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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취면의 산수화 병풍 표면에 짓다제김취면산수장자면(題金醉眠山水障子面) 이달(李達) 雲暗山千點 煙沈水一痕운암산천점 연침수일흔漁舟迷去棹 莫是武陵源어주미거도 막시무릉원 遠岸起暮靄 寒江生白波원안기모애 한강생백파泊舟人不見 買酒入漁家박주인불견 매주입어가 鶴上紫煙衣 飄飄古仙子 학상자연의 표표고선자 去入雲冥冥 天風吹不已거입운명명 천풍취불이 古澗水泠泠 山風松子落고간수령령 산풍송자락中有隱世人 援琴坐苔石중유은세인 원금좌태석 『蓀谷詩集』 卷之五 해석雲暗山千點 煙沈水一痕구름은 천점의 산에서 숨었고 안개는 물 한 자취에 잠겼네. 漁舟迷去棹 莫是武陵源어부의 배는 헤매며 노 놓았으니 이곳이 무릉도원 아니련가? 遠岸起暮靄 寒江生白波먼 언덕에 저녁 아지랑이 일어나니 찬 강물에 흰 물결 생기네. 泊舟人不見 買酒入漁家정박한 배에 사람은 보..
호숫가 절의 스님에게 주다증호수승(贈湖寺僧) & 연상인의 시축에 짓다제연상인축(題衍上人軸) 이달(李達) 東湖停棹暫經過 楊柳悠悠水岸斜病客孤舟明月在 老僧深院落花多歸心黯黯連芳草 鄕路迢迢隔遠波獨坐計程雲海外 不堪西日聽啼鴉 『蓀谷詩集』 卷之四 해석東湖停棹暫經過동호정도잠경과동호에 노를 멈추고 잠시 지나가니楊柳悠悠水岸斜양류유유수안사수양버들은 물 언덕 비탈에서 흔들흔들. 病客孤舟明月在병객고주명월재병든 객의 외로운 배에 밝은 달빛이 있고老僧深院落花多로승심원락화다늙은 스님의 깊은 사원에 낙화가 많구나. 歸心黯黯連芳草귀심암암연방초돌아가려는 마음에 아득히 향긋한 풀이 이어지나,鄕路迢迢隔遠波향로초초격원파고향 길 까마득해 먼 물결 너머로구나.獨坐計程雲海外독좌계정운해외홀로 앉아 운해 바깥의 길을 헤아리노니,不堪西日聽啼鴉불감서일청제아..
운자를 부르다호운(呼韻) 이달(李達) 曲闌晴日坐多時 閉却重門不賦詩牆角小梅風落盡 春心移上杏花枝 『蓀谷詩集』 卷之六 해석曲闌晴日坐多時곡란청일좌다시굽은 난간, 맑게 갠 날에 앉아 있을 때 많지만, 閉却重門不賦詩폐각중문불부시도리어 겹문 닫고서 시를 짓질 않네.牆角小梅風落盡장각소매풍락진담장 모서리 작은 매화 바람에 다 떨어져,春心移上杏花枝춘심이상행화지춘심은 살구꽃 가지로 옮겨 갔네. 『蓀谷詩集』 卷之六 인용작가 이력 및 작품소화시평감상하기
반골기질의 허균과 그를 도와준 사람들 『소화시평』 권하 42번의 주인공은 허균이다. 우리에게 허균은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한문이 권력의 지표가 되고 한글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로 폄하되던 당시에 한문으로 유창한 글을 쓸 수 있던 사람이 한문이 아닌 한글로 글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엔 소설이란 장르는 하나의 문학 장르로 호평을 받지 못하고 ‘그저 신변잡기나 읊어대는 불온한 글’이란 인상까지 있었으니, 『홍길동전』이 조선 전기 문인사회에 어떻게 비춰졌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허균은 양반가의 막내아들로 뛰어난 문학적 소양으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신분제 사회에선 모든 기득권을 향유할 수 있는 계층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사찰에서 하루 재워주시렵니까?”를 전하는 방법 東湖停棹暫經過 동호에 노를 멈추고 잠시 들러 가려고 하니, 楊柳悠悠水岸斜 수양버들은 치렁치렁 강둑에서 늘어졌는데, 病客孤舟明月在 병든 객의 외로운 배에 밝은 달빛이 비추겠고, 老僧深院落花多 늙은 스님의 깊은 뜰 진 꽃잎만 가득하겠지. 歸心黯黯連芳草 돌아가려는 마음에 시름겹게 고운 풀로 이어지나, 鄕路迢迢隔遠波 고향 길은 까마득이 큰 파도에 막혀 있어, 獨坐計程雲海外 홀로 앉아 갈길 따져보니 구름바다 밖이라, 不堪西日聽啼鴉 해질녘 길가마귀 울음소리 차마 못 듣겠네. 『소화시평』 권상 109번에 소개된 두 번째 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교수님은 “시를 안다는 건 그 정황을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허균과 이달의 재미난 첫 만남 이야기 공부를 막 시작할 때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홍길동전』의 작자인 허균은 이달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재밌는 사실은 허균은 정통 양반가의 자제인 반면 이달은 어머니가 관기 출신으로 서얼 신분이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계급이 있는 사회(우리나라는 계급이 타파되었지만 직업적인 계급은 존재한다. 그래서 재벌은 재벌들끼리,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있는 사람들끼리만 관계를 유지한다)가 그러하듯, 그 당시 조선도 마찬가지라 양반과 서얼은 어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허균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배울 만하다고 여기면 계급에 상관없이 스승으로 삼아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소화시평』 권상 109번을 보니 허균이..
