은 것은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새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옛것을 묵수하는 것보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상앙은 진나라를 법치국가로 만들기 위해 나무를 옮기는 자에게 상을 준다는 법을 만들고 실행하게 했다.
- 삼장지목三丈之木은 상앙商鞅이 진나라에서 변법變法을 시행하기에 앞서, 석자의 나무를 성 남문에 세우고 북문에 옮겨 세우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하여 옮기는 자가 있자 50금의 상금을 내리고, 이에 변법을 포고하여 백성들을 따르게 한 일을 말한다. 관석關石은 주나라 때의 도량형이니 정해진 기준에 따라 세금을 거둠을 말한다. 석자의 나무를 세우는 기이한 방법으로 백성들의 반발을 제압하고 변법을 시행하는데 성공하기는 했으나, 관석의 기준에 따라 정상적인 방법으로 백성을 이끎만은 못하다는 뜻이다. 상앙은 결국 그 자신이 만든 변법에 걸려 죽었다. [본문으로]
- 이연년은 한나라 때 광대로 노래를 잘 불러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그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서 종묘제악을 거행하는 자리에서 그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는 물음이다. 새롭고 신기한 것도 좋지만 모든 것은 제각금 어울리는 곳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본문으로]
3.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하라
아아! 옛것을 본받는다는 자는 자취에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 되고, 새것을 창조한다는 자는 법도에 맞지 않음이 근심이 된다.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을 수만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글과 같게 될 것이다. 噫! 法古者病泥跡, 創新者患不經, 苟能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 今之文猶古之文也. |
새것을 추구해서도 안 되고, 옛것을 따라가서도 안 된다면 어찌해야 할까? 이도 저도 안 된다면 아예 그만 두는 것이 어떨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다소 심각해진 이 질문 앞에 연암은 비로소 처방을 슬며시 내놓는다. 그것은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이란 열 글자이다. 옛것을 본받으라고 하면 겉껍데기만을 흉내 내니 문제가 되고, 새것을 만들라고 하면 듣도 보도 못한 가당치도 않은 황당한 말만 하고 있으니 문제가 된다. 그러니 옛것을 본받더라도 오늘에 맞게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더라도 법도에서 어긋나지 않게 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어정쩡한 중간항을 도출하여 적당히 타협하자는 비빔밥 문학론이 아니다. 실로 연암 문학론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놓인다.
그 핵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변變’ 한 글자에 걸려 있다. 옛것이 좋다. 좋긴 하지만 그대로는 안 된다. 변화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주역』에서 이미 한 이야기이다. “역易은 궁하면 변한다. 변하면 통하니, 통해야만 오래갈 수 있다易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고 했다. 옛것은 오래되면 낡은 것이 된다. 그 낡은 옛 것을 새롭게 만들려면 변해야만 한다. 변하면 그 옛것은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과 만날 수가 있다. 옛것을 본받아라. 그러나 그대로 묵수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언어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은 오늘에도 통할 수 있는 가치가 될 수 있다. 변화할 수 없는 옛것은 오늘과 소통될 수 없다. 공자가 성인인 까닭은 그 정신 때문이지 양화와 꼭 닮은 외모 때문이 아니다. 새것이 좋다. 그렇지만 옛 거울에 비추어 검증될 수 없는 새것은 허탄한 것일 뿐이다. 잠깐 그 새로움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키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옛것을 본받되 변화할 줄 알아라’와 ‘새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도록 하라’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이다. 그렇게 하면 어찌 되는가? 연암은 그렇게 할 때 ‘지금 글’이 곧 ‘옛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옛글이란 무엇인가? 옛날 사람이 자기 당시의 생각을 당대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 흐르고 보니 옛글로 되었다. 지금 글이란 무엇인가? 지금 사람이 지금 생각을 지금 말로 쓴 것이다. 이것도 먼 훗날에는 옛글로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고문, 즉 ‘옛글’이란 옛 사람의 흉내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 터이다. 진정한 고문은 바로 ‘지금 글’을 추구할 때 획득된다. 이럴 때만이 ‘지금’ 것이 ‘옛’ 것으로 될 수 있다.
