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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만물의 변화무쌍함을 코끼리와 ‘상(象)’자를 보며 알게 되다 상기(象記) 박지원(朴趾源) 두 번의 코끼리를 보았던 추억 將爲怪特譎詭恢奇鉅偉之觀, 先之宣武門內, 觀于象房可也. 余於皇城, 見象十六, 而皆鐵鎖繫足, 未見其行動. 今見兩象於熱河行宮西, 一身蠕動, 行如風雨. 余嘗曉行東海上, 見波上馬立者無數. 皆穹然如屋, 弗知是魚是獸, 欲俟日出, 暢見之, 日方浴海, 而波上馬立者, 已匿海中矣. 今見象於十步之外, 而猶作東海想. 코끼리의 생김새 其爲物也, 牛身驢尾, 駝膝虎蹄. 淺毛灰色, 仁形悲聲, 耳若垂雲, 眼如初月. 兩牙之大二圍, 其長丈餘, 鼻長於牙, 屈伸如蠖, 卷曲如蠐. 其端如蠶尾, 挾物如鑷, 卷而納之口. 코끼리의 코를 보고도 착각하는 사람들 或有認鼻爲喙者, 復覓象鼻所在, 蓋不意其鼻之至斯也. 或有謂象五脚者, 或謂象目如..
열하일기(熱河日記) 목차 열하일기서(熱河日記序) 1. 도강록(渡江錄)6월 24일에서 7월 9일까지. 압록강을 지나 요양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 渡江錄序六月二十四日辛未二十五日壬申二十六日癸酉二十七日甲戌二十八日乙亥二十九日丙子七月初一日丁丑初二日戊寅初三日己卯初四日庚辰初五日辛巳初六日壬午初七日癸未初八日甲申初九日乙酉舊遼東記遼東白塔記關帝廟記廣祐寺記 2. 성경잡지(盛京雜識)7월 10일에서 14일까지, 십리하(十里河)로부터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 동안의 기록 秋七月初十日丙戌十一日丁亥粟齋筆談商樓筆談十二日戊子古董錄 十三日己丑十四日庚寅盛京伽藍記山川記略 3. 일신수필(馹汛隨筆)7월 15일에서 23일까지. 신광녕(新廣寧)에서 산해관(山海關)에 이르는 9일간의 기록 馹汛隨筆序秋七月十五日辛卯北鎭廟記車制戱臺市肆店舍橋梁十六日壬辰十..
창작 계기: 호질을 짓게 된 계기 박지원(朴趾源) 壁上懸一篇奇文, 鷺紙細書. 爲格子塗之橫, 竟一壁. 筆又精工, 就壁一讀, 可謂‘絶世奇文’. 余因還座, 問“壁上所揭誰人所作?” 主人曰: “不知誰人所作也” 鄭君問“此似是近世文, 無乃主人先生所題耶?” 沈由朋曰: “主人不解文字, 旣無作者姓名, ‘不知有漢, 何論魏ㆍ晉?’” 余曰: “然則何從得此?” 沈曰: “曩於薊州市日收買.” 余曰: “可許謄去否?” 沈首肯曰: “不妨” 約持紙更來. 飯後與鄭君更往, 堂中已點兩燭矣. 余就壁欲解下格子, 沈招侍者, 捧下. 余復問“此先生所作否?” 沈掉頭曰: “有如明燭, 俺長齋奉佛, 懺誡譫妄.” 余囑鄭君, 自中間起筆, 余從頭寫下. 沈問“先生謄此何爲?” 余曰: “歸令國人一讀, 當捧腹軒渠, 嗢噱絶倒, 噴飯如飛蜂, 絶纓如拉朽.” 及還寓, 點燈閱視, ..
6. 중국의 촌구석도 잘 정비된 걸 보고 질투하는 마음이 일다 復至柵外, 望見柵內, 閭閻皆高起五樑, 苫艸覆盖, 而屋脊穹崇, 門戶整齊. 街術平直, 兩沿若引繩. 然墻垣皆甎築, 乘車及載車, 縱橫道中, 擺列器皿, 皆畵瓷, 已見其制度絶無邨野氣. 往者洪友德保, 甞言大規模細心法, 柵門天下之東盡頭, 而猶尙如此. 前道遊覽, 忽然意沮, 直欲自此徑還, 不覺腹背沸烘. 余猛省曰: “此妒心也. 余素性淡泊, 慕羡猜妒, 本絶于中. 今一涉他境, 所見不過萬分之一, 乃復浮妄若是, 何也? 此直所見者小故耳. 若以如來慧眼, 遍觀十方世界, 無非平等, 萬事平等, 自無妒羡.” 顧謂張福曰: “使汝往生中國何如?” 對曰: “中國胡也, 小人不願.” 俄有一盲人肩掛錦囊, 手彈月琴而行. 余大悟曰: “彼豈非平等眼耶.” 해석 復至柵外, 望見柵內, 다시 책문 밖에 ..
