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중학교에 그린 꿈
인생 참 드라마틱하다. 각본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치 누군가 꽉 짜 놓은 것 같이 그렇게 흘러간다. 시험장 배정이 이렇게 늦게 되는지 몰랐는데 시험 보기 일주일 전인 어제 마침내 수험번호와 시험장소가 공개됐다.
▲ 시험 일주일전에 발표됐다.
온고을중학교와의 추억
좀 다른 곳으로 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역시나 온고을중학교였다. 예전에 임용시험을 볼 때 두 번을 전주에서 봤었는데 2009년도엔 서곡에서 봤었고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가 풀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망의 2010년도에 바로 온고을중학교에서 시험을 봤고 그게 마지막 임용이자, 추억이 담긴 임용이기도 했다.
그렇게 온고을중학교에서 시험 본 것을 마지막으로 임용을 그만뒀으니 온고을중학교는 치욕의 장소일 수도 있고, 새로운 가능성이 싹 트는 장소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온고을중학교에선 2007년 11월~2008년 2월까지 단기 기간제를 한 적도 있었다. 땜빵이었지만 그래서 누구 하나 간섭하지도 않았지만 의미 있던 순간이었고 그만큼 온고을중학교는 알게 모르게 나와 밀접한 학교였던 것이다.
▲ 온고을 중학교에서단기 기간제를 할 때의 모습. 한시로 공부를 했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하다
온고을중학교는 꽤 멀리 있기 때문에 좀 더 가까운 곳으로 배정되길 내심 바라고 있었는데 어쨌든 그 학교로 결정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감회가 새롭긴 하다. 실패의 역사가 담긴, 나와의 10년 전 추억이 담긴 그 자리에서 어쩌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곳에서 올해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고 시작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인생은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하지만 그 순간을 살아가며 매몰되어 버린 당사자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반복된 것인지 생전 처음 경험하는 것인지 모른 채 버티어가고 살아내기에 바쁘다. 그래선 안 된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아무리 반복된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일무이한 순간이니 말이다. 온고을중학교라는 장소는 같지만 그래서 2008년도에 있을 때나 2010년도에 시험 볼 때나 다음 주에 시험 볼 때나 장소는 동일하지만 그곳에 놓인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나만 다른가? 그곳에 오는 뭇 사람들, 환경, 상황 그 모든 게 반복을 거부하는 순간에 가장 충실한 모습 그대로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은 영영 다시 없을 순간이자,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주는 강한 선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넘어졌으니 이제 일어날 때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싱그러운 기분이 마구 든다. 그래도 같은 장소로 배정됐다는 것, 그렇기에 맘껏 노닐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는 것, 검을 빠뜨린 바로 그 바다에서만 검을 건져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이처럼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저하지 않고 겁먹지 않고 다시 없을 한 번 뿐인 2018년의 임용을 누려보려 한다. 다시 시작되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궁지에 몰려 허겁지겁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고 원하던 일을 찾아온 것일 뿐이니 말이다. 궁지가 아닌 의지이고, 절망이 아닌 희망이며, 끝남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바로 다음 주 이 시간이면 시험을 보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고 일 년간의 결실을 맘껏 거둬들이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과연 어느 정도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기죽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텨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남은 일주일 재밌게 보내보자.
▲ 2010년 마지막 시험을 볼 때 온고을중학교의 모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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