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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천로 - 우음(偶吟)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차천로 - 우음(偶吟)

건방진방랑자 2021. 4. 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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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읊으며 명예를 다투는 마음을 들여다 보다

우음(偶吟)

 

차천로(車天輅)

 

 

蝸角爭名戰未休 幾人談笑覓封侯

劍頭螘血流千里 甲外鯨波沒十洲

莫問是非身後定 從知勝敗掌中收

若敎畫像麒麟閣 上將奇功在伐謀 五山先生續集卷之二

 

 

 

 

해석

蝸角爭名戰未休
와각쟁명전미휴
달팽이 뿔에서 명예 다투던 싸움 끝나지 않아
幾人談笑覓封侯
기인담소멱봉후
몇 사람이나 제후에 봉해짐 구했다고 담소할까?
劍頭螘血流千里
검두의혈류천리
칼 머리 개미피 천리에 흐르고
甲外鯨波沒十洲
갑외경파몰십주
갑옷 밖 고래 물결이 십주를 잠기게 하네.
莫問是非身後定
막문시비신후정
시비가 죽은 뒤에 정해진다고 묻지 마라.
從知勝敗掌中收
종지승패장중수
승패가 손바닥 속에서 거두어짐을 알게 되리니.
若敎畫像麒麟閣
약교화상기린각
만약 기린각에 초상을 그리게 한다면
上將奇功在伐謀
상장기공재벌모
상장군의 기이한 공은 정벌하는 계책에 있을 텐데. 五山先生續集卷之二

 

 

해설

이 시는 우연히 읊은 것으로, 헛된 공명심(功名心)을 조롱하는 시이다.

 

조그마한 달팽이 뿔 위에서 이름을 다투느라 싸움은 끝이 없는데, 몇 사이나 봉후자리를 구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까? 칼 끝에 묻은 적의 피는 개미 피처럼 적은데 천 리에 흐르기를 바라고(헛된 功名心을 의미함), 군진(軍陣) 밖의 고래와 같은 파도는 열 개의 모래섬을 삼키듯 천하를 평정하려 한다(이것 역시 헛된 바람이다). 시비가 죽은 뒤에 정해지는지 묻지 마라. 승패는 손바닥 안에서 결정되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공을 세운 사람들이 공적을 기리기 위한 기린각에 자기 초상을 그리게 하고 싶다면, 적이 어떠한 계책을 세우고 있는지를 살펴서 그것을 무찌르는 것이 최고의 공일 것이다.

 

뛰어난 시()를 지니고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차천로에게 있어서 공명(功名)만을 추구하는 당시의 세태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청성잡기(靑城雜記)에 차천로의 시()와 문집(文集) 편찬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오산(五山) 차천로와 창주(滄洲) 차운로(車雲輅) 형제의 시는 비록 그 재능의 고하에 대한 비평이 있으나, 대체로 모두 고금에 보기 드문 준재(俊才)이다. 특히 오산은 나라를 빛낸 공로가 있다.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이 평양의 왜구를 격파하고는 의기양양해하니, 감히 그 앞에서 기어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마침내 조선에 명하여 승전보를 지을 만한 자를 뽑아 보내라 하였는데, 뛰어난 인재들이 줄줄이 있었으나 모두 뒤로 빼고 나아가지 못하였다. 결국 오산에게 응하게 하자, 오산은 당당하게 사양하지 않고 석봉(石峯) 한호(韓濩)를 잡아끌어 나아갔다. 오산의 외양이 매우 초라하니, 이여송은 그를 하찮게 여겨 말하였다. ‘이런 자가 문장을 제대로 짓겠는가?’ 그리고는 글을 쓸 비단을 던져주고 쓰게 하니, 오산은 미리 구상한 듯이 술술 입으로 불러 주고, 석봉은 이를 날듯이 휘갈겨 써 내려갔다. 이여송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 보았는데, ‘말 울음소리는 붕새 등의 바람에 우렁찼고, 기뻐하는 기운은 소 눈망울까지 쌓인 눈을 녹였다네이여송(李如松)이 평양성을 공격할 당시의 드높은 사기를 형용한 말이다. 오산집(五山集)6파평양성왜적로포(破平壤城倭賊露布)대장의 기와 북을 세우니, 말 울음소리는 붕새 등의 바람에 우렁찼고, 중군의 관과 아를 정돈하니, 기뻐하는 기운은 소 눈망울까지 쌓인 눈을 녹였다네[建大將之旗皷 班聲噫鵬背之風 整中軍之鸛鵝 喜氣融牛目之雪].” 하였다. 관과 아는 진()의 명칭이다하였다. 눈이 소 눈망울까지 쌓였다는 표현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나오는 말인데【『춘추공양전에서는 이런 표현을 찾을 수 없고 전국시대에 위 혜왕(魏 惠王)의 장례를 눈이 많이 쌓여 힘들게 치렀다는 기사에 이런 표현이 보인다. 戰國策23 마침 평양성을 격파하는 날 눈이 내렸었다. 이여송은 이 구절을 보고 크게 놀라며, ‘천하의 기재(奇才)로다.’ 라고 칭찬하였다.