4. 옛 것을 본받되 변할 줄 아는 예
이어지는 공명선과 회음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지금과 옛날이 만나게 되는가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공명선은 증자의 문하에서 3년간 있었다. 스승은 3년 동안 제자가 책 읽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이를 힐문하자, 제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선생님, 제가 어찌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문하에 있겠습니까? 저는 지난 3년간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배우려고 애썼습니다. 가정에서의 몸가짐과 손님 접대의 방법과 벼슬길에서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선생님처럼 할 수가 없습니다. 배우지 않다니요, 선생님!” 그랬다. 다른 제자들이 『논어』를 외우고 제자백가를 밑줄 쳐 가며 익힐 때에 그는 스승이라는 ‘살아있는’ 텍스트를 읽었던 것이다. 문자의 지식이야 굳이 증자에게서가 아니래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사변의 지식을 거부하고 스승이라는 살아 숨 쉬는 교과서를 익히고자 했던 공명선의 독서는 과연 ‘법고이지변’에 해당한다 할만하다.
- 『소학』계고稽古 제4 <명륜明倫>에 나온다. 증자의 다른 제자들이 단지 문자로 된 서책에만 현혹되어 있을 때, 공명선은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여 살아있는 가르침을 배우고자 했다. 말하자면 그는 정작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정말 책을 잘 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5.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한 예
한신이 오합지졸들을 이끌고서 강한 조나라를 치러 갔을 때, 조나라에서는 코웃음을 쳤다. 새벽녘에 조나라 성을 마주보는 강가에 도착했을 때, 부하들은 당연히 그가 병법에 나온 대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진을 치고 상대를 기다릴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그는 난데없이 그 새벽에 미싯가루를 조금씩 나눠 주어 요기하게 하고는 강을 건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오늘 점심은 조나라 성에 들어가서 먹자고 했다. 부하들 뿐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기가 막혔다. ‘배수진’이라니 말이 되는가? 어떤 병법서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말 거짓말같이 그들은 그날 점심을 조나라 성에 들어가서 먹을 수 있었다. 이기고 나서도 자기들이 어떻게 이겼는지 몰라 의아해하는 부하들 앞에 한신은 이렇게 말한다. “배수진이 병법에 없는 것 같지만 다 있네. 자네들이 잘 살피지 못해서 그럴 뿐이지. 병법에 보면 이런 말이 있지. ‘죽을 땅에 놓인 뒤에 살고, 망할 땅에 둔 뒤에 남는다’는 말 말일세. 죽을 땅에 군사를 두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이니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되지. 지금 우리 군대는 제식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오합지졸들이니, 이들을 살 땅에 두게 되면 금세 꽁무니를 빼고 말 것이야. 배수진이란 말하자면 그들로 하여금 죽을 힘을 내서 싸우게 만들 ‘죽을 땅’이란 말일세. 나의 전법은 바로 이 병법을 쓴 것이란 말이지.” 이것은 바로 ‘창신이능전’의 좋은 예가 된다. 전혀 새로운 것 같지만 근거가 있다. 근거가 없고 보면 새로움은 빛을 잃고 만다.
