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
도(盜)
이식(李植)
姦宄無常產 飢荒又一時
간귀무상산 기황우일시
近村聞警急 相識有創夷
근촌문경급 상식유창이
自幸囊中淨 應無棟上窺
자행낭중정 응무동상규
穿墉何足磔 城社有狐貍
천용하족책 성사유호리 『澤堂先生集』 卷之四
해석
姦宄無常產 飢荒又一時 | 간사한 도둑은 일상적인 소득이 없어 주리고 황폐함도 또 한 시기라네. |
近村聞警急 相識有創夷 | 근처 마을에서 경계의 위급함을 들어보니 서로 알던 이들이 상처가 낫다하네. |
自幸囊中淨 應無棟上窺 | 스스로 다행이구나! 주머니 속 깨끗해서 응당 대들보 위에서 엿보는 이 없으니. |
穿墉何足磔 城社有狐貍 | 담을 뚫는 이 어찌 형벌할 게 있을까? 도성과 사당에 여우와 이리 있는 걸. 『澤堂先生集』 卷之四 |
해설
이 시는 1628년 충주목사에서 파직되어 택풍당(澤風堂)으로 물러난 여름에 지은 것으로, 현실의 문제점에 대해 노래한 시이다.
택당은 덕수 이씨로 『홍재전서』에서, “우리나라의 망족(望族)으로는 먼저 덕수(德水) 이씨(李氏)를 꼽는다. 도학으로는 율곡(栗谷)이 있고, 장수의 지략과 충의로는 충무공이 있고, 문장으로는 용재(容齋) 이행(李荇)과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있다. 한 문중에 많은 훌륭한 인물이 모였고, 또 각파에서 과거에 장원한 인물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악역(惡逆)의 죄를 범하여 주륙을 당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 또한 다른 집안에 없는 일이다[我國望族 先數德水之李 蓋道學則如栗谷 將略忠義則如忠武公 文章則如容齋 澤堂 以一門而集衆美 且其各派中科甲 不爲不多 而無一人罪關惡逆 身犯誅戮 此又他族之所未有也].”라 언급한 것처럼, 명문거족(名門巨族) 출신이다.
『인조실록』 에서는, “문장은 이식이 제일이다[文章則李植爲首].”라고 하여, 이식(李植)은 당대에 이미 문명을 떨쳤다. 그의 시는 28세를 전후하여 숙부인 이안눌(李安訥)에게서 배웠는데[授學之徒多名流 澤堂其一也 『淸陰先生集』 「禮曹判書東岳李公神道碑銘」), 주지하듯이 삼당시인(三唐詩人)에 의해 시작된 당풍(唐風)이 권필(權韠)과 이안눌(李安訥)에 이르러 성당(盛唐)에 가깝게 되었다.
택당은 「학시준적(學詩準的)」에서, “송대(宋代)의 시로 말하면, 비록 대가(大家)가 많다고는 하나, 학식이 풍부하지 않으면 배우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정종(正宗)이 못 되는 시는 반드시 배울 것이 없다고 하겠는데, 다만 양진(兩陳)【송(宋)나라의 후산(后山) 진사도(陳師道)와 간재(簡齋) 진여(陳與義)】의 율시 가운데에서 두율(杜律)과 근사한 것들은 때때로 참조해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명(大明)의 시 중에서는 오직 이공동(李崆峒, 夢陽)이 두시를 제대로 배웠으니, 두시와 참조해서 보는 것이 좋겠다. 근대에 시를 배우는 자들이 더러는 한유(韓愈)의 시로 기초를 다지고 두보(杜甫)의 시로 전범을 삼고 있는데, 이것은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와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의 교시(敎示)에 의한 것이다. 석주(石洲) 권필(權韠)이 비록 끝에 가서는 당율(唐律)을 배웠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역시 한유의 시를 학습하였고,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이 만년에 재기(才氣)가 고갈되고 시들해졌을 때에도 역시 한유의 시를 읽었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비록 학식이 천박하기는 하였지만 한유의 시를 배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일단 제공(諸公)의 권유를 받아들여 한번 숙독하고 보니, 그 율시와 절구가 본디 당률의 격식과 같기에, 두시와 병행해서 보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대편(大篇) 걸작으로 말하면, 바로 양웅과 사마상여의 사부(詞賦)를 얼굴만 바꿔 놓은 격이었으니, 그의 시를 읽기보다는 차라리 그보다 차원이 높은 양웅과 사마상여의 작품을 읽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늦게 시를 배우는 자들이나 필력이 무뎌진 사람이 그의 시 100여 편 정도를 뽑아서 읽는다면, 마치 경(敬)이라는 하나의 글자가 『소학(小學)』을 도와주는 공이 있는 것처럼 하나의 구급 처방으로서 힘을 얻게 될 수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재질과 학식이 모두 풍부한 사람의 경우에는 굳이 그의 하등(下等)위의 작품에까지 지레 몸을 굽히고서 기어 다닐 것은 없다고 본다[宋詩雖多大家, 非學富, 不易學, 非是正宗, 不必學. 惟兩陳律詩, 近於杜律者, 時或參看. 大明詩, 惟李崆峒, 善學杜詩, 與杜詩參看. 近代學詩者, 或以韓詩爲基, 杜詩爲範, 此五山ㆍ東岳所敎也. 石洲雖終學唐律, 初亦讀韓, 崔孤竹末年, 才涸氣萎, 亦讀韓詩. 吾雖學淺, 殊不欲讀韓, 旣被諸公勸誘, 熟觀一遍, 其律絶, 固唐格也, 不妨與杜詩竝看. 大篇傑作, 則乃楊ㆍ馬詞賦之換面也, 與讀其詩, 寧讀楊ㆍ馬之爲高也. 惟晩學筆退者, 抄讀百餘遍, 則如敬字之補『小學』功, 容可救急得力. 若才學俱贍者, 不必匍匐於下乘也].”라고 하여, 고시(古詩)와 율시(唐詩)를 학습하고 두시(杜詩)로 귀착하는 것이 시를 배우는 정론(正論)이라 하였다.
하지만 송시(宋詩) 또한 유연한 입장을 가졌고, 학습도 하였다. 위의 글 마지막에, “나는 어렸을 때 사우(師友)가 없는 가운데, 제일 먼저 두시를 읽고 나서 황소(黃蘇)【황정견(黃庭堅)과 소식(蘇軾). 그런데 『택당집』의 다른 판본에는 ‘황진(黃陳)’, 즉 황정견과 진사도(陳師道)로 되어 있는데, 이들이 모두 소식의 문하이고 보면, 본문의 황소는 황진의 잘못이 아닌가 싶다】와 『영규율수(瀛奎律髓)』【원(元)나라 방회(方回)가 당ㆍ송의 시를 모아 49권으로 정리한 책 이름인데, 1祖 3宗의 설을 제창하면서, 시마다 평어(評語)를 가하고 일화를 소개하였다. 1조는 두보(杜甫), 3종은 황정견(黃庭堅)ㆍ진사도(陳師道)ㆍ진여의(陳與義)이다. 당시(唐詩)보다는 송시(宋詩), 특히 강서시파(江西詩派)에 상당부분 경사되어 있음】 등 여러 작품을 접하고는 수천 수의 시를 습작하기에 이르렀다[余兒時無師友, 先讀杜詩, 次及黃ㆍ蘇ㆍ『瀛奎律髓』諸作, 習作數千首].”라 하였다. 위의 시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195~19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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