109. 허균을 경복케 한 이달의 시재 蓀谷李達少與荷谷相善, 一日往訪焉. 許筠適又來到, 睥睨蓀谷, 略無禮容, 談詩自若. 荷谷曰: “詩人在坐, 卯君曾不聞知耶? 請爲君試之.” 卽呼韻, 達應口而賦一絶, 其落句云: ‘墻角小梅開落盡, 春心移上杏花枝.’ 筠改容驚謝, 遂結爲詩伴. 且如「贈湖寺僧」詩曰: ‘東湖停棹暫經過, 楊柳悠悠水岸斜. 病客孤舟明月在, 老僧深苑落花多. 歸心黯黯連芳草, 鄕路迢迢隔遠波. 獨坐計程雲海外, 不堪西日聽啼鴉.’ 絶似唐人韻響. 해석 蓀谷李達少與荷谷相善, 一日往訪焉. 손곡 이달이 젊었을 적에 하곡 허봉과 서로 좋아하여 하루는 가서 방문했었다. 許筠適又來到, 睥睨蓀谷, 하곡의 동생 허균이 마침 또한 와서 도착했고 손곡을 흘겨보며, 略無禮容, 談詩自若. 거의 예의를 갖춘 태도도 없이 시를 말하는 게 태연..
107. 당시풍을 오롯이 익힌 최경창 余嘗聞諸先輩, ‘我東之詩, 唯崔孤竹終始學唐, 不落宋格,’ 信哉! 其高者出入武德·開元, 下亦不道長慶以下語, 如‘春流繞古郭, 野火上高山.’ 則中唐似之, ‘人烟隔河少, 風雪近關多.’ 則似盛唐, ‘山餘太古雪, 樹老太平烟.’ 則似初唐. 不知今世復有此等調響耶. 해석 余嘗聞諸先輩, 我東之詩, 내가 일찍이 선배에게 ‘우리 조선의 시는 唯崔孤竹終始學唐, 오직 고죽 최경창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당풍(唐風)을 배워 不落宋格, 信哉! 송풍(宋風)의 격조로 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을 들었으니, 참이로구나! 其高者出入武德·開元, 격조가 높은 것은 무덕(618~626, 初唐)ㆍ개원(713~741, 盛唐)에 출입하며 下亦不道長慶以下語, 격조가 낮은 것 또한 장경(821~824, 中唐) 이하의 말(..
깊은 산골임을 시인이 묘사하는 방식 東峯雲霧掩朝暉 동쪽 봉우리에 구름 끼고 이슬 내려 아침 해를 가려서 深樹棲禽晩不飛 깊은 숲속에 자던 새 늦도록 날질 않네. 古屋苔生門獨閉 옛집 이끼 껴 문 홀로 닫혀 있어, 滿庭淸露濕薔薇 온 뜰에 맑은 이슬이 장미를 적셨다네. 『소화시평』 권상 106번에 처음으로 소개된 최경창의 「제낙봉인가(題駱峯人家)」라는 시는 전형적인 당풍(唐風)의 시다. 시를 해석한 것만으로도 그 상황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봤던 지천 황정욱의 시와 시적 미감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시 한편을 통해 여기서 말하는 인가가 얼마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여실히 알 수 있다. 시인은 한 번도 집이 ‘깊숙한 곳에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구름과 이슬이 해를 가..
106.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崔孤竹慶昌, 「題駱峯人家」詩曰: ‘東峯雲霧掩朝暉, 深樹棲禽晩不飛. 古屋苔生門獨閉, 滿庭淸露濕薔薇.’ 淸麗如畵. 嘗與蓀谷共賦「虛舟繫岸圖」, 蓀谷詩落句曰: ‘泊舟人不見, 沽酒有漁家.’ 孤竹詩曰: ‘遙知泊舟處, 隔岸有人家.’ 孤竹不下‘人不見’三字, 而無人之意, 自在其中, 崔詩爲優. 해석 崔孤竹慶昌, 「題駱峯人家」詩曰: ‘東峯雲霧掩朝暉, 深樹棲禽晩不飛. 古屋苔生門獨閉, 滿庭淸露濕薔薇.’ 고죽 최경창의 「낙봉 인가에 쓴 시[題駱峯人家] / 우연히 읊다(偶吟)【이하 세 편은 가장본엔 없지만 최경창과 백광훈의 시를 모아 간행한 『최백집』 속에서 얻은 것이다[此下三首, 家藏本無之, 而得於『崔白集』中].】」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東峯雲霧掩朝暉 동쪽 봉우리에 구름 끼고 이슬 내려 아침 해를..
이달李達: 1539(중종 34)~1612(광해군 4) 중기 문인.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 1. 이첨의 후손이고 박순의 문하에서 수학. 삼당시인의 한 사람. 2. 모친이 홍기의 관기여서 서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평생을 불우하게 지냄. 3. 허균(許筠)이 그의 전기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어 자신이 이달의 제자라 함. 4.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선 “최경창의 시는 사납고 굳세며 백광훈의 시는 고담하다. 모두 당풍의 노선을 잃지 않았으니 참으로 또한 천년의 드문 가락이다. 이달은 이들보다 조금 크다. 그렇기 때문에 최경창과 백광훈과 함께 스스로 대가를 이루었다[崔詩悍勁, 白詩枯淡, 俱不失李唐跬逕, 誠亦千年希調也. 李益之較大. 故苞崔孕白而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