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최치원 (8)
건빵이랑 놀자
배 속에서 밤에 읊다주중야음(舟中夜吟) 박인량(朴寅亮) 故國三韓遠 秋風客意多고국삼한원 추풍객의다孤舟一夜夢 月落洞庭波 고주일야몽 월락동정파 『小華詩評』 해석故國三韓遠 秋風客意多고국 삼한 땅 아득히 멀고 가을바람은 나그네 정감 많이 불러일으키네.孤舟一夜夢 月落洞庭波외로운 배에서는 밤새 꿈을 꾸고 달은 동정호 물결에 떨어진 듯하네. 『小華詩評』 인용작가 이력 및 작품소화시평 권상18
강남의 계집아이강남녀(江南女) 최치원(崔致遠) 江南蕩風俗 養女嬌且憐강남탕풍속 양녀교차련性冶恥針線 粧成調急絃성야치침선 장성조급현所學非雅音 多被春心牽소학비아음 다피춘심견自謂芳華色 長占艶陽天자위방화색 장점염양천却笑隣舍女 終朝弄機杼각소린사녀 종조롱기저機杼終老身 羅衣不到汝기저종로신 라의부도여 해석江南蕩風俗 養女嬌且憐강남땅은 풍속이 방탕하여 딸 기를 때 예뻐하고 귀여워만 해.性冶恥針線 粧成調急絃심성은 되바라져[冶] 바느질을 부끄러워하고 화장하고 빠른 음악 연주하지만所學非雅音 多被春心牽배운 것은 우아한 음악이 아니고 대부분 춘심(春心)에 이끌려진 것이라네.自謂芳華色 長占艶陽天스스로 “이 고운 미색 청춘【염양천(艷陽天): 아름다운 청춘의 때. 염양(艷陽)은 봄날의 아름다운 풍광. 천(天)은 운명. 천(天)은 문집에 ‘..

여관의 밤비 우정야우(郵亭夜雨) 최치원(崔致遠) 旅館窮秋雨 寒窓靜夜燈 여관궁추우 한창정야등 自憐愁裏坐 眞箇定中僧 자련수리좌 진개정중승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석 旅館窮秋雨 寒窓靜夜燈 여관에 늦가을 비 내리고 차가운 창에는 고요한 밤의 등불이 켜져 있네. 自憐愁裏坐 眞箇定中僧 가련쿠나, 근심 속에 앉은 모습 진정 선정에 든 스님 같구나.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해설 이 시는 역(驛) 마을의 객사(客舍)에서 가을비를 보고 읊은 것으로, 세속적 이상향(理想鄕)을 추구한 시이다. 나그네는 비 내리는 깊은 가을밤에 시름에 겨워 앉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독과 애상(哀傷)은 하나의 시련일 뿐이어서, 그 자체가 선승(禪僧)의 고행처럼 받아들여진다. 그 고행의 끝에 이르는 경지는 세로(世路)에서 얻는 이상향일 것이..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를 여러 번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이유 『소화시평』 권하 64번의 첫 번째 시는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라는 시다. 이 시는 워낙 유명해서 문학사를 다루는 책이나 한시를 다루는 책에선 빠짐없이 인용되는 시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까지 아무리 못해도 10번 이상은 읽었을 것이고 그만큼 내용도 분명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선 기존에 읽던 방식대로 시를 읽게 되어 있고 그 방식대로 발표 준비를 하게 되어 있다. 당연히 그 방식이 옳은 줄만 아니, 지금까지 이해한 방식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스터디를 하면서 기존에 이해한 방식이 얼마나 많은 걸 놓치게 만들고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
18. 통일신라의 걸출한 시인, 최치원과 박인량 我東以文獻聞於中國, 中國謂之小中華. 蓋由崔文昌致遠唱之於前, 朴參政寅亮和之於後. 文昌入唐賦詩, 膾炙人口. 其「郵亭夜雨」曰: ‘旅館窮秋雨, 寒窓靜夜燈. 自憐愁裏坐, 眞箇靜中僧.’ 參政奉使朝宋, 所至皆留詩. 華人傳賞, 刊其詩文, 號『小華集』. 其「舟中夜吟」詩曰: ‘故國三韓遠, 秋風客意多. 孤舟一夜夢, 月落洞庭波.’ 崔詩格律嚴正, 朴詩語韻淸絶, 可與中國諸子櫜鞬周旋. 해석 我東以文獻聞於中國, 中國謂之小中華. 우리나라는 문헌으로 중국에 소문났기에 중국은 ‘소중화’라 일컬었다. 蓋由崔文昌致遠唱之於前, 대게 문창 최치원이 앞에서 부르면 朴參政寅亮和之於後. 참정 박인량이 뒤에서 화답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文昌入唐賦詩, 膾炙人口. 문창이 당에 들어가 시를 짓자 사람들에게 ..
