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동루에 쓰다
제충주동루(題忠州東樓)
이식(李植)
岧嶤飛閣郡城隈 俯視中州氣壯哉
山鎭東南尊月岳 水趨西北抱琴臺
乾坤縱目靑春動 今古傷心白髮催
已覺元龍豪氣盡 明朝投劾可歸來 『澤堂先生集』 卷之四
해석
岧嶤飛閣郡城隈 초요비각군성외 |
우뚝 솟아 나는 듯한 누각이 군과 성의 모퉁이이라 |
俯視中州氣壯哉 부시중주기장재 |
충주【중원(中原): 충주(忠州)의 옛 이름.】 굽어보는 기상이 장엄하구나! |
山鎭東南尊月岳 산진동남존월악 |
산이 동남쪽으로 진치고 있는데 월악산을 받치고 |
水趨西北抱琴臺 수추서북포금대 |
물이 서북으로 달려드는데 탄금대 안았네. |
乾坤縱目靑春動 건곤종목청춘동 |
천지가 눈을 따라 푸른 봄이 일렁이고 |
今古傷心白髮催 금고상심백발최 |
고금의 애달픈 마음이 흰 머리 나게 하네. |
已覺元龍豪氣盡 이각원룡호기진 |
원룡【원룡(元龍): 호걸지사(豪傑之士)로 일컬어졌던 동한(東漢) 말 진등(陳登)의 자(字).】의 호기로운 기운이 다한 걸 이미 깨달았으니 |
明朝投劾可歸來 명조투핵가귀래 |
내일 아침에 탄핵되도록 하고【투핵(投劾): 자신을 탄핵하는 소장을 올리는 것으로, 옛날 벼슬을 그만둘 때 사용하던 하나의 방식이었다.】 돌아가리라. 『澤堂先生集』 卷之四 |
해설
이 시는 1627년 충주목사로 부임했다가 김육(金堉)의 탄핵으로 파직되기 직전 충주성의 조양문(朝陽門)에 올라 지은 시이다.
택당이 남긴 시는 4,000여 수에 달하는데, 임방(任埅, 1640~1724)의 『수촌만록(水村謾錄)』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택당에게 묻기를 ‘공의 칠언율시 중에 어떤 작품이 제일인가?’ 공이 웃으며 위의 시라고 말했다[或問澤堂曰 公詩七律中 何篇爲第一 公笑曰 岧嶤飛閣郡城隈 俯視中州氣壯哉 山鎭東南尊月岳 水趨西北抱琴臺 乾坤縱目靑春動 今古傷心白髮催 已覺元龍豪氣盡 明朝投劾可歸來].”라고 하여, 자신의 최고 칠언율시로 위의 시를 뽑고 있다.
홍만종(洪萬宗)은 『시평보유(詩評補遺)』에서, “호탕하여 풍영할 만하니, 사람들이 평생의 가작으로 여겼다[宕逸可諷詠 人謂平生佳作].”라 평하고 있다.
홍만종(洪萬宗)은 또한 『소화시평(小華詩評)』 권하 77에서, “근세에 계곡(谿谷)ㆍ택당(澤堂)ㆍ동명(東溟)이 세 사람이 당세의 철장으로 병칭되는데, 논자들은 각자가 존중하는 기준으로 이분들의 우열을 정하고 그 높낮이를 평하니, 이는 매우 무가치한 일이다. 무릇 문장의 아름다움이란 제각기 정해진 값이 있으니, 어찌 자신의 좋고 싫어함으로써 작품의 값을 올리고 낮출 수가 있겠는가? 내가 보건대, 계곡의 문장은 혼후하고 유창하여 태호의 아득하게 펼쳐진 호수물이 산들바람에도 파도가 일지 아니함과 같다. 택당은 정묘하고 투철하여 진나라 대에 있던 밝은 거울 앞에서는 사물이 형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것【진시황(秦始皇)이 궁정에 거울을 보관하고 인간의 선악사정(善惡邪正)과 질병의 유무를 비추어 보았다】과 같다. 동명은 뛰어나고 준장하여 마치 갠 하늘의 빛나는 태양 같기도 하고 벼락이 웅웅 울리는 것과도 같다. 이 세 작가의 기상은 절로 다르다[近世谿谷ㆍ澤堂ㆍ東溟三人, 並稱當世哲匠, 論者各以所尙, 優劣而輕重之, 甚無謂也. 凡文章之美, 各有定價, 豈以好惡爲抑揚乎? 余觀谿谷文章渾厚流鬯, 如太湖漫漫, 微風不動; 澤堂精妙透徹, 如秦臺明鏡, 物莫遁形; 東溟發越俊壯, 如白日靑天, 霹靂轟轟, 三家氣像, 自是各別].”라 평하고 있다.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선조조(宣祖朝) 이하에 나온 문장은 볼만한 것이 많다. 시와 문을 겸한 이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고, 시로는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을 제일로 친다는 것이 확고한 논평이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에 이르러 대가(大家)를 이루었으니, 이는 어느 체제이든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화려하여 명가(名家)를 이룬 이는 유하(柳下) 최혜길(崔惠吉)이고 당(唐)을 모방하는 데 고질화된 이는 손곡(蓀谷) 이달(李達)이며,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옛사람의 말만 전용한 것이 많으니 유감스럽다. 귀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은 염락(廉洛)의 풍미를 띤데다 색향(色香)에 신화(神化)를 이룬 분이고,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시는 정밀한 데다 식견이 있고 전아(典雅)하여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宣廟朝以下文章, 多可觀也. 詩文幷均者, 其農岩乎. 詩推挹翠軒爲第一, 是不易之論. 然至淵翁而後, 成大家藪, 葢無軆不有也. 纖麗而成名家者, 其柳下乎. 痼疾於模唐者, 其蓀谷乎. 蘭雪, 全用古人語者多, 是可恨也. 龜峯, 帶濂洛而神化於色香者. 澤堂之詩, 精緻有識且典雅, 不可多得也].”라 하여, 李植의 詩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와 달리 정조(正祖)는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송 문정공은 평생토록 계곡(谿谷)과 택당(澤堂)을 추어올려 ‘우리 동방의 제일가는 문장’이라고까지 하였으나, 농암(農巖)은 자못 비평을 한 바 있으니, 농암의 설이 옳은 듯하다[宋文正平生推詡谿ㆍ澤 至謂之我東第一文章 而農巖則頗有雌黃 農巖說似得之].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198~20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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