- 『사기』「회음후열전」에 나온다. 한신이 조나라를 칠 적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알아, 병법과는 반대로 물을 등져 진을 쳐서 도리어 조나라를 물리친 고사. 이기고 난 후 여러 장수들이 한신에게 묻자, 한신은 병법에는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고 진 치라고 되어 있지만, 지금의 군대는 훈련을 받지 않은 오합지졸들이어서 살 땅에 두면 모두 도망갈 것이므로 죽을 땅에 놓아 그들로 하여금 죽기살기로 싸우게 했던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고 보면 한신은 글을 한 줄도 짓지 않았으되, 정말 글을 잘 지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 『시경』「소아小雅」「항백巷伯」의 모전毛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노魯 땅에 혼자 사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웃에 과부가 혼자 살다 밤중에 비에 집이 무너지자 남자를 찾아와 하루밤 재워 줄 것을 청하였다. 남자가 문을 굳게 닫고 그녀를 들이지 않으매 그녀가 왜 유하혜柳下惠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라자, 남자가 말하기를, “유하혜라면 진실로 괜찮겠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는 장차 나의 할 수 없음을 가지고 유하혜의 할 수 있음을 배우고자 한다”고 대답하였다. 유하혜는 학문이 높은 군자이기에 여자를 받아들여도 사람들이 그것을 난행亂行이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므로 유하혜와는 반대로 함으로써 오히려 그 바른 도를 지켜 나가겠다는 뜻이다. 방법은 반대였지만 결과는 한 가지임을 말한 것이다. [본문으로]
- 전국시대 제나라의 손빈孫臏이 위나라의 방연龐涓과 싸울 때 밥짓는 부뚜막의 수를 첫날 10만개로 하고, 다음날은 5만개, 그 다음날은 2만개로 줄였다. 이에 제나라 군사가 위나라 국경에 들어선지 사흘만에 대부분 달아났다고 생각한 방연은 보병을 버리고 기병만으로 추격하다가 손빈의 복병에 걸려 죽었다. 후한 때 우후虞詡가 오랑캐와 싸울 때 적군의 수가 많아 대적할 수 없게 되자 후퇴하면서, 손빈의 전략과는 반대로 부뚜막의 수효를 날마다 늘여 후방에서 구원병이 계속 도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오랑캐의 추격을 물리쳤다. 부뚜막의 숫자를 조작해서 적을 현혹시킨 것은 같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썼던 것이다. [본문으로]
6. ‘法古而知變’과 ‘刱新而能典’의 또 다른 예
그런 까닭에 배우지 않음을 잘 배우는 것으로 여긴 것은 노남자魯男子의 홀로 지냄이고 1, 부뚜막 숫자를 늘이는 것을 부뚜막 숫자를 줄이는 것에서 본떠온 것은 우승경虞升卿의 변화를 앎이다 2. 故不學以爲善學, 魯男子之獨居也; 增竈述於减竈, 虞升卿之知變也. |
이렇게 ‘법고이지변’과 ‘창신이능전’의 예를 하나씩 든 연암은 다시 노남자와 우승경의 이야기로 논지를 더 다진다. 옆집 노총각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이웃의 과부가 밤중 비에 제 집 담이 무너지자, 노총각의 집 문을 두드리며 하루 밤 재워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이 고지식한 청년은 예禮에 남녀는 60 이전에는 한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했으니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과부는 현인 유하혜는 예전에 곤경에 처한 여인을 재워 주었어도 사람들이 난행亂行이라고 일컫지 않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노총각은 “유하혜라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겠지요. 그는 현인이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유하혜처럼 할 수가 없어요. 유하혜가 여인을 재워주고 제 이름을 보전한 것이나, 내가 당신을 재워주지 않고 내 절개를 지키는 것이나 결과는 같습니다. 그러니 나는 유하혜를 배우지 않는 것으로 유하혜를 따르고자 합니다.” 이것은 다시 ‘창신이능전’의 좋은 예가 된다. 유하혜는 이렇게 했는데 그는 저렇게 했으니 새롭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한가지이다. 옛것을 본뜨지 말아라. 새것을 추구해라. 그렇지만 그 추구는 마땅히 변치 않을 정신에 토대를 둔 것이라야 하리라.
