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다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 | 천험(자연적인 험지)라 전해지는 삼협은 우레소리가 급류와 다툰다네. |
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 | 돛단배 오늘에서야 시험해보려 하나, 손님의 간담은 예로부터 서늘했었다지. |
但覺巖崖峻 誰知宇宙寬 | 다만 바위 벼랑의 험준함만 깨달았을 뿐, 누가 우주의 관대함을 알겠는가. |
淸猿啼不盡 送我上危灘 | 원숭이 끝없이 울어대면서 험한 여울 탄 나를 전송해주네. 『 忍齋先生文集』 卷之一 |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소화시평』 권상 85번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시 한편의 내용 중 결구의 내용에서 생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홍섬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용된 이 이야기는 신흠의 「청창연담(晴窓軟談)」에 실려 있던 글을 홍만종도 보았고 이걸 자신의 시화집에 실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홍만종은 왜 홍섬의 이 이야기에 끌렸느냐 하는 점이 궁금해진다. 과거의 무수히 많은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를 끌고 올 때는 자기 스스로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도올선생님은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아주 도발적인, 그렇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을 해준 것이다. 지금 나는 연구자는 아니기 때문에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지만, 홍만종에게 홍섬의 이 일화는 분명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으리라.
김형술 교수님은 ‘상위탄(上危灘)’과 ‘시이지기불사(是以知其不死)’를 연관 지어 생각해보라고 했다. 바로 두 구절에서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기에 대답하는 사람들마다 ‘상(上)’에 방점을 찍고 “역경에의 극복 의지가 담겨 있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다며 좀 더 생각해보길 권유해줬다.
결국 우리가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전구(轉句)인 ‘다만 바위 벼랑의 험준함만 깨달았을 뿐, 어찌 우주의 관대함을 알겠는가[但覺巖崖峻 寧知宇宙寬]’라는 구절에 키가 숨겨져 있다고 말해줬다. 그렇다, 이건 단순히 역경을 극복하겠다는 ‘생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관점이 바뀌어 ‘더 이상 역경이 역경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즉각적으로 한 글이 떠올랐다. 연암의 「황하를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건너며 깨달은 것[一夜九渡河記]」이란 글을 보면 처음엔 황하에 빠질까봐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연암 자신의 겁내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에 빈 것이 아니라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했을 뿐[其仰首者非禱天也, 乃避水不見爾]’라고 현실을 묘사한다. 물을 보면 빠질까 두려워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만 보며 벌벌 떨고 가는 것이 모습이 한편으론 짠하면서 한편으론 코믹하다. 그러다 문득 연암은 깨닫는다. ‘마음을 비운 사람은 귀와 눈에 휘둘리지 않는다[冥心者, 耳目不爲之累]’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그 다음엔 아예 황하에 온 몸을 맡기며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을 삼아, 이 마음에 한 번 떨어질 판결을 내리니, 나의 귀에 마침내 물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以河爲地, 以河爲衣, 以河爲身, 以河爲性情, 於是心判一墮, 吾耳中遂無河聲].’라고 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예 그 상황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수용의 대상으로 삼으니 더 이상 두려운 게 아니라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처럼 소세양이 홍섬에게서 본 것은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역경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 내맡길 수 있다는 결단이었던 거다. 그런 관점에서 상(上)이란 한자를 다시 풀이해보면 ‘급류를 거스른다’가 아니라 ‘급류에 올라탄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역시 한시의 세계는 재밌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한 글자의 뉘앙스 차이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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