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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87. 한시로 ‘멋지게 나이듦’에 대해 말해준 이황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87. 한시로 ‘멋지게 나이듦’에 대해 말해준 이황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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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로 멋지게 나이듦에 대해 말해준 이황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천성은 항상 고요함을 탐하나 형체는 삐쩍 말라 실제론 추위를 두려워하네.
松風關院聽 梅雪擁爐看 솔바람 빗장 건 채 듣고 눈 속 매화는 화로 낀 채 보다보니,
世味衰年別 人生末路難 세상의 맛은 늘그막에 각별하지만 인생은 말년이 어렵다지.
悟來成一笑 曾是夢槐安 깨닫고서 한바탕 웃고 말았으니, 이전엔 괴안을 꿈꾸었기 때문이라네.

 

나야 사단칠정 논쟁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고정관념적으로 이황 선생에 대해 되게 교조적이고 경직된 인간으로 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웬만하면 퇴계의 글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 소화시평권상 87이황의 시가 실려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시를 보고나선 깜짝 놀랐다. 매우 인간미가 풀풀 넘쳤기 때문이다.

 

누구나 바라는 이상처럼 자신도 고요하게 물욕도, 명예욕도 없이 조용히 살고 싶었노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정관념적으로 지니고 있던 이황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묵인해주는 정도라 할 수 있다. 아주 강직하고 바른 사나이, 그래서 타협을 모르는 이황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구부터 현실의 자기는 그러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몸은 야위어 추위를 두려워하고 솔바람 소리 듣고 싶지만 추위가 무서워 빗장 건 채 은근히 듣고 매화를 늘 보고 싶지만 추위가 무서워 화로를 껴야만 볼 수가 있다. 이쯤 되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늘 좌충우돌하며 현실에 결국 타협하고 마는 나의 모습이 겹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면 나는 아예 추우니 솔바람 소리도 안 들으려 할 것이고 매화도 보지 않으려 할 것인데, 그래서 약간은 강직한 사나이인 이황 선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것 다 하지 않는가. 그러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결국 하고야 마는 그 열정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세상의 맛은 나이가 들수록 각별하다고 말하는 구절에선 그래도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가 잘 늙는다라고 할 때가 바로 이 구절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세상을 더욱 따스하게 바라보고 사람들에게 더욱 여유가 있으며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허둥대지 않고 오히려 허둥대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삶의 지혜를 전수해주는 모습 말이다. 바로 이 구절에선 이황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 인생은 말년이 어렵다더라고 말하는 부분에 이르면 인간미가 풍긴다. 나이가 든다고 겁이 없어지는 것도, 모든 것에 통달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몸은 약해져서 더 잘 놀라고 의기소침해지니 말이다. 그러니 이럴 때 자신의 불안을 툭 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의 핵심은 마지막 구절에 담겨 있다. 갑자기 시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 전까지는 좀 어두운 기운이 감돌았는데 이곳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하게 웃어재끼는 작자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웃음이 심상치가 않다. 이때 교수님은 왜 웃는지 이유를 생각해보세요.”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1~3구까지 너무 자신이 무겁고 칙칙했던 것이 무안해서 그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그럴 때가 있잖은가, 뭔가 매우 심각하게 말을 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듣지 않아 뻘쭘해져 헛웃음 짓게 되는 상황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이 웃음은 뻘쭘해서거나, 냉소이거나 실성해서거나, 주위 사람들을 비웃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가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다음 구절에 있다고 했다. 남가일몽을 꿈꾸던, 여태까지도 놓지 못한 명예욕ㆍ권력욕이 부끄러워져 웃음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울음이든 웃음이든 같은 작용을 한다. 자신의 감정을 환기하도록 도와주니 말이다. 그러니 박지원의 호곡장에서 말한 울음이나 이황이 이 시에서 말한 웃음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이 시는 멋지게 나이 든다는 게 뭔지를 조금이나마 보여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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