옛 동문 방연龐涓의 술책에 빠져 뒷꿈치를 베이는 월형刖刑을 당한 손빈이 절망 끝에 제나라로 탈출한 후, 방연은 군대를 일으켜 한나라를 공격했다. 한나라는 제나라에게 구원을 청했고, 제나라는 회맹의 약속을 지켜 손빈을 군사軍師로 삼아 군대를 위나라 본토로 진격시켰다. 한나라로 쳐들어갔던 방연이 이 소식을 듣고 군대를 돌려 위나라로 되돌아오니, 이미 위나라 지경으로 들어섰던 손빈의 제나라 군대는 결과적으로 앞뒤로 위나라 군대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손빈은 평소 제나라 사람들을 겁쟁이라고 얕잡아보는 습관이 있던 위나라 사람들의 기질을 거꾸로 이용키로 했다. 주둔지에 밥 짓는 부뚜막 자국을 첫날 10만개로, 이튿날은 5만개로, 그 이튿날은 다시 2만개로 줄여 나갔다. 추격하던 방연은 사흘 만에 제나라 군대의 5분의 4가 겁먹고 달아난 것으로 여겨 보병을 버리고 기병만으로 추격했다. 그러다 손빈의 복병에 걸려 막다른 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런데 후한 때 우후虞詡는 오랑캐를 치러 갔다가 그들의 공격을 받아 부득이 후퇴할 수밖에 없는 형국에 놓이게 되었다. 후방에서 원군이 올 리도 만무한 상황이었으나, 그냥 무작정 후퇴하다가는 오랑캐의 전면적인 공격을 받아 전군이 궤멸될 상황이었다. 이때 우후는 손빈의 부뚜막 작전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손빈과는 반대로 부뚜막의 숫자를 매일 늘여 나갔다. 추격해오던 오랑캐는 부뚜막의 숫자가 날마다 늘어나는데도 그 부대의 이동이 신속한 것을 보고 후방에서 속속 원군이 도착하는 것으로 알고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이것은 ‘법고이지변’의 예이다.
우후가 본받은 것은 손빈의 전법이었지만, 그는 그대로 하지 않고 반대로 했다. 놓인 상황이 달랐던 것이다. 손빈은 적진을 향해 쳐들어가며 뒤쪽에서 추격해오는 방연의 군대를 방심하게 만들려고 부뚜막의 숫자를 줄인 것인데, 우후의 경우는 적의 추격을 피해 자신의 진영 쪽으로 후퇴하면서 추격해오는 군대를 겁먹게 하려는 상황이었으므로 부뚜막의 숫자를 늘였다. 그가 만일 손빈처럼 부뚜막의 숫자를 줄여 나갔더라면 적의 추격은 더 급박해졌고, 중도에 포기하는 일도 없었으리라. 손빈이 부뚜막을 줄여서 이겼다면, 우후는 부뚜막을 늘여서 이겼다. 방법은 반대로 했는데 이긴 것은 같았다. 옛것을 그대로 묵수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본받을 것은 원리일 뿐이다. 본받을 것은 정신일 뿐이다. 본받을 것은 형식이 아니다. 본받을 것은 껍데기가 아니다. 우후가 손빈에게서 배운 것은 ‘부뚜막의 숫자를 조작하여 적을 현혹시킨다’는 원리였다. 결코 ‘나도 부뚜막을 줄여야지’가 아니었다.
나는 원리나 정신을 본받지 않고 형식과 껍데기만을 본받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나라일을 그르친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바로 임진왜란 때의 신립이다. 앞서 한신은 배수진을 쳐서 강한 조나라를 이겼는데, 신립은 배수진을 쳐서 강한 일본에게 조선의 관군을 전멸시키고 말았다. 배수진은 아무 때 아무나 치기만 하면 이기는 것이 아니다. 문경 새재 그 천험의 요새를 마다하고 군대를 뒤로 물려 탄금대도 아닌 그 건너편 너른 벌판에 배수진을 치고 기다리니, 유효사거리 30보인 조선의 화살과, 유효사거리 100보인 일본의 조총은 애시당초 싸움의 거리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다. 왜 같은 배수진을 쳤는데 한신은 이기고, 신립은 졌는가? 신립은 지변知變을 몰랐고, 한신은 그것을 알았다. 한신은 뻗을 자리를 보고 뻗었고, 신립은 남이 뻗는 대로 뻗었다. 호리의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빚는다. 말하자면 신립은 적의 추격을 받아 후퇴하면서도 손빈이 그랬으니까 하며 부뚜막을 줄이는 전법을 선택한 장수인 셈이다. 법고만이 능사인줄 알았지, 지변이 왜 중요한지를 정작 그는 몰랐다. 그래서 그는 강물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고, 군사는 전멸했으며, 임금은 우중에 도성을 떠나 백성들의 돌팔매를 맞으며 피난길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신립의 패전의 역사가 숨쉬는 충주 탄금대.
인용
2. 새 것을 만든다는 건 기이한 걸 만드는 게 아니다
3.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하라
8. 연암은 고문가일까?