이여송이 돌아갈 때에 또 칠언 율시 100편을 지어 평양으로 보냈는데, 그 답사(答辭) 또한 오산이 지은 것이었으니, 나라를 빛냄이 이보다 더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겨우 봉상사첨정(奉常寺僉正) 벼슬을 지내고 죽었다. 그가 죽을 때에 태양이 규성(奎星)에서 일식(日蝕)하였다. 천문에 밝은 조진(趙振)은 이를 보고 차천로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옛날 사령운(謝靈運)과 범엽(范曄)이 죽을 때에도 이러한 변괴가 있었다고 한다. 차운로도 영락한 채로 죽었다. 차천로의 아버지는 식()이고, 아들은 전곤(轉坤)인데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유몽인(柳夢寅)이 차식의 묘갈명을 지으면서 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덕을 낱낱이 서술하였다. 차천로의 형 은격(殷格) 역시 신동이었는데 일찍 죽었다. 그러나 차천로의 문집은 끝내 간행되지 못하였고 기아(箕雅)에 보이는 것은 시 몇 편뿐이다. 선친께서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오산의 시와 창주의 시, 위로 아버지 식과 조부 광운(廣運)의 시를 수집하여 모아서 11권으로 엮어 보관하셨다. 금상(今上)께서 신해년(1791, 정조 15)에 현릉원(顯隆園)에 행차할 적에 과천(果川)을 지나게 되었는데 오산의 묘가 그곳에 있었다. 상께서 옛일을 생각하고 그의 문집을 판각할 것을 명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을 비로소 꺼내어 패영(浿營, 평양)에서 판각하게 되었다. 문장이 드러나고 묻히는 것이 본래 각기 때가 있으니, 다행히 지금에 와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오자가 매우 많은데 확인할 길이 없으니 참으로 한스러울 뿐이다[車五山天輅滄洲雲輅詩 雖有武庫利鈍之譏 而大抵並振古俊才也 五山尤有華國之功 李提督破平壤倭 意得張甚 人無敢蒲伏其前 而乃令於鮮 選能爲露布者 材俊林立 而步盡縮 乃以五山應之 五山昂然不辭 拉韓濩而前 五山貌甚窮陋 提督輕之曰 此子能文乎 投文錦而使之書 五山口號如宿構 石峯疾書如飛 提督移席就之 至曰班聲噫鵬背之風 喜氣融牛目之雪 雪及牛目 公羊氏語 而破城之日 適雪也 提督大驚曰 天下奇才也 及其返也 又以七律百篇送之平壤 致語亦五山作也 華國有過此耶 然官不踰奉常僉正而死 則日爲之食於奎 趙振占之 果然 謝靈運范曄之死 皆有是災 雲輅亦落拓而終 天輅父軾 子轉坤 並登第 柳夢寅志軾墓 歷敘其世德 天輅兄殷輅 亦神童也 早沒 然天輅集 終不行 見於箕雅者 若干詩也 先君子傷惜之 裒其詩及滄洲詩 上及其父軾祖廣運詩 合爲十一卷 藏之 今上辛亥 幸顯隆園 道過果川 五山墓在焉 上爲之曠感 命刊其集 而吾家所藏 始出焉 刻於浿營 文章之顯晦 自各有時 幸而出於今也 然誤字甚多 無可證也 甚可恨已].”

 

이 외에도 홍만종(洪萬宗)소화시평(小華詩評)권하 22에서 차천로(車天輅)와 권필(權韠) ()의 우열(優劣)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석주 권필이 오산 차천로와 더불어 스님의 시축에 차운하여 시를 짓다가 풍자에 이르렀다. 석주가 먼저 학이 노니는 나무는 천 년 달이 늙어가고, 자라 등(삼신산) 구름은 일만 리를 불어가네.’라 하였다. 석주가 이 시구가 호방하고 경책임을 자랑하였다. 오산이 이 시구에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구름을 뚫고 올라와 금강산 물에 주발을 씻고, 비를 무릅쓰고 와서 지리산 바람에 옷을 말리네.’ 오산시의 장건함이 석주의 시보다 낫다[權石洲與車五山, 共次僧軸韻, 到風字, 石洲先題曰: “鶴邊松老千秋月, 鰲背雲開萬里風.” 自詫其豪警. 五山次之曰: “穿雲洗鉢金剛水, 冒雨乾衣智異風其壯健過之].”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9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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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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