16. 돌연히 우뚝 선 최치원 我東之通中國, 遠自檀ㆍ箕, 而文獻蓋蔑蔑. 隋ㆍ唐以來, 始有作者, 如乙支文德之獻規仲文, 新羅女王之織錦頌, 功雖在簡冊, 率皆寂寞, 不足下乘. 而至于唐侍御史崔致遠, 文體大備, 遂爲東方文學之祖. 其「江南女」詩曰: ‘江南蕩風俗 養女嬌且憐 性冶恥針線 粧成調急絃 所學非雅音 多被春心牽 自謂芳華色 長占艶陽天 却笑隣舍女 終朝弄機杼 機杼終老身 羅衣不到汝’ 佔畢齋云: “公仕于唐, 此詩疑見三吳女兒作.” 余觀此詩, 蓋有所感諷而作, 非但詠三吳女兒也. 辭極古雅, 非後世人可及. 所著詩文甚富, 而屢經兵燹, 傳者絶少, 良可惜也. 해석 我東之通中國, 遠自檀ㆍ箕, 우리나라가 중국과 교류한 것은 멀리 단군과 기자 때부터지만 而文獻蓋蔑蔑. 문헌이 거의 없다. 隋ㆍ唐以來, 始有作者, 수당 이래로 비로소 작자가 나왔으..
황상과 최치원의 시와 류석춘 어제 2학기 들어 두 번째 한시 스터디가 있었다. 작년부터 했던 『소화시평』이 올해 7월에 상하권 선집을 무려 1년 4개월 만에 끝낸 후에 방학 기간엔 서사한시를 마쳤고 2학기부턴 이의현이 집필한 『陶谷集』을 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예행연습 삼아 『雲陽漫錄』에 나온 ‘재물과 관직을 탐내는 사람들에게’라는 편을 보면서 2학기의 스터디를 화려하게 열었다. ▲ 늦은 시간임에도 학구열을 불태우는 아이들, 그리고 명강의를 펼치는 교수님. 황상의 시와 그 기반이 된 최치원의 시 그래서 어제 두 번째 스터디를 하며 각자가 맡아온 부분을 발표한 후에 교수님이 가져온 시 두 편을 봤다. 하나는 다산의 애제자인 황상의 지은 것으로 짚신 짜던 가난한 계집아이에 대한 기록을 담은 「여인이 짚신을 ..
최치원崔致遠: 857(문성왕 19)~? 경주최씨의 시조. 자(字)는 고운(孤雲)ㆍ해운(海雲). 857년 경주 사량부(沙粱部)에서 출생. 부친은 견일(肩逸). 자는 고운(孤雲)ㆍ해운(海雲) 868년 12세 당 유학 874년 18세 당 희종(僖宗) 건부(乾符) 1년 빈공과 급제. 876년 20세 율수현위(溧水縣尉)에 임명됨. 『중산복궤집(中山覆簣集)』을 지었다 하나 전하지 않음. 877년 21세 율수현위를 사직하고 終南山에 들어가 학업 연마. 879년 23세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자 고병(高騈)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서기(書記) 역할을 함. 그 후 4년 간 고병(高騈)을 대신하여 표(表), 장(狀), 서(書), 격문(檄文) 등을 지음 880년 24세 『격황소서(檄黃巢書)』를 지음. 이 격문으로 최치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