8-1. 총평
- 『시경』「소아小雅」「항백巷伯」의 모전毛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노魯 땅에 혼자 사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웃에 과부가 혼자 살다 밤중에 비에 집이 무너지자 남자를 찾아와 하루밤 재워 줄 것을 청하였다. 남자가 문을 굳게 닫고 그녀를 들이지 않으매 그녀가 왜 유하혜柳下惠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라자, 남자가 말하기를, “유하혜라면 진실로 괜찮겠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는 장차 나의 할 수 없음을 가지고 유하혜의 할 수 있음을 배우고자 한다”고 대답하였다. 유하혜는 학문이 높은 군자이기에 여자를 받아들여도 사람들이 그것을 난행亂行이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므로 유하혜와는 반대로 함으로써 오히려 그 바른 도를 지켜 나가겠다는 뜻이다. 방법은 반대였지만 결과는 한 가지임을 말한 것이다. [본문으로]
- 전국시대 제나라의 손빈孫臏이 위나라의 방연龐涓과 싸울 때 밥짓는 부뚜막의 수를 첫날 10만개로 하고, 다음날은 5만개, 그 다음날은 2만개로 줄였다. 이에 제나라 군사가 위나라 국경에 들어선지 사흘만에 대부분 달아났다고 생각한 방연은 보병을 버리고 기병만으로 추격하다가 손빈의 복병에 걸려 죽었다. 후한 때 우후虞詡가 오랑캐와 싸울 때 적군의 수가 많아 대적할 수 없게 되자 후퇴하면서, 손빈의 전략과는 반대로 부뚜막의 수효를 날마다 늘여 후방에서 구원병이 계속 도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오랑캐의 추격을 물리쳤다. 부뚜막의 숫자를 조작해서 적을 현혹시킨 것은 같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썼던 것이다. [본문으로]
7. 해답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다시 연암의 도도한 변설은 이어진다. 하늘과 땅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끊임없이 새 생명을 낸다. 해와 달은 오래 되었어도 그 빛이 날로 새롭다. 인간의 삶도 돌고 도는 것이지만 똑같이 반복되는 법이 없다.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이 제 아무리 방대하다 해도 담긴 뜻은 제각금이다. 일정한 것은 없다. 고정불변의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아직도 미지로 덮혀 있다. 기지旣知의 바탕 위에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내는 것이야말로 문학하는 사람의 사명이 아닌가? 어제의 태양이 오늘의 태양일 수 없듯이, 어제의 옛글이 오늘의 지금 글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썩은 흙이 영지버섯을 쪄내고,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로 화한다. 낡아 해묵은 것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옛것을 무조건 버릴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예禮는 후대에 오게 되면 그 해석과 적용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악樂도 시대가 바뀌면 그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이런 저런 논란이 생겨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새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역』에서도 이미 말하고 있지 않은가?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고. 옛사람이 남긴 글은 옛 사람의 쭉정이일 뿐이다. 그것이 그대로 금과옥조가 될 수는 없다. 그것에 현혹되지 말아라.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같은 사물도 어진이가 이를 보면 인仁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가 이를 보면 지智라고 한다. 옛것에 대한 해석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왜 한 가지로만 보아야 한다고 우겨대는가? 공자가 백세 뒤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혹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맹자가 옛 성인이 다시 일어나신다 해도 내 말에 찬성하리다고 한 것과 그 뜻이 같다. 두 분 다 자신의 말에 대한 투철한 확신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표현은 달라도 담긴 뜻은 같다.
