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제목을 통해 시를 봐야 한다
江湖當日亦憂君 | 강호에서 있던 당시에 임금이 근심스럽고 |
白首無眠夜向分 | 하얀 머리인데도 잠 못 이루고 자정을 넘겼는데, |
華省寂寥疎雨過 | 궁궐은 적막한데 가랑비 지나가자, |
隔窓梧葉最先聞 | 창 너머 오동잎이 가장 먼저 빗소리를 들려주네. |
『소화시평』 권상59번의 세 번째 인용된 「독직내조문야우(獨直內曺聞夜雨)」라는 시를 볼 땐 제목과 1구에 나오는 ‘강호(江湖)’에 집중하며 봐야 한다. 지금껏 시를 볼 땐 제목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분 ‘우연히 읊다[偶吟]’이나 ‘그 자리의 일을 읊다[卽事]’와 같은 전혀 시의 내용과 상관없는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아예 시 제목을 풀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최근에 다시 공부하면서는 시 제목을 해석하긴 하지만, 여전히 별로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에 이르러선 시의 제목을 잘 이해하고 이 시를 해석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이 작자는 지금 공직을 맡아 근무하고 있는 중이란 사실이다. 이런 배경지식을 알고 1구를 보면 절로 황당한 느낌이 든다. 분명히 공직자임을 아는데 ‘강호(江湖)’라는 말이 갑자기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쯤 되면 여기서 나오는 강호는 지금 현재의 묘사가 아닌, 과거에 대한 회상임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공직자가 아닐 때부터 기재는 임금에 대한 걱정을 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역(亦)’을 허투루 보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러다 2구에선 갑자기 현재로 돌아와 백발 성성한 자신의 숙직하는 모습을 그린다. 백방이 성성한 이는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밤이 나누어지는 시간대(저녁 / 새벽, 즉 12시)를 향해가고 있는데,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왜일까? 그건 1구에서 단서를 던졌다시피 임금에 대한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1구의 ‘강호(江湖)’가 일상적으로 쓰는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방식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이걸 소화시평에선 ‘변안법(飜案法)’이라고 표현했는데, 아마도 그럴 거 같다.
江湖 | |
탈속, 피세로써의 강호 | 세속을 더 강하게 추구하는 강호 |
3구의 해석은 크게 다른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4구에선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나는 4구에서 ‘빗소리를 오동잎이 먼저 듣는다’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래도 밖에 있다 보니 빗소리를 더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아니었다. 오동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니, 오동잎에 닿는 빗소리로 인해 비가 오는 줄을 안다는 거였다. ‘오동잎이 가장 먼저 들려주네’라는 해석이 그래서 가능하다. 그리고 바로 이 빗소리로 인해 작자는 1구에서 과거를 회상하다가 갑자기 현실로 급하게 소환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한참 상상의 나래에 빠져 숙직의 무료함을 달래던 시인을 성긴 비가 현실로 소환하며 여전히 여러 고민과 생각 속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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