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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81. 정사룡의 시가 던져준 화두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81. 정사룡의 시가 던져준 화두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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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룡의 시가 던져준 화두

 

 

擁山爲郭似盤中 산을 둘러 성곽이 되니, 소쿠리 안과 비슷한데,
暝色初沈洞壑空 어둠에 막 잠기자 골자기는 텅 비었네.
峯頂星搖爭缺月 묏 봉우리의 별은 흔들리면서 이지러진 달과 다투고
樹顚禽動竄深叢 나무 끝의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누나.
晴灘遠聽翻疑雨 갠 여울소리 멀리서도 들리니 문득 비 오나 싶고
病葉微零自起風 시든 잎사귀 지자 절로 바람이 일어나네.
此夜共分吟榻料 이 밤에 함께 시를 읊조린 침대값은 함께 나눠 내겠지만,
明朝珂馬軟塵紅 내일 아침이면 말방울 소리 나고 붉은 먼지 날리겠지.

 

소화시평권상 81에 소개된 ()’ 한 글자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본다면 이해가 쉽더라. 그래서 1구에선 이곳이 성곽으로 빙 둘러 있는 분지지형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당연한 내용일 텐데 그걸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교수님이 2구의 내용을 얘기해줄 때서야 감이 왔다.

 

왜 해가 지니 어둠에 잠기며 골짜기는 텅 비었을까?”라는 거다. 그만큼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환경이기에 평야 지대보다 훨씬 빨리 어두워지고 그만큼 적막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는 이 시를 해석해야 하는 입장이니 그저 따라가기에 바쁘지만, 이 시를 짓기 위해 그곳에 가본 정사룡에게 이 1~2구는 자연을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였을 것이다.

 

재밌는 건 3구와 4구다. 3구에선 별빛이 달빛과 다투려한다는 재밌는 표현을 쓰고 있고 4구에선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숨는다는 표현을 썼다. 당연히 달빛과 다투는 별빛, 그리고 숲속으로 숨으려 날아가는 새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관이 없는 소재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4구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라고 주문해주시더라. 그 말은 곧 거기엔 숨겨진 내막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3구와 4구에 집중을 하고 보다 보니 갑자기 이 시가 매우 달라보이게 되었다. 3구와 4구는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님에게 이건 인과 관계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별빛이 다투려 하니 새가 그걸 싫어하여 숨었다라고 말이죠.”라고 말했다. 그제야 교수님도 그렇기 때문에 시를 볼 때 습관적으로 ‘~하고 ~라는 식으로 관습적으로 해석하는데 그러지 말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순접 관계인지, 역접인지, 인과인지 등등 전구와 후구가 아주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에 김형술 교수님 스터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임용시험과는 직접적으로 관계되진 않지만 이 스터디를 통해 한시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그게 얼마나 알싸하고 시큼하며 감칠맛이 도는 것인지 안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우연하게 임용을 공부하게 됐지만, 다시 전주에 내려와 임고반에 들어왔고 이 스터디가 때마침 열려 참여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행운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5구와 6구는 상황이 뒤집어져 있다. ‘갠 여울소리 멀리서도 들리니 문득 비 오나 싶고, 시든 잎사귀 지자 절로 바람이 일어나네.’라고 말한 것이다. 보통은 비가 오는지 여울소리가 멀리서도 들리고, 바람이 일어나니 잎사귀가 떨어지네라고 표현할 테지만, 해동강서시파의 특징이 문구를 꾸며내고 비틀어낸다는 특성에 맞게 전후를 뒤바꾸어 잎사귀가 떨어지자 바람을 일으켰다는 교묘한 표현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전후만을 바꿨을 뿐인데도 확실히 일반적인 표현보단 뒤틀어버린 표현이 더 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마치 나비효과같은 초자연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드니 말이다.

 

한시를 짓는 실력이 그 사회 문화인의 지적 역량으로 치부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대가 끝난 지 지금은 100년 정도가 흘렀지만, 그런 시대에 과연 자신은 어떤 시체를 구사하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할 것이냐 하는 게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그때 시인들이 중국에서 유행하는 이론들을 따랐다 할지라도 자신만의 것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재료로 사용했다는 게 중요하다. 박상의 시나 정사룡의 시는 그런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자신만의 것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던 흔적들일 테니 말이다.

 

그건 요즘 나에게도 하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어차피 해 아래 새 것은 없고, 이미 나 또한 어떤 조류에 휩쓸려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녹아낸 것을 어떻게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 그게 기분 좋은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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