어지러운 시대를 만나 안연은 단사표음簞食瓢飮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누리다 이룬 것 없이 세상을 떳고, 태평한 시절을 만나 우직禹稷은 천하를 위해 일하느라 제집을 세 번씩 지나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들이 처지를 바꿔 태어났더라면 마땅히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것은 맹자의 말이다. 지금 내가 쓰는 글과, 그때 연암이 썼던 글은 비록 다르지만, 연암이 지금 태어났더라면 마땅히 이렇게 글을 썼으리라. 이것은 나의 말이다. 백이는 한 임금을 섬기려고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었지만, 유하혜는 여러 임금을 섬기면서도 제 어짊을 다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두 사람의 행적은 정반대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켜 지극함을 이룬 것은 같다. 그렇지만 군자는 백이의 융통성 없는 지나친 결벽과 유하혜의 지조 없어 보이는 굴신을 기뻐하지 않는다. 백이의 길만을 고집하면 法古에서 병통이 생기고, 유하혜의 길을 기꺼워하면 창신에서 문제가 생긴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 『주역』「계사繫辭」상에 나온다. 언어는 유한한 도구이므로, 원래의 의도를 십분 전달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하의 각 구절은 모두 경전의 구절들을 패러디하여 작가의 뜻으로 전달하고 있다. 법고이지변의 예를 다른 방법으로 보인 것이다. [본문으로]
- 역시 『주역』「계사상」에 나온다. 같은 현상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말했다. [본문으로]
- 앞의 말은 『중용』에서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고, 뒤의 것은 『맹자』 「등문공」하에서 맹자가 한 말이다. 두 말의 뜻은 대개 같다. 요컨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말에 대한 굳건한 확신을 이렇게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의도는 같은데 표현은 다르다. [본문으로]
- 『맹자』「이루離婁」하에서 태평한 세상에서 나라일을 우선하느라 세 번 제 집 문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던 우직과,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누항陋巷에 살며 단사표음簞食瓢飮으로도 불개기락不改其樂한 안회顔回를 공자께서 어질게 여기신 일을 적은 뒤, ‘禹稷顔回同道’라 하였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처지를 바꾸었더라면 서로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루」하 앞에서도 순舜과 문왕文王이 시대가 다르고 행적이 상이하나 그 도는 약합부절若合符節하여 ‘其揆一也’라 하였다. 또한 겉으로 드러난 것은 같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정신이 한 가지임을 천명한 것이다. [본문으로]
- 또한 『맹자』 「공손추公孫丑」상의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제 몸을 결백히 지니기 위해 목숨까지 버렸던 백이와 여러번 다른 임금을 섬기면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그 도리를 다 했던 유하혜를 견주면서, “백이는 너무 좁고 유하혜는 불공不恭하니 좁은 것과 불공한 것을 군자는 말미암지 않는다”고 하였다. 두 사람의 행실이 모두 지극하다 하겠으나 너무 지나쳐서는 안됨을 경계한 것이니, 여기서는 법고와 창신 두 방면 가운데 어느 하나에 너무 과도하게 흘러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다. [본문으로]
8. 연암은 고문가일까?
박씨의 아들 제운齊雲은 나이가 스물 셋인데 문장에 능하여 호를 초정楚亭이라 하며 나를 좇아 배운 것이 여러 해가 되었다. 그 글을 지음은 선진양한先秦兩漢의 글을 사모하였으나 그 자취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부한 말을 제거하기에 힘쓰다 보니 간혹 근거 없는데서 잃고, 논의를 세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간혹 법도에 어긋남에 가까웠다. 이는 명나라의 여러 작가들이 법고와 창신에 있어 서로서로를 헐뜯으면서도 함께 바름을 얻지 못하고 나란히 말세의 자질구레함으로 떨어져서, 도를 지키는데 보탬이 없이 한갖 풍속을 병들게 하고 교화를 손상시키는 데로 돌아간 것이니, 나는 이것을 염려한다. 새것을 만들어 교묘하기 보다는 차라리 옛것을 본받아 보잘 것 없는 것이 더 나으리라. 朴氏子齊雲, 年二十三, 能文章, 號曰楚亭, 從余學有年矣. 其爲文, 慕先秦兩漢之作, 而不泥於跡. 然陳言之務祛, 則或失于無稽; 立論之過高, 則或近乎不經, 此有明諸家於法古創新, 互相訾謷, 而俱不得其正, 同之幷墮于季世之瑣屑, 無裨乎翼道, 而徒歸于病俗而傷化也. 吾是之懼焉. 與其創新而巧也, 無寧法古而陋也. 내 이제 그의 『초정집』을 읽고, 공명선과 노남자의 독실한 배움을 나란히 논하고서 회음후 한신과 우후의 기이한 계책을 냄이 예전의 법을 배워 잘 변화하지 않음이 없음을 보였다. 밤에 초정과 더불어 이와 같이 말하고, 드디어 그 책머리에 써서 권면하노라. 吾今讀其楚亭集, 而幷論公明宣魯男子之篤學, 以見夫淮陰虞詡之出奇, 無不學古之法而善變者也. 夜與楚亭, 言如此, 遂書其卷首而勉之. |
마지막 단락에서는 『초정집』을 지은 박제가의 이야기로 마무리 하였다. “여보게, 초정! 내가 자네의 글을 보니 선진양한先秦兩漢의 옛글을 배웠으되 그대로 묵수하지는 않았군 그래. 그렇지만 진부한 말을 제거한다면서 간혹 황당한 말을 끌어다 쓰고, 제 주장을 너무 높이려다 보니 법도에서 어긋난 곳이 많아졌네 그려. 글이란 이래서는 안되는 게야. 자네는 才가 승한 사람이니, 내 보기에 새것을 교묘히 만드는 창신創新보다는 옛것을 충실히 본받는 法古에 힘쓰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보네. 어떤가, 내 말이.”