6. ①강: 박동섭 강의의 특징 강의가 계속 되면서 어느덧 비는 그쳤다. 하지만 바람은 장난 아니게 불며 성큼 다가온 봄을 시샘하듯 갑작스레 추위가 느껴진다.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퇴근길을 재촉하지만, 에듀니티에 모인 사람들은 배움의 열기를 가득 채우며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 오늘 강의의 제목은 ‘하품 수련의 역설’이지만 강의가 시작된 지 1시간가량이 지났음에도 ‘하품’이란 단어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 어느덧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분다. 그러다 보니 체감온도가 엄청 내려갔다. 강의 제목은 하나의 단서일 뿐이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동섭쌤이 제목을 헛갈렸거나, 다른 할 얘기가 많아서 뒤로 미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작년 제주 강연 때 우치다쌤은 자아를 낡은..
3. 의주로에 경성감옥이 만들어진 이유 그렇다면 일본은 형무소를 왜 한양으로 들어서는 의주로의 초입길에 만든 것일까? ▲ 서대문 형무소가 만들어질 당시의 모습. 서대문 형무소는 왜 의주로에 만들어졌나? 일본은 청나라를 향해 시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나라의 사신이 들어오던 길목에 버젓이 감옥을 만들어 놓고 “청나라 너희들 이젠 조선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마!”라고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고 있으니, 연암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 「황교문답(黃敎問答)」에서 황제가 왜 열하로 피서를 떠났는지 밝힌 대목과 정조의 능행(陵幸) 장면이 떠올랐다. 연암은 삼종형(三從兄)을 따라 황제 고희연의 축하사절단 자격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몇날 며칠을 고생한 끝에 북경에 도착했지만, 황..
2. 경계를 넘어서다 첫 해외여행이다.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는 여행이지만, 그 의미 외에도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군대는 타의에 의해 가며 정해진 대로 행동하면 된다. 내가 기획하고 움직일 여지가 그다지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도보여행은 주체적인 결정이었고 여행 내내 나의 의지가 나를 이끌었다. 삼중고? NO! 삼중락? YES! 그런데 이번 여행은 나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는 여행이되, 나의 의지가 절대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며, 전체 계획에 대해서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야 한다. 첫 여행이라는 핸디캡,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부담감, 학생들을 인솔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이러하기에 삼중고三重苦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조차 생각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전면에 ..
본격적으로 교보문고에서 자리를 옮겨 이야기 한마당이 펼쳐졌다. 대화는 두서없이 진행되었지만, 동섭쌤과 초등학교 교사 3명이 던져준 숙제로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나에게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줬다. ▲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역사와 함께 온다. 그러니 만나고 얘기 나누자. 책! 책! 책! 사람 책을 읽읍시다! 내가 단재학교로 들어오기 이전에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라는 프로그램을 2회에 걸쳐 진행했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본 적이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몇 명을 섭외하여 도서관에 온 사람은 책을 빌리는 대신, 섭외된 사람을 빌린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건 그냥 수다 떠는 거 아냐?’라고 의아해할 법 하지만,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라 그..
문제작 열하일기에 관한 에피소드 박지원(朴趾源) 昨日筵中下敎于賤臣曰: “近日文風之如此, 原其本則莫非朴某之罪也. 『熱河日記』, 予旣熟覽焉, 敢欺隱此? 是漏網之大者. 『熱河記』行于世後, 文軆如此, 自當使結者解之.” 仍 命賤臣, 以此意作書. 執事, “斯速著一部純正之文, 卽卽上送, 以贖『熱河記』之罪, 則雖南行文任, 豈有可惜者乎? 不然則當有重罪.” 以此卽爲貽書事, 下敎矣. 『燕巖集』 卷之二, 「答南直閣公轍書」 해석 昨日筵中下敎于賤臣曰:어제 경연 중에 천신에게 하교하시며 말씀하시었다. “近日文風之如此, 최근 문풍이 어지러워진 것이 이와 같으니, 原其本則莫非朴某之罪也. 그 근원을 캐어 들어가면 박지원의 죄가 아닌 게 없다. 『熱河日記』, 予旣熟覽焉, 敢欺隱此? 『열하일기』를 내가 이미 깊이 읽어보았으니, 어찌 속여서..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 13)~1805(순조 5) 조선 후기의 실학자ㆍ문인.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ㆍ열상외사(洌上外史). 1737년 서울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출생. 장인 이보천(李輔天)의 아우인 이양천(李亮天)에게서 『사기(史記)』를 시작으로 역사서적을 통해 문장 쓰는 법을 습득함. 1752년 16세 전주 이씨 보천(輔天)의 딸과 결혼. 1754년 18세 10대 후반에 우울증에 시달려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18세 무렵에 「광문자전(廣文子傳)」을 지었다. 지음. 1757년 21세 「민옹전(閔翁傳)」 지음. 1759년 23세 모친 함평 이씨 별세. 1760년 24세 조부 박필균(朴弼均) 별세로 생활이 곤궁해짐. 1765년 29세 시 「총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