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而不有의 공부법
한적한 옛 길을 거닐며 발문
눈을 감았다가 눈을 뜨고 ‘습관적으로’ 아침밥을 먹고 ‘늘 오가던’ 길을 달려 학교에 온다. 쭉 둘러보다가 기둥으로 가려지는 자리에 철썩 앉고 ‘지금껏 해왔던 공부’를 이어서 한다.
공부할수록 실력이 저하되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가’ 시간이 되면 평생교육원에 가서 ‘시간을 죽인다.’(쓸데없이 컴퓨터만 하니까.) 일이 끝나면 7시 30분이다. 더 공부하려는 맘만 있다면 2시간가량 더 공부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오기 일쑤다. 중도에 올라가는 게 귀찮아서만은 아니다. 평생교육원 행정실도 공부할만한 곳이기에 올라가는 게 귀찮다면 그곳에서 해도 되니까. 하지만 하지 않고 그냥 간다. 그렇다면 집에 급한 일이라도 있단 말인가? 천만만의 말씀, 만만의 콩딱이다. 집에 가면 이리저리 쓸데없는 짓만 하다가 잘 게 뻔하니까. 그저 지금은 관성에 의해 공부란 것을 붙잡고 있을 뿐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름 하여 ‘不專心致知’ 되시겠다. 공부란 하나하나 실력을 쌓아가 세상과 만물을 통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난 정확히 그 반대로 실력을 깎아내려 내 안으로만 침잠하는 것이다.
生而不有의 공부법
그러면서도 바라는 것도 꿈꾸는 것도 많다. ‘꼭 교사가 되고 싶다.’, ‘꼭 한문학박사가 되고 싶다.’고 외치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울고 있다. 무슨 일인지 다가가 봤더니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떼를 쓰고 있는 것이더라. 그런 경우엔 무시하는 게 상책일 텐데 엄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했는지 몇 번 어르다가 결국 사주고 말았다. 장난감을 두 손에 쥔 녀석은 언제 울었냐는 듯 밝게 웃는다. 그 표정 한 쪽엔 의기양양한 마음도 엿보인다. 자신이 나름대로 일(울기, 떼쓰기)을 한 결과 당당히 그 결과물을 얻어낸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저 조그만 녀석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소득을 주장할 줄 안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그게 정당한 소득도 아닐뿐더러 그런 생각 착오로 인해 앞으로 엄마와 자주 다투게 될 거라는 것을. 정당한 일에 대한 소득을 주장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노자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을 할 순 있지만 거기에 따른 소득마저도 관여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일에 대한 소득의 관여는 마음의 집착을 낳고 그건 끊임없는 욕망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난 그 경지는커녕 정당한 일조차 하지 않고 소득을 바란 떼쟁이 아이의 모습이었던 거다. 이름 하여 ‘非生而不有’ 되시겠다. 공부란 알아 가는 만큼 내가 더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책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生’한 만큼 ‘不有’했던 현실을 깨닫게 되는 변증법의 행로이다. 하지만 난 ‘生’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有’만을 주장했을 뿐이었다. 조금 안 것을 가지고 모두 다 안 것인 양 의기양양 했던 거다.
볼품없는 실력임을 인정한다
나의 학문이 이다지도 볼품없다. 난 그걸 이 두 개의 구절로 압축해 제시한 것이다. 바로 이런 부족한 점들을 보충할 수 있어야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이 책을 통해 한적한 옛 길을 거닐며 ‘온 마음을 다하고 앎을 극진히 하여’ 내가 꿈꾸던 ‘결과를 이루어내되 그 성취감에 들떠 학문을 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2010년 1월 25일 월
제 4 열람실에서 건빵
1st : 06.02.24
2nd : 07.02.02
3rd : 08.08.27
4th : 10.02.01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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