다시 논의를 처음으로 돌려야겠다. 연암은 고문가인가? 연암은 고문가이다. 그렇다면 정조는 왜 문체반정의 과정에서 문체 변화의 책임을 물어 그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을까? 연암이 생각했던 고문이 ‘죽은 고문’이 아니라, 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산 고문’이었기 때문이다. 정조가 두려워 한 것은 그 ‘산 고문’이 지닌 잠재적 폭발력이었다. 당나라 때 한유가 옛글 배울 것을 주장했을 때, 제자 중의 하나가 이렇게 물은 일이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늘 옛 글을 본받으라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 옛글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옛글을 배워야 합니까?”
한유의 대답은 이렇다. “바로 그 하나도 같지 않은 그것을 배워야지. 내가 배우라는 것은 옛 사람의 말투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야. 바로 옛 사람의 정신을 배우라는 것일세.”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사기의師其意 불사기사不師其辭’의 공안公案이다. 뜻을 본받을 뿐 그 말과 형식은 본받지 않는다. 그 말과 형식은 오히려 제거하기에 힘써야할 대상일 뿐이다. 그의 ‘무거진언務去陳言’, 즉 진부한 말을 제거하기에 힘쓴다는 말과 ‘사필기출詞必己出’, 곧 표현은 자기만의 것이어야 한다는 화두가 그래서 나왔다. 한유의 ‘사기의 불사기사’와 연암의 ‘법고이지변, 창신이능전’은 그 표현은 다르지만 담은 뜻이 같다.
당나라 때 한유가 변려문에 찌든 문학의 폐단을 미워하여 고문운동을 제창했던 일, 그렇지만 정작 그 자신은 선진양한 고문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자기 시대의 문체를 개발하여 후대 당송고문의 선하先河를 열었던 것이나, 연암이 당대 과문科文에 절은 속투俗套를 혐오하여 새로운 고문 운동을 제창하고, 그 결과 한 시대의 진정을 담은 살아 숨 쉬는 글을 써낸 것은 동공이곡同工異曲의 합창이었다. 그럴진대 한유가 옛것을 표방하면서 정작 자기 시대의 글을 쓴 것은 후대 고문가의 찬양을 받아 마땅하고, 연암이 새것과 옛것의 조화를 추구하며 자기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은 패관소품으로 지탄을 받아야 하는가? 한유도 그 당대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버림받은 이름이었을 뿐이다.
연암은 고문가인가 아닌가? 결론적으로 말해 연암은 고문가가 아니었기에 진정한 의미의 고문가일수 있었다. 그는 껍데기만의 고문은 가짜일 뿐이라고 했다. 변할 수 있는 것만이 진정으로 변치 않는 가치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문학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함을, 그렇지만 그 새로움은 언제나 예로움에 바탕 해야 함을 그는 주장하였다. 그는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이치를, 불변의 옛것이란 어디에도 없음을, 새로울 때만이 예로울 수 있으며 새것과 옛것은 결코 별개일 수 없음을 문학적 실천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그는 고문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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