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참론과 결과론적인 얘기의 불편함
한시를 공부하다보면 재밌는 일화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시참(詩讖, 생각 없이 지은 시가 예언서마냥 훗날의 일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흥미로운 주제긴 하다.
예를 들면 『소화시평』 권상 85번에서처럼 마지막 구에서 작자의 생에 대한 의지를 봤고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하는 경우나, 유몽인 ‘잘린 지렁이[斷蚓]’, ‘추운 파리[寒蠅]’라는 시어를 썼더니 단명하게 됐다고 평가하는 경우나, 홍명구란 사람이 ‘화락천지홍(花落天地紅)’라는 시를 짓자 할머니가 보고 “‘花發天地紅’이라 했으면 복록을 누렸을 텐데, 그러지 못해 요절할 거 같다.”라고 평가했고 실제로 42세에 죽었다는 하권49번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들을 읽다보면 일견 그럴 듯하게 보인다. 의식의 흐름과 그걸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참론에 대한 이야기들은 수시로 만들어졌고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통되었다. 고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사람은 나의 인생이든 남의 인생이든 인과관계에 따라 보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그 무언가를 찾고자 하고 바로 그 틀에서 이해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우린 너무도 쉽게 결과론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습관이 있다. 내 인생에 대해 누구나 과정은 등한시하고 결과론적으로 짜맞추면 싫어하면서도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의 삶은 결과론적으로 짜맞추는 것이다.
TV를 보면 이것은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선 하드나 기록물 중에 음란물이 있나를 찾고 “이 사람은 성도착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하거나, 극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기록물이나 게임 접속 내용을 보고 “폭력적인 영화와 게임에 몰두하다 보니 폭력성이 남달랐습니다.”라고 한다. 그게 사실 여부를 떠나 이미 범죄는 일어났고 결과에 따라 과정을 껴맞추려 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 그런 식으로 성범죄의 가능성, 범행의 가능성을 얘기한다면 대한민국의 뭇 남자들은 잠재적 범죄자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처럼 시참론을 얘기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곤 한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그 상황에 딱 맞아 들어갈 만한 요소를 찾는다는 혐의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요절한 사람에게선 요절할 만한 불운한 뉘앙스가 담긴 시구를 찾고, 영달한 사람이나 상황을 극복해낸 사람에게선 생의 의지를 담은 시구를 찾는다. 난 어떤 사람에게든 이 두 가지 의지가 담긴 내용들은 과거의 기록 속에 모두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찾는 이상 찾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요봐 요봐 바로 요 구절이 시참인 거고, 이 시인은 진즉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던 거라구.”라고 말하게 되어 있다.
결과론적으로 짜맞추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과정은 보려하지 않고 결과 하나만으로 모든 걸 재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단재학교의 교사로 있을 때도 학생들을 성적 하나로 재단하는 것에 극히 유감스러워 했으며(성적만 나빴지, 인간성, 적극성, 협동성 등은 월등히 좋은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 임용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도 합격과 불합격 여부로만 1년의 공부방향의 옳고 그름을 재단하려 하는 것에 불만이 많다. 어찌 보면 한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결과로 짜맞추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걸어왔던 과정, 과정에 대한 흥미와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말이다.
▲ 임용결과 발표가 나왔다. 이에 따라 누구나 결과론적으로 자신의 일년을 반추해볼 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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